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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전인가? 실리콘밸리에 도전하는 그들의 무기 4가지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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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판이다.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T 가전 전시회 'CES2017'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전하던 말이다. 중국기업이 대거 회의장을 차지했다는 얘기다. 주최측 자료에 따르면 당시 전시회에 참가한 중국 업체는 1294개, 전체 참가 회사의 32%를 차지한다. 3개 중 하나는 중국 기업이었던 셈이다.

CES2017의 ZTE 부스. 선전에 본부를 두고 있는 ZTE는 화웨이와 함께 중국 통신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출처: 이매진차이나]

CES2017의 ZTE 부스. 선전에 본부를 두고 있는 ZTE는 화웨이와 함께 중국 통신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출처: 이매진차이나]

그런데 당시 참가한 중국 기업들을 다시 분석하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중국 참여 업체의 52.4%가 선전(深圳)에서 왔다는 점이다. 선전이 중국 ICT를 주도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선전 이외의 광둥 지역 기업은 238개(전체의 18.4%). 결국 이번 CES에 참석한 중국 IT 업체의 70%가 선전, 또는 그 인근 지역에서 왔다는 얘기다.

화웨이, BYD, DJI, OPPO TCL... #수많은 창업가들이 뛰어들고 있는 곳 #우리는 이쯤에서 다시 물어야 한다. #'왜 선전인가?' #'무엇이 오늘의 선전을 만들었는가?

화웨이, BYD, DJI, OPPO TCL... 이 밖에도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많은 기업, 창업가들이 내일의 거부를 꿈꾸며 창업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 그곳이 바로 선전이다.

선전의 IT기업 얘기는 이미 흔한 스토리가 됐다. 언론, 인터넷의 주요 화제였다. '식상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이쯤에서 다시 물어야 한다.

'왜 선전인가?'

선전 IT의 심장부 난산(南山)소프트웨어단지 [출처: 차이나랩, 이하 같음]

선전 IT의 심장부 난산(南山)소프트웨어단지 [출처: 차이나랩, 이하 같음]

필자는 한국능률협회와 차이나랩이 함께 기획한 '선전, 중국 제4차 산업혁명의 현장을 가다'프로그램에 참석했다.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진행된 이번 프로그램은 국내 굴지 통신사의 전무급 임원진이 동행했다. 화웨이, BYD, 광치(光啓) 등 최고 IT 회사를 방문했고 전자 매장 화창베이, 액셀러레이터 잉단(硬蛋), 창업카페 3W, 그리고 현지 나가있는 한국 기업과 기업인을 두루 만났다.

끊임없이 던진 질문은 '왜 선전인가?'였다.

점심 식사를 같이 한 최문용 네이버랩스 총경리는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선전은 최고의 하드웨어 생산 단지입니다. 그동안 축적해온 제조 역량이 ICT로 연결되고 있는 거지요. 과거 이곳에는 다른 건 다 있는게 없는 게 딱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아이디어'지요. 그러니 '산자이(山寨)', 즉 '가짜의 도시'라는 악명을 얻었던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이곳 선전으로 아이디어가 몰려들고 있습니다. 산자이의 본산이 ICT의 성지로 둔갑을 하고 있는 거지요.

한 잔의 커피와 함께 창업을 얘기하는 곳... 선전 곳곳에는 창업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한 잔의 커피와 함께 창업을 얘기하는 곳... 선전 곳곳에는 창업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랬다. 선전은 '뭔가를 만드는 도시'였다. 1979년 경제특구로 문을 열 때부터 이웃 홍콩, 대만의 화교 공장들이 대거 선전과 그 이웃으로 몰려들었다. 신발, 완구로부터 시작된 '따이공(代工, 대신 생산)' 비즈니스는 90년대 들어 가전, 컴퓨터로 발전했다.

한때 이런 말이 나왔다.

선전과 이웃 둥관(東莞)을 잇는 고속도로가 막히면 전 세계 컴퓨터의 70%가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된다.

