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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갔다, 10만 년 전 빙하기 지구에 착륙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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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유콘주는 극지방을 제외하고 가장 큰 빙하지대를 품고 있다. 클루아니 국립공원의 경비행기 투어를 하면 빙하기를 방불케하는 풍경 한가운데 착륙할 수 있다. 

캐나다 유콘주는 극지방을 제외하고 가장 큰 빙하지대를 품고 있다. 클루아니 국립공원의 경비행기 투어를 하면 빙하기를 방불케하는 풍경 한가운데 착륙할 수 있다. 

캐나다 유콘 클루아니 국립공원. 사진 상단의 도로처럼 보이는 곳은 억겁의 세월이 빚어낸 로웰 빙하다. 170㎞ 떨어진 알라스카만까지 이어진다. 

캐나다 유콘 클루아니 국립공원. 사진 상단의 도로처럼 보이는 곳은 억겁의 세월이 빚어낸 로웰 빙하다. 170㎞ 떨어진 알라스카만까지 이어진다. 

캐나다 유콘(Yukon)주로 떠나는 여행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이다. 이집트 피라미드며 이탈리아 콜로세움 등과 같은 고대 유적이 즐비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곳에는 북극과 남극을 제외하고 지구상 가장 큰 빙하지대가 있다. 이 빙하에 올라서면 10만 년 전 지구의 모습이 이러했으려니 바로 짐작할 수 있다. 7월 초 빙하기적 원시 풍경을 담고 있는 유콘으로 갔다. 한여름의 초입에서 만난 얼음과 눈이 가득한 겨울왕국, 생각만 해도 시원하다.

북극권 동토 캐나다 유콘주 빙하 투어 #알래스카까지 이어진 고속도로 달리고 #대낮처럼 훤한 밤엔 카약·낚시

어둠 없는 나라

캐나다로 떠나기 전 유콘관광청 측은 준비물을 잘 챙기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뭐 그리 챙길 것이 많겠냐고 생각했다가 준비물 리스트를 보고 짐을 완전히 다시 꾸렸다. 장화·장갑·바람막이는 필수. 그리고 기타 방한장비는 본인이 알아서. 짐만 보면 캐나다에 여름이 아니라 겨울을 나러 가는 것 같았다.
꼭 틀린 말도 아니다. 캐나다 유콘은 한여름에도 겨울을 만날 수 있는 극지방이니 말이다.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영토를 가진 국가 캐나다의 북서부 땅 유콘은 서쪽으로는 미국 알래스카주, 남쪽으로는 밴쿠버가 속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를 이웃하고 있다. 지리학상으로 북위 66도 이상을 ‘북극권’으로 보는데, 유콘은 북위 60~69도에 걸쳐있다.

도로에 갑자기 나타난 곰. 

도로에 갑자기 나타난 곰. 

밴쿠버에서 2시간 30분 다시 국내선을 타고 유콘 주도 화이트호스(Whitehorse)에 내리자마자 짐에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 두고 온 점퍼 생각이 간절해졌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혹서의 서울에 익숙해진 탓인지 불과 10도 안팎의 서늘한 화이트호스 온도조차 무지막지하게 춥게 느껴졌다. 그런데 정작 공항으로 마중 나온 유콘관광청 직원 스테판 레이놀즈는 반팔,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오늘은 정말 따뜻하지? 겨울에는 영하 30~40도가 예삿일인데 말이야.”
‘뜨거운’ 여름이 왔다고 신이 난 스테판 옆에서 오한을 느끼며 화이트호스 시내로 향했다.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고 신대륙 도시가 으레 그렇듯, 화이트호스는 ‘읍내’와 비견할 만했다. 한국(남한) 5배쯤 넓은 유콘 땅에 살고 있는 인구수는 고작 3만7000명. 그중 2만7000명이 화이트호스에 산단다. 4층 규모의 호텔이 ‘초고층’ 건물이고 나지막한 집이 연달아 서있다.

단층건물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유콘의 주도 화이트호스.

단층건물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유콘의 주도 화이트호스.

