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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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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중앙일보 <2017년 7월 20일 26면>
개개인의 삶을 국가가 다 책임질 수는 없다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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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국정 청사진을 담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어제 공개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향하는 설계도가 되고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193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5개년 계획에는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비전 아래 5대 국정 목표, 20대 국정 전략, 100대 국정 과제가 촘촘히 담겼다.

100대 국정 과제에는 ▶굳건한 한·미 동맹 기반 위에 전작권 조속한 전환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서비스 산업 혁신 ▶혁신을 응원하는 창업 국가 조성 등이 망라돼 있다.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한 일자리 경제’에는 논란이 됐던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공약이, ‘권력기관의 민주적 개혁’에는 검찰 개혁을 위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이 담겼다. ‘남북 간 화해협력과 한반도 비핵화’에는 유연하게 민간 경제협력의 재개를 추진하고 여건 조성 시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설계도 없이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없고, 나침반이 없으면 나아가는 방향과 목표를 알기 힘들다. 5개년 계획은 국가 운영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향후 국정 운영의 평가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5년을 3단계로 나눠 이행목표와 계획을 설정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2018년까지는 권력기관 개혁과 개헌을, 2019~2020년엔 광역 자치경찰 전면 실시, 준자율주행차 조기 상용화, 연대보증제 폐지 등 새 정부의 대표 정책을 마무리하겠다고 약속했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 공공기관 비정규직 폐지, 노후 화력발전소 폐쇄 등 민감한 내용은 집권 후반기인 2021년 이후로 미뤘다.

문제는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5년간 178조원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재원 마련 방안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증세에 대한 언급을 애써 자제했던 대선 공약에서 별로 나아가지 못했다. 한 표가 아쉽던 선거판에서의 공약과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는 새 정부의 국정 운영 청사진이 같을 수는 없다.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와 뭐가 다르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새 정부가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민감한 증세 이슈를 뒤로 미룬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발 먼저 시원하게 뻗어 보고 누울 자리를 만드는 격이다.

5대 국정 목표엔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가 포함돼 있다. 100대 과제 중에 가장 많은 32개가 여기에 속한다. 복지·보육·교육·환경·안전 등은 최근 들어 국가의 책임성이 강조되는 분야이긴 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자신이 내건 ‘J노믹스’가 큰 정부인지 작은 정부인지보다는 유능한 정부인지 무능한 정부인지 따져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개인의 삶을 어디까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포용적 복지를 넘어 ‘나라에서 다 책임져 준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주지 않을까 걱정된다. 국민 개개인의 삶을 국가가 다 책임질 수는 없다.

한겨레 <2017년 7월 20일 23면>
‘촛불 정신’ 담은 국정운영 청사진, 문제는 실행이다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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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청사진이 공개됐다.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19일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국정운영 5개년 계획’(보고서)을 발표하고, 국가비전과 5대 국정목표, 100대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재원 마련 방안, 입법 계획도 담았다. 짧은 선거 기간, 충분치 않은 수권 준비 절차 등의 여건에도 촛불 시민들이 현 정부에 부여한 시대적 요구를 국정운영 로드맵으로 적극 수렴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문재인 정부는 깨어 있는 시민의 각성과 촛불의 힘에 의해 탄생했다. 그렇기에 정치, 사회, 경제 등 여러 분야에 실질적인 대개혁을 이뤄내 대한민국을 ‘나라다운 나라’로 만들어야 할 역사적 소명을 짊어지고 있다. 정부가 국가비전으로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천명하고, 5대 국정목표로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내세운 것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들 과제를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487개 세부 실천과제 가운데 66%인 321개가 국회 입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입법부의 상황은 여소야대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현실을 냉철히 인식하고 그 어느 때보다 유연한 협치와 통합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개혁을 하려면 기득권과 충돌하고, 여러 이해관계자 사이의 갈등을 잘 조절해야 한다. 국정목표를 견지하면서도 사회적 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실행전략이 필요하다. 행정부 안에서도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한 경제부처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지 않고 사회부처도 동등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제시된 국정과제엔 기초연금 30만원 인상, 아동수당 신설, 사회서비스 일자리 34만 개 창출 등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의미 있는 정책과제가 많다. 하지만 아쉬운 대목도 적잖다. 이른바 제이(J)노믹스의 핵심인 일자리 창출과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해선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분할돼 있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함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 제시돼야 하는데, 이번 보고서에서는 대선 공약보다 외려 후퇴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정책과제는 입법으로 실행의 근거를 갖추고 재원을 통해 현실화된다. 보고서는 100대 국정과제를 이행하기 위해선 공약집에 썼던 것과 마찬가지로 5년간 178조원, 연평균 35조6000억원의 예산이 더 들어갈 것으로 추정했다. 이를 위해선 사실상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렇지만 이번 보고서에서도 비과세·감면 정비와 지출 구조조정을 내세워 증세를 통한 재원 조달은 피해갔다. 부실한 재원 대책을 보강해 정부의 정책 의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논리 vs 논리
“나라가 다 책임진다는 시그널 될까 걱정” vs “국정목표 견지하며 사회적 대화 유연하게 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9일 문재인 정부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 로드맵에는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비전 아래 중점 추진할 국정 어젠다를 5대 목표와 20대 국정 전략, 100대 국정과제, 487개 실천과제로 정리해 놓았다.

