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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나는 YOLO가 불편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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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돈 많아? 고생을 왜 사?” 처음에 이 TV 광고를 봤을 때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들었다. 곰곰이 생각한 뒤 깨달았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비꼬았구나. 결국 안 될 거 굳이 뭘 노력하냐고, 그냥 즐기라는 거다.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의 상징인 이 광고,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솔깃하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이니까. 지난 26일 발표된 한 설문조사에서도 20~30대 응답자 100명 중 44명이 스스로를 욜로족(族)으로 정의했다. 젊은이들 절반이 내일에 대한 절망으로 오늘의 욕망에 집중한다는 것. 2017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내가 젊었을 땐 말야”라며 고생담을 말씀하시려는가. 죄송하지만, 아무도 안 듣는다. 소셜미디어의 세상에서 사람들은 듣고 싶은 얘기만 골라 듣는다.

낀 세대여서 그런가, 난 욜로가 불편하다. 아니, ‘욜로=쿨’이라는 등식이 불편하다. 행간은 이렇다. “넌 어차피 부자 못 돼. 그냥 지금 가진 돈이라도 쓰고 즐기렴.” 목소리의 주인공은 거대 자본을 앞세운 존재들이다. 지금 불행한 원인의 8할은 불평등한 시스템이다. 돈 버느라 해외연수 갈 시간도 없고, 알바 가느라 이 칼럼을 읽을 여유도 없는 이들에게 욜로는 달콤한, 그래서 비겁한 유혹이다.

사는 건 어차피 힘들다. 욜로를 해도 힘들다. 이왕 힘들 거, 이 한 번 악물고 내가 원하는 바를 위해 고생 좀 사서 하자. 이런 결기마저 사라지게 한 시스템에 한 방 제대로 날려 보자. 징징대지 말고 내일을 위해 오늘 참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시스템에 굴복해 체념만 하고 안주할 게 아니라 시스템에 도전해 보자는 얘기다. 지금의 욜로는 최면제에 불과하다.

아사히(朝日)신문 기자 출신으로 미스터리 거장 반열에 오른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 원작 TV 드라마, ‘검은 가죽 수첩(黑革の手帖)’. 꿋꿋의 아이콘 하라구치 모토코(原口元子)는 이런 대사를 읊는다. “여자가 자립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기대게 돼 있는 게 이 사회의 구조야. 내가 나 자신의 보스가 돼야 해.” 비단 여자만이랴.

“사랑은 배신해도 일은 배신하지 않아”라는 말은 고용주들이 만든 사탕발림 거짓말이다. 믿을 건 나 자신뿐. 나를 믿고 꿋꿋이, 나를 위해 오늘도 수고하자.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