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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민우의 블랙코드

‘마피아’라는 낙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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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 정치부 차장

최민우 정치부 차장

원전 공사 재개 여부는 물론 향후 문재인 정부 탈원전 기조에도 영향을 끼칠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론화위원회’. 소속 위원 9명 중 정작 원자력 전공자는 한 명도 없다. “공론조사를 제대로 진행하고 관리하는 역할이기에 굳이 필요 없다”는 게 현 정부의 표면상 이유지만, 실상은 ‘원전 마피아’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게 작용한 듯싶다. 이런 식이다. “종사자나 관련 학자·교수 등은 원전이 굴러가야 먹고살잖아. 패거리 지어 자기들 떡고물에 눈독 들일 텐데 ‘원전 반대’를 결사반대할 거야. 전문가의 객관성? 공정성? 턱없는 소리지.” 이처럼 ‘마피아’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게임 오버다.

집단 낙인찍기는 이번만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세월호 참사가 터지자 ‘관피아’(관료 마피아)와 ‘해피아’(해양수산부 마피아)를 제단에 올렸다. 2015년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일 때는 역사학계를 겨냥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에게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국정이냐”고 물었더니 이런 반응이 나왔다. “이 양반 참 순진하네. 지금 국내 역사학자의 80% 이상이 ‘좌빨’이야. 누가 집필하든 검인정하에선 ‘뻘건’ 교과서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우리도 오죽하면 국정 꺼냈겠어?” 아마 비슷한 논리로 문화계 블랙리스트,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진행했을 것 같다.

어떤 직종의 종사자 대다수가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개개인이 오류투성이이듯 그 합(合)인 집단도 예외일 수 없다. 무엇보다 특정 경향을 띠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역사학계의 좌편향성은 ‘친일 사학’ 극복 과정에서 비롯됐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어느 나라나 문화계에 진보적 인사가 득세하는 것도 기존 질서의 타파라는 예술의 속성 때문이다. 본질적 요소를 외면한 채 “니네 썩었어” “너희 불온해”라고 단정한다면 그거야말로 폭력이다.

원전 전문가들도 그동안 잘못한 것이 없는지 되돌아 볼 기회다. 하지만 수십 년간 한 우물만 파 온 사람들, ‘원전 4대 강국’의 주역을 한마디로 ‘마피아’라고 몰아세우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시시비비는 차분하게 가려야지 ‘마피아’ 딱지 하나로 단번에 도외시해 버릴 일이 아니다. 별의별 마피아가 창궐하고, 과거 들춰내기가 빈번한 요즘 정국을 보며 문득 든 생각이다.

최민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