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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의 寫眞萬事]-폭염경보,길위에 방치된 삶들

중앙일보

입력

부자로 태어난 인생은 있어도 노숙자로 점지된 인생은 없다. 노숙은 희망이나 자존감과 관련이 깊다.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으로 인해  감정의 끈이 느슨해지면 노숙의 문이 스르르 열린다. 다만, 자신도 모르게 노숙의 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어도 마음먹기에 따라 다시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노숙은 상황이며 기억이다.

상황을 바꾸거나 기억이 축적되는 방식이 변하면 노숙은 종료된다. 노숙인의 인생과 노숙인 아닌 인생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이나 극복할 수 없는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차이라고 해봤자 희망의 명도나 자존감의 강도 차이 정도다.

노숙인 아닌 우리의 희망은 얼마나 환하고, 노숙인 아닌 우리의 자존감은 얼마나 질긴가… 자신이 없다. 우리가 노숙인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3일 기상청은 서울과 경기 등의 지역에 폭염 경보를 발령했다. 폐로 밀고 들어오는 서울역 광장의 열기는 호흡이 거칠어질 정도였는데 어떤 이는 바닥에 누워, 어떤 이는 가로등 기둥에 기대어, 어떤 이는 열기의 바다에 뜬 손바닥만 한 그늘에 묻어 폭력적 더위에 헐떡이고 있었다. 모두 노숙자였다.

영상 34도.그늘이라고 해도 바닥은 달아오를대로 달아올랐다.

영상 34도.그늘이라고 해도 바닥은 달아오를대로 달아올랐다.

그늘로 피하지도 않는다. 움직일 기력이 소진됐는지도 모른다.

그늘로 피하지도 않는다. 움직일 기력이 소진됐는지도 모른다.

서울역 간판에 기대고 있고 서울역은 작은 그늘 하나 주고 있다.

서울역 간판에 기대고 있고 서울역은 작은 그늘 하나 주고 있다.

노숙인 없는 한국, 모두 일을 갖는 한국이 보고 싶다.

노숙인 없는 한국, 모두 일을 갖는 한국이 보고 싶다.

 한때 누군가의 남편이자, 누군가의 아버지, 어느 늙은 부모의 전부였던 사람들이 수긍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더위 속에 방치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개인의 선택이나 불가침의 권리 영역으로 간주해 외면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일까.

 새 정부는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출범한 지 세달 가까이 되도록 서울역 주변을 떠도는 노숙인생들의 삶은 여전히 책임 영역 바깥을 떠돌고 있다.

회복 능력이 훼손된 인간을 나 몰라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나는 그런 민주주의에 동의할 수 없다. 정책적 책임이 발휘되어야 할 대상에 우선순위가 있다고 한다면 지금 이 더위에, 이 지경으로 방치된 이들보다 상황이 급박한 대상은 누구일까.

 체념과 타성에 길든 길 위의 삶들을 돌려세워 일을 주고,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지도자의 길이고 더불어사는 민주주의의 길이라고 믿는다. 이들을 그대로 두면 그야말로 '깨진 유리창'이 되어 전체 사회를 오염시킬 것이고 그때가서 부득이 어떤 조치를 취하려 해도 훌쩍 커진 비용때문에 쉽지 않은 과제가 되어버릴 게 분명하다.

개인의 인권과 전체 사회의 조화, 강제와 동의가 절묘하게 배합된 묘수가 도출되길 기대해 본다.노숙인없는 서울역을 보고싶다.
글·사진=김춘식 기자 kim.choon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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