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맛대맛 다시보기] "순두부 한 그릇 9000원이 비싸다고요? 박리다매죠."

중앙일보

입력

맛대맛 다시보기 15.백년옥
매주 전문가 추천으로 식당을 추리고 독자 투표를 거쳐 1·2위 집을 소개했던 '맛대맛 라이벌'. 2014년 2월 5일 시작해 1년 동안 77곳의 식당을 소개했다. 1위집은 ‘오랜 역사’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집이 지금도 여전할까, 값은 그대로일까. 맛대맛 라이벌에 소개했던 맛집을 돌아보는 ‘맛대맛 다시보기’ 15회는 두부(2014년 10월 1일 게재)다.

강원도 고랭지 콩을 갈고 끓여 만든 '백년옥'의 자연식순두부. 김경록 기자

강원도 고랭지 콩을 갈고 끓여 만든 '백년옥'의 자연식순두부. 김경록 기자

냄비 팔러 갔다 두부 배워  

1990년대 초 문을 연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1988년 음악당·서예관을 시작으로 93년까지 단계적으로 개관) 앞엔 20여 년 시간을 함께한 식당이 있다. 두부 전문점 ‘백년옥’이다. 백 년 넘게 오래 장사하라는 뜻으로 가게 이름을 지었고, 정말 이름처럼 91년부터 26년째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시작은 지금의 모습과는 달랐다. 1층도 아닌 2층에 20좌석이 전부인 작은 식당이었다. 1층엔 기름 냄새나는 카센터가 있었으니 식당을 열 만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술의전당이 개관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인 데다 지하철역과도 멀어 가겟세가 저렴하다는 매력이 있었단다.

백년옥 외관. 초창기엔 1층이 카센터였다. 김경록 기자

백년옥 외관. 초창기엔 1층이 카센터였다. 김경록 기자

아버지 최평길씨에 이어 백년옥을 운영하는 최요섭(38) 대표는 “아버지가 원래 트럭에 냄비 같은 주방용품을 싣고 다니며 팔았는데 지방에도 자주 갔다”며 “강원도 오색약수터 근처에 살던 큰고모를 만나러 갔다가 속초식 순두부를 맛보고 ‘이거다’ 싶어 배우기로 결심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가 맛본 두부는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서 한 할머니가 만들어 팔고 있었다. 아버지 최씨는 그날로 할머니 집에 머물며 6개월 동안 일 도우며 순두부 만드는 법을 배웠다.

웰빙 바람 타고 대박

두부는 기본이고 김치와 밑반찬까지 직접 만든다. 김경록 기자

두부는 기본이고 김치와 밑반찬까지 직접 만든다. 김경록 기자

서울에 돌아와 가게를 열었다. 눈에 잘 띄는 위치가 아닌 데다 두부가 외식 메뉴로 인기가 있을 때가 아니어서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손님이 몰려왔다.
“당시 서울에 두부전문점이 없었다네요. 때마침 웰빙 바람이 불면서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거예요. 콩은 땅에서 나는 고기라고 할 만큼 고단백 음식이잖아요. 빨리 먹고 예술의전당에 공연 보러 가려는 사람이 많아 늘 정신이 없으셨대요.”
줄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뿐 아니라 1층에 있던 카센터 마당까지 이어졌다. 카센터 입장에선 기분 좋을 리가 없는데 오히려 줄이 너무 길어지면 카센터 직원이 직접 정리까지 해줬다. 아버지 최씨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카센터 직원에게 자주 식사를 대접했다. 주방에서 콩 갈고 끓이느라 바빠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을 챙길 틈이 없었으니 더 고마울 수밖에. 게다가 초창기엔 맷돌로 콩을 갈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카운터를 비울 때도 많았다. 손님 입장에선 불평할 만도 한데 오히려 밥먹고 난 뒤 알아서 테이블에 돈을 올려놓거나 직원에게 주고 갔다. 빈 그릇을 주방에 갖다 주기도 했다. 이렇게 손님이 많다보니 늘 일찍 재료가 떨어졌다. 두부 먹으러 왔다 그냥 돌아간 손님도 많았다. 그럴수록 백년옥은 맛집으로 점점 더 입소문이 났다. 공간을 점점 늘려 카센터가 있던 1층으로, 다시 2004년과 2013년엔 신관과 별관도 만들었다.

