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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빨래 해주는 게 병역 의무”…반복되는 군 공관병 잔혹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육군 고위 장성의 가족이 관사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을 비인격적으로 대우하고 사적인 일을 시켰다는 폭로가 나왔다.

군 인권센터, 군 지휘관 ‘갑질’ 폭로 #“사령관 가족이 공관병 노예 취급” #일각선 “공관병 제도 폐지해야”

시민단체인 군 인권센터는 31일 “육군 제2작전사령부 박모 사령관의 가족이 관사의 공관병들에게 갑질을 넘어 노예 수준의 대우를 했다”고 주장했다. 공관병은 연대장 이상 부대 지휘관의 관사를 관리하는 병사들을 일컫는 말로 조리병과 운전병도 포함된다.

군 인권센터의 임태훈 소장 [연합뉴스]

군 인권센터의 임태훈 소장 [연합뉴스]

군 인권센터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초까지 복수의 관계자들로부터 받은 제보에 따르면 박 사령관의 부인은 평소 청소나 가족의 빨래뿐 아니라 안방의 블라인드를 칠 때도 공관병을 불렀다. 조리병은 사령관의 첫째 아들이 밤늦게 들어오면 이를 기다렸다가 간식을 준비해야 했다.

폭언도 자주 있었다고 한다. 박 사령관의 부인은 명절에 선물로 받은 과일 중 썩은 것이 있자 공관병에게 집어던졌고, 교회에 간 뒤 성경책이 없자 “(미리 준비했어야지) 너는 생각도 없고 센스도 없다”고 화를 냈다. 미나리를 다듬는 조리병을 향해선 칼로 도마를 치며 “너는 제대로 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병사들에 대한 통제도 심해, 면회나 외박, 외출이 거의 불가능했다고 한다.

때론 직업 군인들도 사적인 일에 동원했다. 공군에 복무 중인 박 사령관의 둘째 아들이 휴가를 마치고 복귀할 때는 운전 담당 부사관이 해당 부대까지 태워줬다. 집무실에서 업무를 하는 보좌관들은 종종 ”공관 텃밭을 손질하라“는 지시를 받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았다는 게 군 인권센터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육군 관계자는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제기된 의혹이 사실인지 여부를 먼저 파악한 후 그에 대한 입장을 내놓을지 결정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공관에서 일하는 병사들은 소속 부대의 지휘를 받지 않고 지휘관과 가족의 개인 비서처럼 근무한다. 2008년 육군의 한 사단 공관에서 복무했던 김모(29)씨는 “사단장 가족이 키우는 개를 잘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였고, 사모님의 기분을 얼마나 잘 맞추느냐에 따라 그날 하루가 좌우됐다”며 “24시간 공관에서 지내는 까닭에 다른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기도 어려웠다”고 떠올렸다.

군 인권센터는 “공관병 제도는 국가에 헌신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입대한 장병을 ‘현대판 노예’로 취급하며 자긍심을 깎아먹는 제도”라며 폐지를 주장했다.

지난 달에는 육군 39사단 문모 사단장(소장)이 공관병에게 술상을 차려오라고 지시하고 뺨을 때리는 등의 ‘갑질’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최근 보직 해임됐다. 2015년엔 당시 최모 공군참모총장이 운전병에게 ”관용차로 아들을 서울 홍대의 클럽에 데려다 주라“고 명령했다는 폭로가 나와 물의를 빚기도 했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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