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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코미디·개그 공연으로 전국 명소 꿈꾸는 아산 시골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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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8일 오후 7시. 충남 아산시 도고면 신언리. 한적한 들판에 자리 잡은 시골 마을에 한바탕 개그 잔치가 열렸다. 개그맨 한동아(30)씨가 삼베 옷차림에 노인 분장을 하고 무대에 섰다. 한씨의 개그 코너 이름은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였다. 한씨가 “어기어차, 어기어차”하자, 해설자가 “이 소리는 아산의 한 아저씨가 기아자동차 뽑고 좋아하는 소리”라고 했다.

아산시 2014년 폐쇄된 옛 도고온천역 옆 건물에 코미디홀 개관 #50억원 들여 레일바이크 등 관광시설과 함께 운영 #최양락·이영자·장동민· 등 유명 개그맨 많이 배출한 데서 착안 #개그맨 지망생 9명 숙식하며 월요일 제외하고 매일 공연 #개그 재밌다고 입소문 나면서 한해 관람객 3만여명 전국서 몰려 #

개그맨 지망생들이 지난 7월 28일 아산시 도고면 옛 물류 창고를 재활용해 만든 코미디홀에서 공연에 앞서 익살스런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개그맨 지망생들이 지난 7월 28일 아산시 도고면 옛 물류 창고를 재활용해 만든 코미디홀에서 공연에 앞서 익살스런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어 한씨가 “우리 첫째 아이는 판사, 둘째 아이는 검사, 셋째 아이는 의사, 일곱째는 변호사”라고 하자, 해설자가 “이 소리는 전북 정읍의 한 아저씨가 뻥 치는 소리”라고 말했다. 또 “10㎞ 남았다, 9㎞ 남았다, 8㎞ 남았다”고 하자, “이 소리는 버스 안에서 예산의 할아버지가 소변 참는 소리”라는 해설이 이어졌다.

공연이 이어지는 동안 객석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장맛비가 내리는 이 날 50여명이 이곳을 찾았다. 1시간 반 동안의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은 개그맨들과 인증샷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개그맨 지망생들이 지난 7월 28일 오후 7시 아산시 도고면 코미디홀에서 개그 공연을 펼치고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개그맨 지망생들이 지난 7월 28일 오후 7시 아산시 도고면 코미디홀에서 개그 공연을 펼치고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개그 공연이 열린 곳은 2014년 4월 문을 연 ‘아산 코미디 홀’이다. 이곳은 장항선 도고온천역이 있던 마을이다. 하지만 2007년 구불구불한 장항선 철도를 곧게 펴는 ‘직선화 사업’으로 역이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이후 마을은 쇠락했다. 역 주변 상가 50여 곳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상당수 주민도 마을을 떠났다. 2006년 300여 가구였던 마을은 2013년 135가구로 줄었다.

그러자 아산시가 마을 살리기에 나섰다. 50억원을 들여 레일바이크 체험장과 공연·전시장인 ‘코미디홀’을 세웠다. 코미디 홀 아이디어는 아산시가 남성남·최양락·이영자·장동민·안상태 등 유명 코미디언과 개그맨을 많이 배출한 데서 착안했다. 게다가 김준호(대전), 오나미(공주), 박소라(천안), 안소미(보령), 남희석(보령), 신동엽(제천) 등 충청도 출신 개그맨이 유독 많다는 사실도 영향을 줬다. 아산 코미디 홀과 유사한 시설은 전유성이 경북 청도군에 운영하는 ‘철가방극장’이 있다.

개그맨 지망생들이 지난 7월 28일 코미디홀에서 개그 공연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개그맨 지망생들이 지난 7월 28일 코미디홀에서 개그 공연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아산시는 도고온천역 옆에 있던 옛 물류창고와 농협 건물 두 곳을 코미디 전시관과 객석 198석을 갖춘 공연장으로 꾸몄다. 코미디 홀은 개그연예 전문 기획사인 ‘지엔미디어’가 운영하고 있다.

아산시가 운영비로 3년간 4억원을 보조한다. 이곳에서는 KBS 공채 16개 개그맨인 엄태경(37)과 개그맨 지망생 9명이 공연한다. 공연은 월요일만 빼고 매일 열린다. ‘코미디 홀’ 관장을 맡고 있는 엄태경은 “개그맨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전부터 해오던 차에 아산시 코미디홀 설립 소식을 듣고 아산에 내려왔다”고 말했다.

개그맨 지망생들이 지난 7월 28일 코미디홀에서 개그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날 장맛비가 내리는 가운데 50여명이 찾았다. 프리랜서 김성태

개그맨 지망생들이 지난 7월 28일 코미디홀에서 개그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날 장맛비가 내리는 가운데 50여명이 찾았다. 프리랜서 김성태

입소문이 나면서 외지인들이 다시 찾고 있다. 연간 3만여명이 코미디홀을 찾고 있다. 수도권은 물론 전국에서 온다. 코미디 공연을 관람한 김욱선(46·경기도 여주시)씨는 “관광을 위해 아산을 찾았다 개그 공연을 관람했다”며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았고 내용도 개그콘서트 등 TV개그프로그램 못지 않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개그맨 지망생들이 지난 7월 28일 충남 아산시 도고면 옛 물류 창고를 재활용해 만든 코미디홀에서 개그 공연을 펼치고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개그맨 지망생들이 지난 7월 28일 충남 아산시 도고면 옛 물류 창고를 재활용해 만든 코미디홀에서 개그 공연을 펼치고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현재 160여 가구로 인구도 늘고 있다. 마을 이장 김창영(66)씨는 “코미디 홀은 마을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며 “마을 주민들도 기회가 되면 공연을 보고 연기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고 말했다.

개그맨 지망생들이 코미디홀에서 개그 공연을 마친 뒤 관람객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개그맨 지망생들이 코미디홀에서 개그 공연을 마친 뒤 관람객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개그맨 지망생들은 이곳에서 숙식하며 연기수업을 쌓는다. 연기자들은 거의 매일 모여 아이디어 회의를 연다. 공연 프로그램은 보통 한달 단위로 바뀐다. 공연 관람료(어른 2만원, 학생 1만5000원, 어린이 5000원) 수익으로 공동생활비를 충당한다. 개그맨 지망생은 약간의 출연료를 받는다.

이곳에서 생활하며 꿈을 이룬 개그맨 지망생도 있다. 2015년 유재필(23)이 SBS 신인 개그맨이 됐다. 군 복무 중이던 2013년 8월 ‘슈퍼스타 K’에 출연한 적이 있는 그는 지난해 개그맨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산에 왔다. 이 곳 공연팀 장령임(22)씨는 “코미디 홀에서 연기력을 쌓아 방송에 진출하는 게 꿈”이라며 “시골 주민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개그맨 지망생들이 지난 7월 28일 개그 공연을 마친 뒤 관람객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개그맨 지망생들이 지난 7월 28일 개그 공연을 마친 뒤 관람객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개그맨 지망생들은 오는 9월 아산시내에서 코미디 축제를 연다. 엄태경 관장은 “방송에서는 볼 수 없는 개성있고 재미있는 공연으로 코미디홀을 전국적인 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아산=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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