삼형제 발레주차부터 시작

식당이 커지면서 최요섭 대표이사를 비롯한 삼형제가 아버지를 도와 장사에 뛰어들었다. 최 대표는 21살 때인 2000년부터 식당에 나왔다.
“큰형은 초창기부터 아버지를 도왔고 작은형과 제가 나중에 합류했어요. 삼형제 모두 발레주차부터 시작했어요. 아들이라고 배려해 준 게 없어요. 다음엔 카운터, 그 다음엔 서빙, 그리고 주방에서 두부를 만들었죠. 가게 일을 전부 다 해봐야 한다는 이유였죠. 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지고 우리 삼형제가 가게를 맡으면서 분업화를 했어요. 큰형은 전반적인 서비스, 작은형은 프랜차이즈 사업을 맡고 있죠. 저는 직접 경영을 하고요.”

구수한 맛의 강원도 고랭지 콩만 고집한다. 김경록 기자

구수한 맛의 강원도 고랭지 콩만 고집한다. 김경록 기자

백년옥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강원도 고랭지에서 난 콩만 쓴다. 구수한 맛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문제는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가격이 두 배이상 올랐다는 점이다. 최 대표는 “아버지 고집 때문에 늘 좋은 식재료를 쓰고 김치를 비롯해 모든 반찬을 다 만든다”며 “순두부가 9000원이라고 하면 비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오히려 박리다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얀 순두부만 먹던 앙드레김

오랜 세월 만큼 단골도 많다. 그중 최 대표이사는 패션 디자이너인 고(故) 앙드레 김을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으로 꼽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왔는데 늘 하얀 자연식순두부만 먹었단다. 그가 항상 입던 흰옷과도 닮아 잊을 수 없다. 또 빼놓을 수 없는 특별한 손님이 있다. 매월 첫 번째 월요일에오는 어르신 30여명이다. 인근 노인정에 다니분들로 18년 전부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노인을 위해 무료식사를 꾸준히 대접한 공을 인정받아 2004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김경록 기자

노인을 위해 무료식사를 꾸준히 대접한 공을 인정받아 2004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김경록 기자

“아버지 나이 서른에 친할아버지가 배 사고로 돌아가셨대요. 그래서 어르신들만 보면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죠. 할 수 있는 거라곤 식사 한끼 대접하는 일이었는데 한 번 하고 나니 기분이 너무 좋았대요. 가끔 서초구청이랑 연계해 독거노인분들도 대접하다 보니 2004년엔 대통령 표창도 받았어요. 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중단했지만 다시 해야죠.”
미쉐린 빕그루망 선정

오전과 오후, 하루 두 번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든다. 김경록 기자

오전과 오후, 하루 두 번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든다. 김경록 기자

맛대맛에 소개한 후 3년이 지났다. 최 대표를 비롯해 백년옥 식구들에겐 2016년이 가장 기억에 남는 해란다. 세계적 미식가이드북인 『미쉐린(미슐랭)가이드』 빕구르망(가성비좋은 맛집)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매장을 늘리겠다는 계획도 실현되고 있다. 7월 28일 신세계백화점 경기점(용인시 죽전동)에 매장을 열며 첫 단추를 꿰었다.
“12월에 경기도에 매장을 한 곳 더 오픈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도 시작할 겁니다. 회사와 가맹점주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이 될 거예요. 이름처럼 백년 이상 가는 식당을 만들어야죠. "

하얀 두부만 찾던 단골 앙드레김 인상적 #백화점 매장내고 미쉐린 빕구르망에도 선정

·대표 메뉴: 자연식순두부 9000원, 뚝배기순두부 9000원, 동지팥죽 8000원 ·개점: 1991년 ·주소: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7(서초동 1450-6) ·전화번호: 02-523-2860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설·추석 연휴 휴무) ·주차:발레파킹(1000원)

관련기사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