계획 수립 자체에 대해서는 한겨레와 중앙 모두 긍정적이다. 한겨레는 “촛불 시민들이 현 정부에 부여한 시대적 요구를 국정운영 로드맵으로 적극 수렴했다”는 점을 높이 산다. 중앙은 “5개년 계획은 국가 운영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향후 국정 운영의 평가 기준이 된다는 점” “문재인 정부 5년을 3단계로 나눠 이행목표와 계획을 설정”해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을 좋게 평가한다. 하지만 국정 과제들을 현실로 풀어내는 방안에 대해서는 두 사설의 견해가 크게 엇갈린다. 한겨레는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한 일자리 경제’ 실현이라는 제이(J)노믹스의 핵심 목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누어져 있는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근로시간을 줄일 구체적인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공공부문 근로자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등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국가 재정 부담이 늘어나고 무인 계산기, 셀프주유소 확대 등 경제가 되레 일자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한겨레는 “행정부 안에서도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한 경제부처가 (정책을) 일방적으로 끌고 가지 않고 사회부처도 동등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하라고 당부한다. 시장 논리에만 휘둘리지 말고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무게중심을 두라는 의미로 들린다.

문제는 재원이다. 5년간 공공일자리 81만 개, 사회서비스 일자리 34만 개를 만들고 청년 구직자들에게 3개월간 30만원의 수당을 지급하며 누리과정 비용을 전액 국고 부담하는 등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연평균 35조6000억원의 예산이 더 들어간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에는 증세 없이 지출의 구조를 조정해서 예산을 마련해 보겠다는 방안만 담겨 있다. 이전 정부도 비슷한 시도를 했다가 담뱃세를 올리고 연말정산 공제에 손을 대는 등의 ‘꼼수’들을 남발했었다. 그럼에도 국가 채무는 4년 동안 194조6000억원이나 늘어났다. 이 때문에 한겨레는 “사실상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을 소개한다. 보편적 증세를 위한 국민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중앙 역시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을 꼬집는다. 구체적으로는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와 뭐가 다르냐”는 비판과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민감한 증세 이슈를 뒤로 미룬다”는 의혹까지 소개한다. 그러나 중앙의 논지는 증세를 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정책 방향을 문제 삼는다.

복지정책은 한 번 혜택의 물꼬가 트이고 나면 되돌릴 수 없는 속성이 있다. 국민들의 반발이 큰 탓이다. 100대 국정과제 중 가장 많은 32개가 복지·보육·교육·환경·안전 분야에 몰려 있다. 이 모두는 많은 재원이 들어가야 하는 것들이다. 중앙은 개인의 삶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선언이 “포용적 복지를 넘어 ‘나라에서 다 책임져 준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주지 않을까 걱정”한다.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우리나라의 재정 승수는 0.4~0.5 남짓이다.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린다고 해도 국민총생산(GDP)은 그 절반밖에 늘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일자리 창출은 민간 기업들이 잘 굴러가 채용을 늘릴 때 이뤄진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은 이를 위한 마중물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의 투자가 마중물에 그치지 않고 끝없는 지출로 이어진다면 이는 국가재정의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이 추경에 반대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겨레가 “국정목표를 견지하면서도 사회적 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와 사회부처가 동등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달라는 주문과는 사뭇 다른 입장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