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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가 달라진 이유는?10년전엔 "배 아프다"고 도망치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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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이 정해진 건 전혀 없다. 논의가 깊이 무르익지 않으면 헌법개정은 안되는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일 밤 일본 NHK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직전에 열린 개각 관련 기자회견에서도 "개헌 스케줄은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020년엔 새로운 헌법을 시행하겠다"며 올 가을 임시국회에 자민당의 개헌안을 제출하겠다고 별러온 그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아베는 지난달 2일 치러진 도쿄도 의회 선거에서 참패한 이후에도 기자들에게 “계획대로 할 수 있다”며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기하는 개헌에 집착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3일 총리관저에서 열린 개각 기자회견에서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사학스캔들과 관련해 "국민들의 커다란 불신을 초래하는 결과가 됐다. 다시 깊게 반성과 사죄한다"며 한동안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였다. [교도=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3일 총리관저에서 열린 개각 기자회견에서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사학스캔들과 관련해 "국민들의 커다란 불신을 초래하는 결과가 됐다. 다시 깊게 반성과 사죄한다"며 한동안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였다. [교도=연합뉴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왔던 아베의 갑작스러운 태도변화에 대해 일본 언론들은 “궤도수정”이라고 표현했다.
아사히 신문은 “궤도수정의 배경엔 ‘구심력을 잃은 상황에서 정해놓은 일정대로 밀어부치려하면 정권 운영이 불안정하게 될 수 있다'는 판단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그동안 일본 정가에선 "친구가 이사장인 사학재단에 수의학부 신설 특혜를 줬다는 의혹, 도쿄도 의회 선거 참패에 이어 개헌까지 밀어부쳤다간 아베 총리가 총리직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돌았다.
 아베 총리 자신도 이런 위기 의식을 느낀 것일까.
그의 변화는 개헌일정을 늦춘 것 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던 '여걸' 노다 세이코를 내각의 요직인 총무상에 기용했고, ‘포스트 아베' 총리 후보군중 한 사람인 기시다 후미오 전 외상을 자민당의 요직인 정조위원장에 임명했다. 또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처음으로 인정했던 '고노 담화'의 당사자 고노 요헤이의 장남을 외상에 기용했다. 자신이 속해있는 파벌(호소다파)출신 각료의 수를 3명으로 줄이는 대신 다른 파벌을 배려했다. 이나다 도모미 전 방위상과 야마모토 고조 전 지방창생상 등 각종 사고를 친 측근들을 내각에서 정리했다.

개헌만 보고 달려왔지만 "논의 무르익지 않으면 안돼" #'쓴소리 여걸' 노다 세이코 등 궁합 안맞아도 내각 기용 #"겸허하고 공손하게 국민 요구 듣겠다"며 겸손 앞세워 #"마이웨이 고집하다간 총리직 내놓아야"위기감 때문 #궤양성 대장염 핑계로 자진사퇴했던 10년전과는 대조

아베의 태도도 달라졌다.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는 자신을 낮추는 ‘겸허 퍼포먼스’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여러가지 문제에 있어서 국민의 불신을 불렀다. 깊이 반성하고 국민께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또 “5년전 정권을 탈환했을때의 원점으로 돌아가 겸허하고 공손하게 국민의 요구에 응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2007년 9월 12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사임을 발표한 직후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중앙포토]

2007년 9월 12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사임을 발표한 직후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중앙포토]

일본 언론들은 2007년 9월 총리직에서 물러났을때보다 훨씬 노련해진 아베의 위기관리법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아베 총리는 이번과 마찬가지로 각료들과 측근들의 각종 스캔들, 참의원 선거에서의 참패로 휘청댔다. 어쩔줄 몰라하던 아베는 결국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나의 존재 자체가 유감스럽게도 (일본 정치에) 마이너스가 되고 있다","지금으로선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받아 정책을 힘있게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총리직을 자진해서 내던졌다.
 52세의 젊은 나이에 일본의 총리직에 오른지 꼭 1년만이었다. 당시는 아베 총리는 17세 때 발병했다는 궤양성대장염을 핑계로 댔다. "대장염의 고통때문에 총리직을 수행할 수 없다. 30분에 한번씩 화장실에 가야하는 상황에선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정치권에선 “아무런 준비없이 총리직을 맡았다가 그 중압감을 결국 이겨내지 못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3일 발표한 개각이 추락하는 아베의 지지율을 되돌릴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10년전의 애송이 총리 시절과 비교할때 위기를 대하는 아베의 태도가 매우 노련해진 것 만은 분명한 것 같다.
서승욱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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