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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중국 리더들 ‘롤모델’ 된 명나라 재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장거정 평전
주둥룬 지음
이화승 옮김, 더봄

사람의 운명이 그렇듯, 책의 목숨은 알 수 없는 구석이 많다. 『장거정 평전』도 우연한 인연이 깃들어 회생했다. 장거정(張居正, 1525~82)은 명나라 말기, 정치 부패와 사회 혼란을 바로잡아 부국강병과 민생안정을 꾀한 혁신적인 정치가다. 무수한 개혁운동가가 명멸한 중국에서조차 그의 개혁 여정이 재조명받아 TV 사극과 다큐멘터리로 제작됐다는 성공한 개혁가의 본보기다. 이화승 서울디지털대 중국학부 교수는 대만 유학시절, 중국 경제의 틀이 바뀌는 전환기였던 명대(明代) 중엽에 관심을 쏟으며 그 중심에 있던 16세기 재상 장거정에 주목했다.

이 교수가 2010년 펴낸 『장거정 평전』 번역본은 아쉽게 절판된다. 중고서점에서도 사라졌던 책은 이 중국 개혁가의 일생에 관심이 많던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독서경영의 으뜸 서적이라고 추천하자 개정판이 나오게 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개혁이 국정의 제1과제로 떠오른 것도 한몫 했다. 시대정신이 된 개혁이 책 한 권을 살린 셈이다.

장거정의 삶을 뼈대로 한 평전은 개혁이 혁명보다 어려운 난제임을 보여준다. 빈한한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열 살 때 이미 육경(六經)을 깨쳤을 만큼 소문난 수재였던 장거정은 문충(文忠)이란 시호에 걸맞게 황제와 사직(社稷) 받들기에 전력했다. “백성을 편하게 하는 것이 정치”라는 신념으로 국정을 개혁해 쇠잔해가던 명 왕조의 수명을 70여 년 연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교수는 “개혁을 주도하는 중국 지도자들이 리더십이나 정책 결정 방향 등에서 장거정을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모델로 삼고 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우리 역사에서 장거정 같은 거울로 삼을 만한 인물은 누구일까. 조광조나 정약용인가. 장거정의 급작스런 죽음 뒤 그의 개혁이 타살된 것을 빗대 편집자는 ‘시대는 과연 개혁을 바라는가’라는 부제를 달았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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