건물은 하나같이 화려한 색감의 페인트를 칠해 놨는데, 이유는 두 가지다. 폭설 때 건물을 쉽게 알아보기 위해서이고, 우중충한 날씨가 지속되면 사람들이 우울해지기 때문에 건물이라도 밝게 칠한 것이란다.
사람이 살고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만큼 도시는 텅 비어보였다. 명색이 시내인데 지나다니는 차도, 행인도 없었다. 사람들은 도대체 어딨냐라는 질문에 스테판은 시계를 가리켰다.

“집에서 잘 시간이잖아.”

오후 11시. ‘백야’ 시즌인 유콘의 여름밤은 정말 대낮처럼 환했다. 7월 유콘의 낮은 하루 20시간 정도다. 밤에도 완벽한 어둠이 아니라 초저녁같이 어슴푸레해질 뿐이다. 그래서 유콘에는 여름밤을 즐기는 ‘불꽃놀이’ 행사가 없단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도심을 가로지르는 유콘강에 카약을 타고 있는 무리를 봤다. 이 장면만 본다면 영락없는 한낮의 풍경이었다. 졸음이 쏟아져 호텔방으로 들어갔다. 암막 커튼을 치고도 빛이 새 들어오는 통에 안대를 쓰고 나서 겨우 잠을 청했다.

레포츠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백야가 깃드는 유콘의 여름밤에 카약·낚시·트래킹 등을 무궁무진 할 수 있다. 

레포츠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백야가 깃드는 유콘의 여름밤에 카약·낚시·트래킹 등을 무궁무진 할 수 있다. 

빙하기로 타임슬립

이튿날 화이트호스에서 서쪽으로 150㎞ 떨어진 해인즈정션(Haines Junction)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고속도로 ‘알래스카하이웨이’를 탔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2년 개통한 알래스카하이웨이는 미국 알래스카주와 캐나다 유콘·브리티시컬럼비아 주를 관통하는 장장 2700㎞의 도로다. 미국은 일본과의 전면전을 준비하면서 북방의 동토에 2차선 고속도로를 냈다. 전쟁을 위해 건설한 도로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마음의 평안을 좇는 사람을 위한 관광코스가 됐다. 만년설이 뒤덮인 산과 푸른 호수를 벗 삼아 2시간을 달렸다.

클루아니 호수. 유콘 최대 호수다.

클루아니 호수. 유콘 최대 호수다.

빙하 녹은 물이 흘러드는 클루아니 호수.

빙하 녹은 물이 흘러드는 클루아니 호수.

해인즈정션은 여름철 유콘을 찾아오는 관광객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인데, 이 마을을 통해 클루아니 국립공원(Kluane National Park and Reserve)으로 진입할 수 있다. 클루아니 국립공원은 유콘·브리티시컬럼비아·알래스카 3개 주에 걸쳐 있는 거대한 자연 보호구역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면적은 2만2000㎢. 감이 안 잡힌다고? 경기도와 서울을 합친 수도권보다 더 큰 땅이 국립공원이라는 이름 아래 보호받고 있다고 보면 된다.
아마 혼자 왔으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여행해야 할지 감도 못 잡았을 텐데, 유콘 전문가들이 클루아니 국립공원의 정수를 만끽할 만한 여행법을 적절히 소개해줬다. 바로 비행 투어다. 호수와 숲과 빙하지대 등 다양한 자연 경관을 품고 있는 국립공원을 빠르게 관통하며 들여다보는 일종의 여행 ‘축지법’이라 하겠다.
73년부터 경비행기 투어를 운영하고 있는 여행사를 찾아갔다. 여행사 마당에 놓인 비행기는 설마 진짜 비행기일까 싶을 정도로 장난감 같이 앙증맞았다. 파일럿 톰 브래들리는 “이래 봬도 5명까지 너끈히 탈 수 있는 비행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미군이 베트남전을 치를 때 개발한 헬리오 커리어(Helio Courier) 기종이에요. 정글 위를 낮고 조용하게 날아다니며 적을 찾아내는 데 최적화됐죠. 우리 회사가 수입해서 바퀴 옆에 스키를 달았어요.”

장난감 같은 비행기가 떴다!

장난감 같은 비행기가 떴다!

경비행기 내부.

경비행기 내부.

