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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신약 개발의 현주소] R&D 투자 늘리며 성공경험 쌓는다

중앙일보

입력

올 들어 7월까지 신약 2종 등장 ... 오픈이노베이션, 바이오 제약 기술 확보 돋보여

국산 신약 1호는 1999년 SK케미칼이 만든 항암제 선플라주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29개의 신약이 탄생했다. 아직도 글로벌 제약사와의 격차는 크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전자알약·유전자치료제 상용화도 앞두고 있다. 이들을 따라잡긴 무리지만 국내 제약산업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라이선스 만기가 지난 복제약을 만드는 단계에서 신약 물질을 연구·개발(R&D) 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특히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연구 확대와 바이오제약 기술 개발 등으로 글로벌 신약 개발의 꿈을 키우고 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사진:아이클릭아트]

7월 12일, 국내 29호 신약이 등장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의 관절염 치료제 인보사다. 5월엔 일동제약의 B형 간염 치료제 베시보정이 신약 승인을 받았다. 올해가 절반이 지나지 않은 사이에 벌써 신약이 두 개나 등장한 것이다. 이처럼 국내 제약사가 신약을 소개하는 빈도가 잦아지고 품질도 개선되고 있다.

국산 신약은 1999년 SK케미칼의 항암제 선플라주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29개가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이 중 2015년 이후 등장한 신약만 7종에 달한다. 업계에선 한국 제약산업이 2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라이선스 만기가 지난 복제약을 따라 만드는 단계를 넘어 이제는 자체적으로 신약 물질을 연구·개발(R&D) 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것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원희목 회장은 “의약품을 접점에 둔 산업계·연구기관·학계·의료계·유관단체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생산성을 높이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코오롱생명과학, 29호 신약 인보사 내놔

물론 한국 제약산업이 갈 길은 아직 멀다. 국내에서 사용 허가를 받은 완제품 4만개 가운데 국산 신약은 29개에 불과하다. 보험수가를 적용받는 국산 의약품은 약 2만개다. 그중 1만 7000개의 품목이 겹친다. 대부분 복제약이란 의미다. 국내 제약사는 아직 신약 개발에 투입할 자금력과 노하우가 부족한 편이다. 글로벌 제약사가 신약 개발에 사용하는 비용은 수 조원에 달한다. 이제 겨우 매출 1조원을 올리는 한국의 개별 제약 기업에겐 부담스런 금액이다. 지금까지 국내 제약사들의 주력 제품이 복제약과 드링크류인 배경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국내 제약사는 꾸준히 신약 개발에 매달려왔다. SK증권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의 연구·개발(R&D) 비용 규모는 2014년 1조1000억원 수준으로 60조원의 미국과 16조원을 기록한 일본 등 제약 선진국에 비해 초라한 수준이다. 그러나 국내 매출 상위 제약사들의 R&D투자와 신약 파이프라인은 나름 의미있게 증가하고 있다. 한미약품·동아에스티·녹십자·대웅제약·종근당 등의 R&D 비용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해왔다. 2006년 1594억원에 그쳤던 상위 6개 제약사의 총 R&D 비용은 지난해 6788억원으로 늘었다.

국내 제약사 가운데 R&D 투자 1위는 한미약품이다. 2013년 R&D 투자 1000억원을 넘겼고, 지난해엔 1600억원을 쏟아부었다. 올해에도 비슷한 규모를 투자할 계획이다. 녹십자도 R&D 투자금액을 늘리고 있다. 2014년 846억원, 2015년 1019억원에 이어 올해 125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종근당도 지난해 1000억원 넘게 신약 개발 R&D에 투자했다. 유한양행은 올해 95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동아에스티는 올해 820억원 규모의 R&D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R&D 투자 1위는 한미약품

한미약품은 국내 제약산업의 변화를 이끈 기업으로 꼽힌다. 오픈이노베이션을 활용하며 글로벌 제약사와의 연이은 기술수출 계약을 이끌어내며 주목을 받았다. 한미약품의 성공 사례를 지켜본 다른 제약사들도 R&D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2016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컨퍼런스에 참석한 국내 제약사 사장들이 건배사로 ‘한미를 위하여!’라고 외쳤을 정도다. 한미약품 역시 적극적으로 오픈이노베이션 노하우를 국내 제약사와 공유했다. 함께 판을 키워 나갈 시기라고 판단해서다. 다만, 호사다마라고 지난 하반기부터 주가 조작, 글로벌 제약사와의 파이프라인 취소 등의 악재가 잇따라 터져 나왔다. 이 과정에서 한미약품의 주가는 최고가의 절반 수준인 30만원 대로 내려 앉았지만 한미약품은 R&D를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지난 3월 임원 회의에서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신뢰경영의 핵심은 신약 개발”이라며 “국민과 주주의 신뢰를 얻으려면 신약 개발이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매출의 18.4%인 1626억원을 R&D에 투자한 한미약품은 올해도 투자를 늘리며 연구에 힘을 싣고 있다. 한미약품은 올해 1분기 매출의 18.2%인 426억원을 R&D 비용으로 투자했다. 파이프라인은 총 23개. 바이오신약 14개와 합성신약 9개다. 전임상 단계에 있는 신규 후보물질 9개를 새로 더했다. 한미약품의 파이프라인 중 가장 큰 관심을 받는 것은 당뇨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에 계약금 4억 유료(약 5000억원), 성과보수 35억 유로(약 4조3000억원)에 기술 이전한 제품이다. 한미약품이 자체 개발한 면역질환치료 신약 ‘BTK면역치료제(HM71224)’도 주목할 신약 후보다. 지난 2015년 3월 미국 제약기업인 일라이릴리에 기술 이전한 파이프라인이다. 류마티스관절염 환자를 대상으로 글로벌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김태희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임상 중인 핵심 파이프라인이 완료되는 2018년이 한미약품에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종근당 신약 파이프라인 크게 늘어 

