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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왜색금지 시대, 아톰은 어떻게 한국으로 날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일본을 禁하다
김성민 지음, 글항아리

해방 직후엔 일본풍 청산에 몰두 #65년 국교 정상화되자 이중 잣대 #일본 라디오는 되고 문화는 막아 #DJ 때 문호 개방하면서 시각 변화

당신에게 아톰은 ‘우주소년 아톰’인가, 아니면 ‘철완 아톰’인가. ‘힘차게 날으는 우주소년 아톰~’ 하며 만화주제가가 절로 나온다면 당신은 1970~8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 문화가 정식으로 수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아톰은 한국 국적으로 세탁돼 한글을 새기고 축구 구단 포항 아톰즈의 마스코트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반면 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 세대라면 비디오로 정식 수입된 일본 원작인 ‘철완 아톰’을 봤을 공산이 크다.

서울대에서 언론정보학을, 도쿄대에서 학제정보학을 공부한 저자는 1945년부터 2004년까지 금제와 욕망으로 점철된 한국 대중문화사를 들여다보는 데 몰두한다. 해방 이후 수십 년간 금지돼 온 일본 문화가 이 땅에서 어떻게 억압을 헤쳐왔는지를 경계와 월경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조목조목 분석한다. 홋카이도대 교수로 있는 저자가 일본어로 먼저 쓰고 한국어로 다시 번역한 책이니만큼 한류와 혐한, 친일과 반일 등의 이분법에 갇히지 않고 서로 마주 보는 자세를 견지한다.

한국 내 일본 문화의 금지와 해체의 역사는 우리 현대사의 굴곡과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해방 직후 식민지 시대의 청산을 위해 일본어와 일본풍 등 왜색을 몰아내는 데 집중했다면, 65년 한일국교 정상화를 기점으로 점차 중층화되기 시작한다. 일본 상품과 문화가 구분되면서 일제 라디오를 구매하는 것은 괜찮지만 이를 통해 일본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은 금지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식이다. 여기에 일본보다 북한 및 공산주의 금지에 열을 올리는 미국의 영향력이 막대해지면서 한일 양자 간의 문제가 아닌 다자간의 문제로 확대된다.

일본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 1990년대 일본 문화가 정식 수입되기 전까지는 ‘우주소년 아톰’으로 통하며, 많은 사람에게 ‘국산’ 취급을 받았다. [중앙포토]

일본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 1990년대 일본 문화가 정식 수입되기 전까지는 ‘우주소년 아톰’으로 통하며, 많은 사람에게 ‘국산’ 취급을 받았다. [중앙포토]

정권마다 태생적 차이도 존재한다. 이승만 정권은 반공과 반일을 절묘하게 결합해 민족주의를 공고히 하고자 하지만, 집권이 장기화될수록 정권에 대한 반감에서 정부가 금하는 일본 문학이 인기를 끄는 반작용이 발생한다. 박정희 정권 역시 외부에 대한 금지를 내부로 끌고 들어와 국내 대중문화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지만 반발심만 높아졌을 뿐이다.

전파 월경은 역설적으로 일본 문화가 배제에서 부인의 메커니즘으로 변모할 수 있도록 돕는다. 부산에서는 일본 방송을 직접 시청하는 가구가 늘어나고, 서울에서는 새로 개국한 방송사들이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일본 방송을 왜곡·모방한 콘텐트를 만들면서 더이상 배척으로 일관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일본 것처럼 보이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미국산으로 둔갑한 ‘타이거 마스크’나 가부토 고지에서 쇠돌이가 된 ‘마징가 Z’의 주인공은 한쪽에선 막고 한쪽에선 학습시키는 집단 경험의 숱한 예시 중 하나다.

결국 반일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로운 김대중 정권이 IMF 체제를 계기로 일본 상품과 문화에 문호를 전면 개방하면서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도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됐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금지가 해체되는 과정의 분석은 치밀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형성된 지금의 문화를 이해하기엔 책에서 다룬 2004년 이후 10년의 공백이 너무 크다. 이 시기에 일어난 변화 역시 어느 시기 못지 않게 복잡다단한 데 말이다. 정부 방침이 아닌 각자의 취향에 따라 각종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이자 자유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내재화된 일본 문화 코드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 문화를 제대로 즐기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민경원 기자 storymi 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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