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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람의 미주알고주알] 조치훈 9단의 소원

중앙일보

입력

※ '미주알고주알(바둑알)'은 바둑면에 쓰지 못한 시시콜콜한 취재 뒷이야기를 다루는 코너입니다.


조치훈 9단

조치훈 9단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달 31일, 서울 마장로 한국기원에서는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2017 한국기원총재배 시니어바둑리그에 출전한 조치훈(61) 9단이다.

조치훈(오른쪽) 9단과 안관욱 9단. 

조치훈(오른쪽) 9단과 안관욱 9단. 

이날 조 9단은 KH에너지의 선수로 참가해 오전 11시부터 약 2시간 동안 부천판타지아의 안관욱 9단과 대결을 펼쳤다. 이 대국은 조 9단이 시니어리그에서 벌이는 첫 번째 판이다.

대국 결과는 조치훈 9단의 불계승. 이로써 조 9단은 시니어리그 데뷔전을 기분 좋은 승리로 장식했다.

바둑이 가장 먼저 끝난 조치훈 9단은 검토실로 이동해 다른 선수들의 바둑을 모니터하고 있었다. 뒷모습을 보자마자 특유의 머리 스타일 때문에 한눈에 조치훈 9단을 알아볼 수 있었다.

검토실에서 다른 선수의 대국을 모니터하고 있는 조치훈 9단. 

검토실에서 다른 선수의 대국을 모니터하고 있는 조치훈 9단. 

가까이 다가가 인사하자 반갑게 웃으며 맞아주셨다. 오랜만에 뵈었지만,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쾌활한 웃음은 여전했다.

이날 KH에너지는 조치훈 9단을 비롯한 강훈·장수영 9단이 모두 승리하며 부천판타지아에 3대0으로 전승하는 쾌거를 이뤘다. 조치훈 9단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조치훈 9단에게 시니어리그에 참가하게 된 소감을 물었다. 그동안 조 9단이 한국이 주최하는 국제기전과 이벤트 대회에는 가끔 출전했지만, 공식 국내기전에 출전하기는 이번 시니어리그가 처음이다. 6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1968년 11세 9개월의 나이로 일본기원에 입단하며 시작한 프로 인생은 반백 년이 됐다.

조치훈 9단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조치훈 9단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조 9단은 질문이 끝나자마자 "국내 기전에 참가하는 게 소원이었는데, 드디어 소원을 이뤘다"고 답했다. 오래 전부터 질문을 기다려왔던 것처럼 '소원을 이뤘다'고 바로 말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어서 그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시니어리그가 아니라 그냥 리그였으면 더 좋았겠지만"이라며 말을 덧붙였다.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렇듯 조치훈 9단이 있는 곳은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대국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대화를 이어갔다. 조치훈 9단은 대국 중에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로 복통을 호소하는 기색을 비쳐 심판이 상황 파악에 나서기도 했다. 조 9단이 “괜찮다”며 대국을 이어갔지만 어떻게 된 상황인지 궁금했다.

조 9단은 "한국에 와서 너무 매운 것이 먹고 싶어서 어제 매운 음식을 먹었는데 그게 과했던 것 같다"며 "바둑을 두는데 갑자기 배가 아팠다"고 했다. 일본에는 매운 음식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갑자기 매운 것이 들어가니 속이 놀랐던 모양이다.

이날 조치훈 9단은 저녁 6시 비행기로 바로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에서도 경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을 왔다갔다하는 일정이 빠듯해보였다. 그는 "바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시니어리그에 많이 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치훈 9단과 함께.

조치훈 9단과 함께.

조 9단은 당장 다음주에 시니어리그에 출전하기 위해 다시 한국에 온다고 한다. 이벤트 대회나 세계대회에서만 간헐적으로 볼 수 있었던 조치훈 9단을 앞으로 한국기원에서 자주 볼 수 있다니 느낌이 색다르다.

내년 시니어리그도 출전할 것이냐는 질문에 조 9단은 "올해 우리 팀이 우승하면 내년에도 나오고 싶다"고 했다. 조 9단의 바람대로 내년 시니어리그에서도 조 9단의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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