선전의 컴퓨터 부품 제조 역량을 두고 한 말이다. 지금은 접었지만, 삼성SDI가 컴퓨터 회로 기판을 만든 것도 이곳이다. LG전자도 백색 가전제품을 만들어 중국에 팔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IT 산업의 큰 흐름이 핸드폰으로 옮길 때 선전은 핸드폰 메이커들로 붐볐고, 스마트폰이 폴더폰을 밀어낼 즈음에는 스마트폰 공장이 들어섰다. 그렇게 하드웨어 역량이 차곡차곡 쌓여왔던 것이다.

산자이 제품도 함께 컸다. 저장(浙江) 성의 '고생을 마다않은(吃苦)' 기업인들이 가짜 생활 용품을 만들었다면, 선전의 '혁신가'들은 가짜 핸드폰을 만들었다. 지금도 시내 화창베이에 가면 짝퉁 상품이 수두룩하다. 가짜 핸드폰 하나 조립하는 건 일도 아니다.  30분이면 아이폰 6을 아이폰7으로 업그레이드해주는 곳이 바로 화창베이이다.

화창베이. 전자제품에 관한한 없는 게 없다는 곳이다.

화창베이. 전자제품에 관한한 없는 게 없다는 곳이다.

'따이공', '산자이'의 도시 선전...이 도시는 어떻게 중국 ICT의 중심지가 되었을까?

이는 곧 선전에 어떻게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몰리게 됐느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선전은 혁신적인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디어와 기술만 가져와라. 우리가 다 만들어주겠다."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연결해주겠다는 거지요. 아이디어를 실현시켜 줄 하드웨어 제작 여건이 마련됐기에 가능한 얘기입니다.

정준규 코트라 선전 관장의 말이다.

실제로 그랬다. 선전의 크고 작은 공장들은 다양한 규모의 시제품을 만들어 줄 수 있다. 10개도 가능하고, 1000개도 가능하고, 1억 개도 만들 수 있다. 도면을 가져가면 그 자리에서 만들 수 있을 지의 여부를 알려준다. 일주일 안에 부품 구하고, 시제품 뚝딱 만들어 넘긴다. 10개를 만들어주는 화창베이 출신 '창업가'가 있고, '글로벌 따이공'이라는 별명을 가진 폭스콘은 같은 제품을 한 달에 100만 개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곳이 바로 선전이다.

홍콩과기대학에서 공부하던 한 중국 유학생은 뭔가 날아가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하늘에서 땅을 관찰하고, 하늘 길로 물건을 나르면 얼마나 편할까? 그는 지도교수에게 우리 돈 약 3000만 원을 빌려 창업을 하기로 했다. 어디로 갈까? 당연히 이웃 선전이다. 그가 원하는 시제품을 뚝딱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선전이기 때문이다. 그 업체가 바로 지금 세계 드론 시장을 장악한 DJI다.

화창베이의 드론 판매 코너. 갖가지 드론이 싼값에 팔리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DJI도 여러 브랜드 중 하나일 뿐이다.

화창베이의 드론 판매 코너. 갖가지 드론이 싼값에 팔리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DJI도 여러 브랜드 중 하나일 뿐이다.

하드웨어 역량이 갖춰졌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오고 있다. 자, 그렇다면 그다음에 필요한 게 뭔가?

돈이다.

창업 투자가가 선전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창업을 유도하고, 생산과 유통을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터 기업이 속속 선전으로 몰려든 것이다. 그들은 지금 아이디어와 공장을 연결하고, 기존 공장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급하고 있다.

선전 하이테크 단지인 난산(南山)에 자리 잡은 액셀러레이터 잉단(硬蛋)은 그중 하나다. 이 회사 전시장에 들어가니 낯익은 로봇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조기교육 로봇이다.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그림책도 보여주고, 수학도 가르쳐준다. 엄마가 옆에서 아이 돌보듯, 꼬마 옆에서 놀아주고 교육을 시키다. 지난해 중국 혁신 브랜드로 꼽혔던 제품이다.

