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하려 가는 대학, 교육·학문의 자기 목적성 훼손

중앙선데이

입력 2017.07.30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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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호 23면

[빠른 삶, 느린 생각] 학문과 인간됨의 위기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우리나라처럼 아이들의 교육에 관심을 많이 쏟는 나라도 많지 않다고 할 것이다. 인간형성의 주된 수단으로서의 교육에 대한 믿음이 전통 속에 깊이 새겨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육이 취직 그리고 출세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생 동안 어떻게 먹고 사느냐 하는 것에 그것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대학의 경우에 그러하다. 또 대학 입학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어떤 대학에 가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입시 준비에 경주된다. 이번 정부는 특히 여기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바로잡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에 대한 조처들이 교육의 방향을 바로잡는 것이 될런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나아가서 그것을 더욱 왜곡시키는 쪽으로 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가지게 한다. 그것은 그러한 조처들이 교육의 근본적 의미에 대한 바른 이해에 입각한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학문의 진리 추구만을 위하여
실용적 목적 배제하자는 이상
인간적 가치 세속화 속 입지 잃어

교육 바로잡으려 나선 정부
근본적 의미에 대한 이해 모자라
개혁 방향 바로잡을지 의문시

20세기 초의 독일의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의 저서에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이라는 것이 있다. 책의 제목이 말하려는 것은 유럽의 학문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고 그에 대한 대책이 그가 창안한 현상학이라는 것이다. 그가 지적하는 학문적 위기는 동의할 만한 것일 수 있으나 현상학이 그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을런지 모른다. 그보다 먼저 행하여졌던 후설의 강연 원고 ‘철학과 유럽의 인간됨의 위기’는 비슷한 내용을 가졌으면서, 적어도 제목에 있어서는 보다 일반적인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위기에 대한 후설의 진단은 1930년대의 유럽의 상황에 대한 것이나 대체로는 오늘의 서구 학문의 상황에도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학문에 대한 근본적 이해를 생각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나 한다. (후설의 글들의 발표 연대로 보아 나치즘에 대한 우려를 표현함직 하지만, 그의 상황 이해는 전적으로 학문의 방법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었다.)

후설, 지나친 과학주의적 접근 경계

후설의 위기의식에서 비판은 주로 실증주의 그리고 실용주의를 향한다. 실증주의는 과학의 객관성을 추종하는 여러 사상의 흐름을 가리킨다. 후설의 생각으로는 모든 학문적 질문의 배경에는 근본적 동기들이 있는데, 지나치게 과학주의적인 접근은-특히 인문과학에서-그 바탕이 되는 넓은 지평을 등한시하게 하여, 진정한 진리 탐구에 나아가는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지평은, 가장 쉽게 말하여,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이다. 학문에서 제기되는 문제에는 보이지 않게 스며 있는 관심이나 의도가 있다. 이 관점에서 탐구해야 할 대상은 일차적으로 인간의 주체적 의식이다. 그리고는 여기에 맞서는 사물들과 세계다. 후설이 제안한 현상학은 주체로서의 인간과 객관적 세계가 맞부딪히면서 드러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밝혀 보자는 것이다. 이 근본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인간이 자신의 삶 그리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인간됨을 알고 계발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이것이 후설이 유럽 과학, 유럽적 인간의 위기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후설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것은 과학이야말로 세계의 참모습을 밝히려는 인간의 노력을 대표한다고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후설의 위기감은 진리 탐구의 방법에 두 가지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자체로 돌아가라”는 것은 후설 현상학의 가장 중요한 모토였다. 이것은 과학의 탐구에도 그대로 해당될 수 있다. 어느 쪽에나 전제되어 있는 것은 사실에 대한 탐구가 학문의 본령이라는 것이다. 보다 중대한 위기는 ‘사실 자체’의 탐구방법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를 포기한 데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에 대한 객관적 탐구는 학문의 자율성을 요구한다.