종근당도 R&D 투자를 늘리고 있다. 종근당은 지난해 국내 제약사 중 두 번째로 많은 14건의 임상시험을 승인 받았다. 2013년 612억원에 그쳤던 R&D 비용은 지난해 연매출 8300억원 중 약 12%인 1022억원으로 늘어났다. 투자를 늘린 덕에 파이프라인도 증가했다. 2012년 탐색과제 27개, 임상단계 17개에 불과하던 파이프라인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탐색과제와 임상 단계가 각각 50개, 27개로 대폭 늘었다. 올해부터 해외 임상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주요 파이프라인으로는 지난해 유럽 임상 1상에 돌입한 ‘CKD-506’이 눈길을 끈다. 면역을 조절하는 T 세포의 기능을 강화해 면역 항상성을 유지시키는 자가 면역질환 치료제다. 호주에서 임상 2a상을 시작한 ‘CKD-519’도 관심을 모은다. 저밀도지단백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을 낮추고 고밀도지단백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약물이다. 종근당 관계자는 “과감한 투자 신약 개발 선도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다질 것”이라고 말했다.

5월 식약처 허가를 받은 국내 28호 신약 베시보는 일동제약의 첫 신약이다. 일동제약은 최근 5년 간 매출액 대비 10%를 R&D에 투자해왔다. 지난해 일동제약의 임상시험 승인 건수는 56건에 달한다. 일동제약 중앙연구소에선 지금 항암제, 치매 치료제 등 만성·난치성 질환 신약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그중 알츠하이머 신약 ‘ID1201’은 분당서울대병원·중앙대병원·건국대병원 등 14개 병원에서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주목할 파이프라인으로는 ‘IDF-11774’가 있다. 종양의 악성화와 전이에 관여하는 인자인 ‘HIF(Hypoxia-inducible factor)’를 통제해 암세포를 억제하는 표적항암제 후보물질이다.

동아에스티가 개발에 성공한 국산 신약은 4개다. 제약 업체 중 지금까지 가장 많은 신약을 개발했다. 해마다 매출액 대비 10~11%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R&D 비용은 전년 대비 21.8% 증가한 726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22.3% 증가한 194억원을 투자했다. 이런 투자 덕분에 동아에스티는 발기부전 치료제 ‘자이데나’, 수퍼항생제 ‘시벡스트로정’과 동일 성분 주사제, 당뇨병 치료제 ‘슈가논’의 국산 신약을 개발할 수 있었다. 동아에스티는 해외 기술수출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미국 제약사 토비라와 슈가논의 주성분인 ‘에보글립틴’을 비알콜성지방간염 치료제로 개발하는 6150만 달러(약 705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했다. 지난해 글로벌 제약사 애브비와 후보물질 도출 단계에 있는 면역항암제 ‘MerTK 저해제’의 기술수출 계약도 했다. 기술 수출 규모는 5억2500만 달러(약 6350억원)에 이른다. 과민성 방광 치료제도 개발 중이다. 2013년 ‘DA-8010’의 국내 특허 출원을 마쳤고, 지난해 3분기 유럽 임상 1상 시험을 시작했다.

CJ헬스케어에서도 신약 출시가 임박했다. 테고프라잔의 임상 3상을 완료했고, 9월 식약처에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테고프라잔은 CJ그룹이 제약사업에 뛰어든 지 33년 만에 시중에 출시하는 신약이다. CJ는 2003년 녹농균 백신 슈도박신을 개발했다. 국내 7번째 신약이다. 하지만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시장에 선보이지 못하고 연구소에만 남은 비운의 신약이다. CJ헬스케어에서 테고프라잔에 정성을 기울이는 이유다.