잉단 전시관. 잉단이 인큐베이팅 했거나 투자한 기업의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잉단 전시관. 잉단이 인큐베이팅 했거나 투자한 기업의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로봇 제작회사인 용이다(勇藝達)는 평범한 따이공 업체였습니다. 저희 잉단의 도움으로 완구에 인공지능(AI)기술을 주입했지요. 인텔과 마이크로스프트 등의 기술 지원도 끌어냈습니다. 지금은 미국, 인도, 사우디 등 세계 각지로 수출도 합니다. 어엿한 제4차 산업혁명 기업으로 거듭난 것이지요.

천징인(陳靜茵) 전시관 관장의 설명이다.

잉단은 IT 제조업체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전자제품 소싱 전자상거래 시스템인 커통신청(科通芯城,www.cogobuy.com)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 둥지를 틀고 파트너를 찾는 기업이 약 1만 5000개에 이른다. 단순한 인큐베이팅과는 차원이 다른 회사다.

화창베이. 위에 '짝퉁 제품은 엄격히 단속하겠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화창베이. 위에 '짝퉁 제품은 엄격히 단속하겠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선전을 선전으로 만든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바로 정부다.

흔히 혁신은 민간부문의 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중국은 정부도 혁신 대열에 참여한다. 단지 인터넷 플러스 정책을 추진하고, 쌍창을 부르짖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선전은 정부와 민간이 짝짜꿍하면서 혁신을 이끌어간다.

중국 전기자동차 업계 첨단기업으로 꼽히는 BYD를 보자.

이 회사 역시 출발은 '따이공'비즈니스였다. 지금도 삼성 스마트폰의 커버를 BYD가 만든다. 그렇게 축적한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사업 영역을 배터리로 넓혔고, 결국 전기자동차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내연 엔진에서는 뒤졌지만, 전기자동차에서는 미국을 넘어서야 한다는 중국 정부의 정책이 모두 BYD에 투사되고 있다.

BYD의 자동차 엔진. 이건 가솔린 엔진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50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전기차는 그중 10만 대에 달했다.

BYD의 자동차 엔진. 이건 가솔린 엔진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50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전기차는 그중 10만 대에 달했다.

우리는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한다. 그룹 회장(왕촨푸)은 13차 5개년 계획의 자문 위원으로 참석해 표준 설립에 참여한다. 개인보다는 정부 부문에 더 큰 기회가 있다. 버스, 경찰차, 항만 차량, 학교 등에서 필요한 전기차를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B2G, 각급 정부야말로 우리의 주요 고객이다.

천쉬밍(陳旭明) BYD 인력자원처 고급경리의 말이다.

선전 ICT의 상징 화웨이는 중국을 대표하는 민영 글로벌 기업이기도 하다. 물론 뛰어난 기업이다. 전체 매출액의 10%이상을 R&D에 투자한다. 그러나 이 회사가 오늘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각종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정부가 정책은행을 동원해 해외 시장 개척을 지원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선전의 거리. 선전에서 운행되고 있는 자동차의 70%는 BYD가 만든 전기차다.

선전의 거리. 선전에서 운행되고 있는 자동차의 70%는 BYD가 만든 전기차다.

자, 정리해보자.

하드웨어 기반이 있고, 아이디어가 몰리고, 그리고 돈이 모이면서 지금 선전에서는 '혁신의 진화'가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개입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은 더 커지고 있다. 애초부터 청년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무에서 유를 일구어낸 실리콘밸리와는 기본적으로 다른 선전의 혁신 DNA다.

HAX라는 액셀러레이터는 본사를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예 선전으로 옮겼습니다. 미래의 IT 비즈니스는 실리콘밸리가 아닌 선전이 주 무대로 등장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죠. 지금 선전에 혁신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는 겁니다.-천징인 관장

선전=한우덕 기자

※ 후기: 우리는 왜 지금 선전을 주목해야 할까요? 사드 문제로 인해 중국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중국을 외면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중국을 똑바로 보고, 그들의 움직임에 어떻게 우리가 대응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선전은 중국 ICT의 용광로 같은 곳이었습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에 비하면, 사드에 대한 젊은이들의 생각도 자유롭습니다. 중국과의 비즈니스 접점을 찾아야 한다면 그건 선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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