파일럿까지 4명을 태운 비행기는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부드럽게 날아올랐다. 땅 위의 비행기 그림자가 점점 작아졌다. 유콘에서 가장 커다란 호수인 클루아니호수를 지나 본격적으로 클루아니 국립공원 안으로 진입했다.
순식간에 백두산(2744m) 높이까지 비행기가 고도를 높이자 사뭇 긴장했지만 걱정도 잠시 상공에서 바라보는 창밖 경관에 마음을 홀라당 빼앗겼다. 전나무가 빽빽한 숲을 지나 5분쯤 비행하니 수목이 살 수 없는 툰드라 지대로 들어섰다. 화이트초콜릿을 발라놓은 듯 눈 덮인 고봉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눈앞에서 계절이 바뀌는 기분이었다.

클루아니 국립공원의 고봉 행렬. 5000m급 봉우리가 11개 솟아있다.

클루아니 국립공원의 고봉 행렬. 5000m급 봉우리가 11개 솟아있다.

고봉 밑에는 어김없이 빙하지대가 펼쳐졌다. 클라우니 국립공원은 북극과 남극 등 극지방을 제외하고 가장 넓은 빙하군이 있단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에서 빙하를 올려다본 적은 있었지만, 빙하를 내려다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우선 하늘에서 본 빙하는 절대 천편일률적인 모양이 아니었다. 얼음이 하늘로 솟구쳐 있기도 했고, 산사태가 난 듯 봉우리에서 쏟아지는 모양의 빙하도 있었다. 군데군데 눈 더미가 벗겨져 빙하의 본래 색감인 푸른색이 드러나는 블루홀(blue hole)도 보였다.

클루아니 국립공원에 가면 온 사방이 빙하다. 산사태가 난듯 쏟아지는 얼음덩어리도 빙하다.

클루아니 국립공원에 가면 온 사방이 빙하다. 산사태가 난듯 쏟아지는 얼음덩어리도 빙하다.

새파랗게 드러난 블루홀. 빙하의 본래 색깔이기도 하고, 살짝 빙하가 녹은 표면의 색감이기도 하다.

새파랗게 드러난 블루홀. 빙하의 본래 색깔이기도 하고, 살짝 빙하가 녹은 표면의 색감이기도 하다.

30분을 비행한 끝에 비행장에서 80㎞ 떨어진 널찍한 빙하 한가운데 착륙했다. 헬리오 커리어의 스키 다리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장착한 것이다. 마치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처럼 빙하 위에서 본 지구는 생경했다. 생명체의 흔적이라고는 없는 세상, 10만 년 전 빙하기로 되돌아간 듯한 풍경이었다. 웅장한 자연 앞에서 당장 오늘 기사 마감을 걱정하는 나의 고뇌도, 성공하고 싶은 욕망도 모두다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시의 풍경 앞에서 마음은 평온해졌다. 새삼 살아있다는 게 고마웠다. 이 머나먼 캐나다의 동토로 찾아올 만한 가치가 충분해 보였다.

클루아니 국립공원 빙하에 착륙했다. 멀리 캐나다 최고봉 로건산(5959m)도 보인다.

클루아니 국립공원 빙하에 착륙했다. 멀리 캐나다 최고봉 로건산(5959m)도 보인다.

◇여행정보=한국에서 유콘을 연결하는 직항은 없다. 밴쿠버에서 국내선 갈아타고 유콘 주도 화이트호스까지 갈 수 있다. 편도 2시간 30분 거리다. 7~8월 화이트호스의 낮 기온은 15도 정도. 비 오는 날이 적지 않아 바람막이와 방수 옷은 필수다. 클루아니 국립공원 빙하 투어때는 방한에 신경 써야 한다. 기온이 1도 아래로 내려간다. 빙하에 착륙할 때는 장화를 착용하는 게 좋다. 여행사 아이스필드 디스커버리(icefielddiscovery.com)가 유일하게 빙하 ‘착륙’ 서비스를 운영한다. 1시간 코스 1인 250캐나다달러(22만5000원). 캐나다는 2017년 한해 동안 캐나다 건국 150주년을 기념해 전국 국립공원을 무료로 개방한다. 캐나다국립공원 홈페이지(pc.gc.ca)를 통해 무료입장권인 ‘디스커버리패스’를 발급받을 수 있다. 자세한 여행정보 캐나다관광청(kr-keepexploring.canada.travel).

유콘(캐나다)=글·사진 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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