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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출판금지 결정으로 본 가처분 사건들

중앙일보

입력

4일 법원이 『전두환 회고록』의 출판과 배포를 금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가처분은 사후적으로는 피해 회복이 어려운 사안에 대해 사전에 또는 신속하게 법원이 결정을 내리는 제도다.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교수도 출판금지 #김만복 전 국정원장 회고록도 못 펴내 #본안 소송,형사 사건에서 결론 달라지기도

5·18기념재단과 5·18 관련 단체들(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은 지난달 12일 전두환 회고록 1권 ‘혼돈의 시대’가 5·18광주민주항쟁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내용 등으로 역사를 왜곡했고, 당사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판매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냈다.

인격권은 성질상 한번 침해되면 사후적 구제에 의해서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효성 있는 조치로 판매 및 배포금지 가처분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같은 법원의 조치가 헌법상의 검열 금지나 표현의 자유 등의 원칙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 때문에 출판 금지청구권은 피침해자의 사회적 지위, 적시된 사실의 진실성, 침해 행위의 양태와 정도, 침해자의 주관적 의도, 침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등을 고려해 개인의 명예와 프라이버시가 심각하게 침해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지난 4월 출간 이후 '역사 쿠데타'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전두환 회고록』

지난 4월 출간 이후 '역사 쿠데타'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전두환 회고록』

이번 사건에서 재판부는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목적에서 벗어나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초과해 5·18 민주화운동의 성격을 왜곡하고, 5·18 관련 집단이나 참가자들 전체를 비하하고 그들에 대한 편견을 조장함으로써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를 저해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가처분 신청으로 피해자의 권리 침해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권리 침해 여부는 본안 소송을 통해 최종 결론이 내려진다. 5월 단체들은 지난달 28일 전 전 대통령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상태다.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더라도 명예훼손 등의 혐의는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최근『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60) 세종대 교수 사건이 그 예다.

박 교수는 2013년에 출간한 이 책에서 ‘위안부는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다’고 표현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2014년 9월 출판 및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또 박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1인당 3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법원은 피해자들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책 출판을 금지시켰다. 이후 이 책은 문제가 된 내용 34군데가 삭제돼 판매됐다. 법원은 또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도 9명의 피해자에게 각각 1000만원씩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도 내렸다.

그러나 검찰이 기소한 박 교수의 명예훼손 혐의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박 교수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지만 1심 재판부는 지난 1월 "책에 명시된 표현을 보면 위안부 피해자 개개인의 사적인 사안으로 도저히 보기 어렵다. 공적인 사안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에 대해서는 개개인의 사안보다는 활발한 공개 토론 여론을 형성하는 등 폭넓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논란을 일으켰던 박유하 교수. [중앙포토]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논란을 일으켰던 박유하 교수. [중앙포토]

김만복(71) 전 국정원장도 2015년에 회고록『노무현의 한반도 평화구상-10·4 남북정상선언』을 냈다가 법원의 판매 중단 가처분 결정으로 책을 제때 출간하지 못했다. 김 전 원장의 회고록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남북 정상간 핫라인이 있었다’는 내용이 문제가 됐다.

국정원은 2015년 10월 서울중앙지법에 김 전 원장 회고록에 대해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그를 국정원직원법(직무상 기밀유지)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사건은 약 2주 뒤 김 전 원장이 책 판매를 중단하고 수거에 협조하기로 하면서 화해 권고 결정으로 마무리됐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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