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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평화를 거부하는 평화협정의 역설

중앙일보

입력

평화협정으로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나라가 있다. 바로 남베트남 즉 월남이다. 평화협정이 남베트남 월남을 죽인 셈이다. 제네바 협정에 따라 베트남은 17도선에서 남북이 분단되었다. 북쪽에는 공산주의의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이, 남에는 미국이 지원하는 베트남 공화국(월남, 남베트남)이 자리 잡게 되면서 상호 대치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1960년대 베트남이 공산화되는 것을 우려하여 미국의 전면적인 베트남 개입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것은 베트남이 공산화 되면 태국, 말레시아, 인도네시아 일본, 타이완, 필리핀, 호주, 뉴질랜드가 연쇄적으로 공산화된다는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도미노 이론’에 근거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후 최대 54만 명의 미군이 월남에 주둔하였고, 연인원 250만 명의 미군이 월남전에 투입되어 남베트남의 공산화를 막았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적 실패와 국내의 반전 여론으로 인해 1968년 미국ㆍ북베트남 평화회담이 시작되었다.

북한이 지난 28일 기습적으로 2차 시험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미사일.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28일 기습적으로 2차 시험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미사일. [연합뉴스]

이 회담은 4자회담(미국, 북베트남, 남베트남, 그리고 남베트남 임시정혁명부) 형식을 띄기는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하노이ㆍ워싱톤 양자회담으로 진행되었다. 결국 1973년 1월 23일, 전쟁종식과 베트남에서의 평화회복에 관한 협정이 미국 측과 베트남 민주공화국 사이에 타결되었고, 1월 27일 동 협정은 미국, 북베트남, 남베트남, 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에 의해 조인되었다. 이 협정에서는 적대행위의 종식과 남베트남에서의 북베트남군과 미군의 철수가 합의되었다. 이 외에도 베트남 국민의 근본적인 민족권리, 포로 송환, 남부 베트남 국민의 자결권, 남북의 합의하에 단계적이고 평화적인 통일까지도 규정하고 있었다.

또한, 파리평화협정에 의거해서 정전조건과 평화를 감독하도록 하기 위해 캐나다, 헝가리, 폴란드, 인도네시아가 참가하는 ‘국제 통제ㆍ감독 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s of Control and Supervision)’를 구성해 놓기도 하였다. 파리평화 협정으로 미군은 단계적으로 철수하였다. 이미 파리평화회담이 진행되면서 미군은 감군을 진행하여 파리평화협정 서명 시 2만 명의 미군만이 남았고 1973년 5월까지 완전 철군이 단행되었다. 이 와중에서도 베트남에서의 전투는 계속되었고 1975년 4월 30일에는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을 함락함으로써 베트남 공산화 통일이 이룩되었다. 이로써 남베트남 월남은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북한 역시 북 베트남과 같이 ‘대미전투’ 승리를 통해 미ㆍ북 간의 평화협정 체결로 주한미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어 그들 식의 한반도 통일 달성을 꿈꿔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은 베트남과 같이 실질적인 전쟁을 치루지 않고서도 핵ㆍ미사일 개발을 통한 ‘대미전투’ 구도를 형성해 오고 있다. 소위 그들이 말하는 ‘반제반미 핵대결전’이 그것이다. 현재 북한의 김정은은 이 ‘반제반미 핵대결전의 최후승리’를 앞당겨 나가고자 한다. 실제로 그들은 “오늘 우리 앞에는 반제반미대결전을 총결산하고 사회주의위업의 최후승리를 이룩하여야 할 중대한 력사적 임무가 나서고 있습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김정은 정권이 ‘신형중장거리전략탄도로케트<화성-12>형’ 시험발사와 ‘중장거리전략탄도탄 <북극성-2호>형’시험발사와 더불어 그들이 말하는 소위‘국가 핵무력완성을 위한 최종관문인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4>Ⅰ,Ⅱ 시험발사를 강행함으로써 미국을 크게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대한 압박은 ‘미ㆍ북 평화협정’체결을 유도하는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같이 북한은 핵ㆍ미사일 수단을 활용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미ㆍ북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대미 외교를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거듭하면서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요구는 더욱 노골화되는 추세를 보여 왔으며 향후 더욱 심화될 것이다. 북한은 그들의 핵실험을 미ㆍ북 평화협정 체결을 강권하는 수단으로 하여 적극적인 대미 외교공세를 펼칠 것이다. 최근 미국 본토를 직접 위협할 수 있는 ICBM 급 미사일의 성공적인 시험발사와 더불어 북한은 한ㆍ미동맹관계 약화와 주한미군 철수를 압박하는 보다 적극적이고 과감한 ‘평화활동’을 펼칠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의 대미 평화협정 체결 요구가 단순히 정치적 선전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근거해서 이를 외면하거나 무시해서도 안 되게 되었다.

북한 당국은 미국과의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중국과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자 할 것이다. 일단 중국이나 러시아는 핵ㆍ미사일 개발과 같은 도발에 대해 심히 부정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내심으로 북한의 무모한 도발을 반기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ㆍ중국ㆍ러시아 3국이 공히 주한미군 철수로 한반도에서 미국이 축출되기를 원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그들을 대신하여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통한 미국의 한반도 군사개입을 억제해 나가도록 의도하고 있을 수 있다. 마치 냉전시대 중국과 구소련이 아프리카에서 서방세력을 몰아내고 공산주의 확장을 위해 북한을 ‘프락치 국가’로 활용한 것처럼 말이다. 현실적으로도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과 같이 군사적 수단을 포함한 강력한 압박으로 북한의 핵ㆍ미사일을 포기케 하는 것 보다 북한의 주장대로 미ㆍ북 간의 평화협상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는 공동성명에서 “쌍 중단(북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ㆍ미 연합군사 훈련 중단)과 투 트랙(비핵화와 북ㆍ미 평화협정 협상 병행)이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하고 실현 가능한 방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볼 때, 향후 북한의 핵ㆍ미사일 관련 협상국면이 전개될 경우 『한ㆍ미 군사훈련 중단→ 미ㆍ북 평화협정 협상 도출→ 주한미군 철수』 목표 달성을 위한 보다 실질적인 북한ㆍ중국ㆍ러시아의 3각 협력환경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앞선다. 북한의 의도대로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상황이 전개된다면 과연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올 것인지에 대해서 심각히 고민해 보아야 한다. ‘평화협정’관련 접근에 있어서 보다 신중한 태세가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정영태 동양대학교 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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