학문의 진리 추구 그 자체만을 위하여 다른 실용적인 또는 공리적인 목적의 개입을 배제하여야 한다는 것은 근대 서양학문의 기초에 있는 자기 인식이다. 근대 독일에서 베를린대학은 특히 이러한 이상을 그 창립 이념으로 하였다. 베를린대학의 초대 총장으로 복무한 빌헬름 폰 훔볼트는 대학에서의 학문 연구를 ‘무목적성 (無目的性)’ ‘내면성’ ‘학문성’과 같은 말로 규정하였다. 학문에 관계되는 이러한 특성들이 그 독자성과 자율을 규정할 때, 참으로 객관적인 진리 추구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교육 목표의 자율성이 역설적으로 다른 여러 일에서도 유용한 것이 된다는 점이다. 훔볼트의 생각에 학문은 교양, 개체적 인간의 자기완성을 목표로 한다. 교양을 위해서는 스스로의 내면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자신 안에서 보다 보편적 인간성을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보편적 인간성의 수련은 학습자로 하여금 보다 나은 시민이 될 수 있게 한다. 아울러 그것은 맡은 바 일에 충실하게 한다.

후설이 걱정하는 ‘위기’는 실증주의의 ‘사물 자체’에 이르는 방법이 너무 협소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도 심각한 ‘위기’는 말할 것도 없이 학문이 세속적인 이해타산에 의하여 지배되는 경우이다. 오늘날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경제 제일주의이다. 그리고 국력 성장에 경도된 국가주의이다. 보이게, 보이지 않게 교육과 학문도 같은 의식의 지평에 갇혀 있다. 교육과 학문이 경제와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 기여는 학문의 독자성과 삶의 다른 의무들과의 상호 교환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학문의 자율 공간에서 매개된다. 오늘날 학문은 나라의 위상과 경제 부양의 수단으로서-과학의 경우라면, 신예 기술을 개발하거나 나라의 국제적 명성을 높이는 수단으로서, 문화에 관계된 일이라면, 소위 ‘문화 콘텐트’를 고안해 내는 수단으로서 의의를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교육과 학문의 자기목적성을 단적으로 손상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개인의 이해관계이다. 학교 교육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좋은 대학에 가고 하는 것이 직업과 출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에 와서 교육은 입신양명의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호구와 생계를 위한 취업의 길을 찾는 준비가 되어 있다.

사회적 삶 전체에 대한 비전도 고려해야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단도직입적인 개입이 깊이 있는 해결을 가져온다고 할 수는 없다. 사회 문제를 교육과 학문의 본질을 바꿈으로써 해결할 수는 없다. 사회문제는 사회 정책에 의하여 해결되어야 한다. 안정된 사회를 확립하는 데에 고용, 최저 임금 등 사회 안전망이 그 대책이 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최근 영국의 선거에서, 테리사 메이 총리의 예상과는 달리 야당인 노동당이 괄목할 만한 진전을 보였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어떤 분석은, 젊은 유권자들이 압도적으로 노동당을 지지했는데, 그것은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당수가 대학 등록금 폐지를 약속한 때문이었다고 한다. 미국의 하버드대학은 등록금이 비싼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50% 이상의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고, 부모의 수입이 연 6만5000달러 이하면 장학금을 받기 시작한다.

물론 교육의 비용 외에 대학과 인간의 사회적 삶과의 관계에 대하여서는 생각하여야 할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이 많다. 차별화의 근거에 들어 있는 입시제도, 성적 평가의 방법 등이 참으로 내실 있는 것인가? 대학만이 안정된 삶의 기회를 주는 것이야 하는가? 대학만이 인간적으로 보람 있는 삶을 사는 유일한 통로인가? (코빈 노동당 당수는 대학을 다니지 않은 사람이다.)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가 정책은 근본 원인, 다른 요인들과의 연루, 현실적 대안, 그리고 사회적 삶 전체에 대한 비전-이러한 것들을 고려하는 것이라야 한다. 교육과 대학과 학문의 근본적 이해로부터 너무나 멀리 있는 입장에서 제안된 즉흥적 정책의 두드러진 예가 소위 ‘블라인드 채용제’와 같은 것이다. 여러 증후로 보아 이러한 표피적인 대안은 교육정책의 다른 부분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물론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에 진행되고 있는 인간적 가치의 세속화이다. 교육과 학문도 그 틀 안에서 움직인다. 그리하여 우리의 학문과 인간됨이, 후설이 지적하고자 하였던 것보다 더 깊은 위기에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후 『지상의 척도』『심미적 이성의 탐구』『자유와 인간적인 삶』『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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