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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 통학버스 1년' 아직 의식불명인 아이…판박이 사고는 반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7월 광주광역시에서 무더위 속에 통학버스에 7시간 넘게 갇혔다가 구조됐지만 의식 불명에 빠져 1년이 넘도록 치료 중인 최모군. 광주시교육청, 유치원 단체 관계자들이 전남대병원에 입원 중인 최군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광주시교육청]

지난해 7월 광주광역시에서 무더위 속에 통학버스에 7시간 넘게 갇혔다가 구조됐지만 의식 불명에 빠져 1년이 넘도록 치료 중인 최모군. 광주시교육청, 유치원 단체 관계자들이 전남대병원에 입원 중인 최군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광주시교육청]

어른들의 부주의로 깊은 잠에 빠진 아이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통스러운 듯, 코에 꽂은 튜브를 통해 공급되는 음식물을 때때로 토해내곤 한다. 엄마는 의식이 돌아오길 바라며 1년이 넘도록 아들의 곁을 지키고 있다.

코에 연결된 튜브로 음식물 공급받으며 입원 치료 #사고 일으킨 유치원은 '폐쇄 명령'에 반발해 소송 #전국 곳곳에서 통학버스 갇힘 사고 여전히 되풀이 #"인솔교사 등 주의 기울이고 버스 안전장치 검토해야"

광주광역시 전남대병원 소아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최모(5)군은 의식이 없는 상태다. 여느 아이처럼 활발했던 최군은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침대에 누운 채 눈을 깜박이고, 기침을 하곤 하지만 말을 하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최군이 사고를 당한 건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7월 29일이다. 최군은 이날 오전 9시10분부터 오후 4시40분까지 7시간이 넘도록 유치원 통학버스에 방치됐다. 광주의 낮 최고기온이 35도를 넘을 정도로 무더운 날이었다. 뇌 손상을 입은 최군의 체온은 약 42도였다.

당시 버스기사와 인솔교사는 유치원에 버스가 도착한 뒤 최군을 제외한 8명의 아이만 데려갔다. 내부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최군을 두고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무더운 날씨 속에 최모(5)군이 7시간 넘도록 홀로 방치됐던 통학버스. [사진 광주지방경찰청]

무더운 날씨 속에 최모(5)군이 7시간 넘도록 홀로 방치됐던 통학버스. [사진 광주지방경찰청]

최군 가족의 삶은 엉망이 됐다. 병원비는 학교안전공제회와 버스회사 측이 부담하고 있지만 평온했던 가족들의 일상은 깨졌다. 어머니 이씨는 최군 곁을 지키느라 둘째를 제대로 돌볼 수 없게 됐다. 집과 병원을 오가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아들이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절망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는 고통이 크다.

하지만 최군이 다녔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재 유치원은 여전히 정상 운영되고 있다. 유치원 측이 교육청의 행정처분에 반발해 맞서고 있어서다.

광주광역시교육청은 지난해 11월 유치원에 폐쇄 명령을 내렸다. “2016년 12월 31일자로 유치원을 폐쇄하라”는 내용이다. 유치원 측은 며칠 뒤 폐쇄 명령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집행정지 신청에서 유치원 측 손을 들어줬다. 교육청 측이 항고를 했지만 기각되자 다시 재항고를 한 상태다. 광주시교육청 관계자는 “유치원의 주장처럼 법원이 ‘폐쇄 명령은 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며 “오는 10일 본안 소송 선고 때 법원의 판단이 바뀌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더운 날씨 속에 최모(5)군이 7시간 넘도록 홀로 방치됐던 통학버스. [사진 광주지방경찰청]

무더운 날씨 속에 최모(5)군이 7시간 넘도록 홀로 방치됐던 통학버스. [사진 광주지방경찰청]

원장에 대한 징계 처분도 이뤄지지 못했다. 교육청은 원장과 인솔교사, 출석관리를 하는 주임교사 등 3명에 대해 최고 파면까지 가능한 중징계를 요구했지만, 유치원 설립자인 원장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징계를 거부하며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앞서 지난 4월 대법원에서 버스기사는 금고 6개월, 주임교사는 금고 5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인솔교사는 항소심에서 금고 8개월의 형이 확정됐다.
최군의 사고 이후 교육당국이 재발 방지에 나섰지만 통학버스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지난 1월 대구에서는 3살 여자 아이가 유치원 통학버스에 1시간 이상 방치됐다가 구조됐다. 기사와 인솔교사가 현장체험학습을 마치고 유치원에 도착한 버스 내부를 제대로 살피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지난 2월에도 전남 광양에서 6살 아이가 통학버스에 40분간 갇혀 있다가 구조됐다. 버스기사와 인솔교사는 유치원에 도착한 버스에서 잠 든 아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아이는 행인의 신고로 구조됐다. 지난 5월에는 경기 과천에서 5살 아이가 통학버스에 방치돼 있다 2시간30분 만에 발견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판박이처럼 똑같은 이들 사고의 원인은 모두 안전불감증과 부주의다. 통학버스가 하차한 뒤 인원 파악만 제대로 했다면 예방할 수 있는 사고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남대 유아교육과 김경숙 교수는 "유치원·어린이집 교사와 통학버스 기사들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게 기본적인 사고 예방 방법"이라며 "이와 동시에 아이 혼자 차에 남겨졌을 경우 이를 알려주는 감지 센서 등을 설치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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