녹십자는 매출 ‘1조 클럽’ 제약사다. 기술력과 자금력 모두 국내 상위권이다. 하지만 아직 신약이 없다. 이를 만회하려는 듯 R&D를 강화해왔고 결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녹십자의 혈액제제 의약품이 올해 미국 FDA 판매 허가 승인을 받을 전망이다. 매년 매출액 대비 약 10%가량의 금액을 R&D에 투자하고 있는 녹십자의 올해 R&D 비용은 약 13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녹십자는 현재 15개의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바이오의약품 부문과 백신이 각각 7개, 합성신약 1개가 임상을 진행 중이다. 주력 파이프라인은 글로벌 전략품목인 1차성 면역결핍질환 치료제 ‘아이비글로불린 에스엔(IVIG SN)’과 A형 혈우병 치료제 ‘그린진F(GreenGene F)’가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기술 개발과 해외 진출 경험이 쌓이며 한국 제약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추세를 이어간다면 한국에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신약이 더욱 많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스기사] 매출 1000억대 국산 신약 나오나 - 보령제약 카나브, LG화학 제미글로정 유력 후보

국산 신약은 아직 판매 1000억원을 넘긴 제품이 없다. 지금까지 역대 최대 매출을 올린 국산 전문의약품은 동아에스티의 위염치료 천연물신약 스티렌이다. 스티렌은 2011년 900억원대 처방액을 올렸다. 개량신약 중에선 한미약품 고혈압치료제 아모잘탄이 2012년 770억원대 처방액을 기록했다. 올해 새로운 기록을 세울 후보가 나타났다. 보령제약의 혈압약 카나브와 LG화학 당뇨치료제 제미글로정이다. 각각 국산 신약 15호, 19호다.

보령제약 카나브는 2010년 등장한 첫 해부터 매출 100억원을 올린 의약품이다. 글로벌 의약품에 버금가는 품질을 자랑하며 출시 당시 ‘국산 신약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출시 7년 차인 지난해 42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국내 1위 혈압약으로 발돋움했다. 수출 실적도 인상적이다.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라 중남미와 동남아 아프리카 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51개국에 4억1360만 달러의 수출 계약을 했다. 글로벌 시장 개척 덕에 매출 1000억원 식약 후보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섰다.

LG화학의 당뇨치료제 제미글로정은 지난해 국산 신약 최초로 단일 브랜드 매출 500억원을 넘어 섰다. 하지만 2012년 발매 당시엔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제미글로정이 다시 치고 올라간 계기는 대웅제약과의 협업이다. 당시 대웅제약은 MSD의 고혈압치료제 자누비아의 판권을 중근당에게 빼앗겼다. 대체할 제품을 찾던 대웅은 제미글로정을 주목했다. LG화학도 이를 반겼다. 대웅의 영업망을 활용할 수 있어서다. 두 회사의 협업 덕에 제미글로정은 2016년 처방액 557억원을 기록했다. 제미글로의 올 상반기 처방액은 351억원으로 지난해 241억원 대비 45% 증가했다. 올해 700억원은 무난히 넘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양약품이 2008년 개발한 항궤양제 놀텍도 주목할 국산 신약이다. 지난해 21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일양은 2012년 백혈병 치료제 슈펙트 개발에 성공했다. 그리고 러시아 최대 제약사와 손잡고 수출에 나섰다. 파트너사가 주목한 약품이 놀텍이다. 일양약품 관계자는 “슈펙트 기술 수준에 만족한 러시아 파트너가 시장에 공급할 다른 약품을 요청하며 놀텍의 러시아 수출길이 열렸다”고 설명했다.

국산 신약의 성공 여부는 연매출 100억원 달성에 있다. 종근당의 듀비에가 이를 넘겼고,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동아에스티의 시벡스트로, 일양약품 백혈병 치료제 슈펙트, 그리고 대원제약의 펠루비가 매출 100억원에 근접해 있다. 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에는 국산 신약 개발 자체가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신약이 늘고 있다”며 “중남미와 러시아에서 자리잡은 다음엔 미국과 유럽에서도 통하는 제품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파이프라인: 송유관이라는 뜻이지만 제약 업계에서는 연구 중인 프로젝트를 말한다. 파이프라인이 많을수록 R&D가 활발하고 신약 개발 가능성이 큰 제약사로 평가받는다.

※ 임상시험: 사람을 대상으로 의약품의 효능·효과·부작용을 파악하는 시험이다. 관계 당국의 승인(우리나라는 식약처)이 있어야 진행할 수 있다. 임상 1상은 동물 상대의 실험을 거친 신약을 사람에서 평가하는 과정이다. 2상은 신약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 제한된 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시험이다. 약리효과 확인, 적정 용량의 범위·용법을 평가한다. 3상은 신약이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한 다음 다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효능을 최종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이다. 적응 대상 질환에 대해 효능 자료 등을 수집하고 통계적인 검증을 한다. 임상 시험 기간은 의약품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3상 종료까지 일반적으로 10년 넘게 걸린다.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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