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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힙합 = 신세대’처럼 뽕짝도 왕년엔 청춘의 노래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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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

꼰대 소리에 꽤 당혹스런 베이비부머 세대의 한풀이 겸 삶의 지혜와 감상을 붓 가는 대로 쓰는 에세이 형식의 연재물이다. 배우자, 자식, 친우와의 관계에 관한 조언과 사회를 향한 고언을 꼰대답지 않게 스케이트보드 타듯 풀어간다. <편집자>

윗세대선 대도시 고학력자의 음악 #역사 알면 ‘꼰대 노래’로 치부 못 해 #요즘은 떳떳하게 ‘명곡’ 흥얼흥얼

40년도 더 전 이야기다. 대학에 갓 들어갔을 때니까. 같은 대학의 고교 선배들이 신입생 환영회를 해준다며 동기들을 소집했다. 여남은 명이 물어물어 찾아간 막걸릿집에서 냉면 그릇에 막걸리를 그득 담아 마시고는 막걸릿잔(?)을 머리에 뒤집어쓰는 거로 시작한 환영회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선배들이 ‘병아리들’의 노래를 주문했다.

별수 없었다. 동기들이 돌아가며 ‘아침이슬’ 등을 부르는데 지금은 대학교수를 하는 한 친구가 남진 노래를 불렀다. 그렇다. 노래 제목은 모르지만 분명 남진 노래였다. 한창 엘비스 프레슬리 흉내를 내던 남진의 빠른 템포 노래가 아닌 말 그대로 뽕짝이었다. ‘가슴 아프게 ’였는지도 모르겠다.

술자리가 급작스레 썰렁해졌다. 선배들은 ‘희한한 놈이 들어왔네’하는 눈초리였고, 같은 과였던 나 역시 괜스레 부끄러웠다. ‘아, 씨, 트윈폴리오도 있고 사월과 오월도 있고… 하고 많은 노래 중에 무슨 뽕짝을’하는 생각이 얼핏 스쳤던 것 같다.

그랬다. 우린 이른바 통기타 세대였다. 쿵작쿵작하는 트로트는, 낡고 촌스러운 ‘꼰대’들의 노래로 쳤다. 대신 ‘포크 송’에 ‘소울’ 넘치는 노래가 우리 애창곡이었고, 이었어야 했다. ‘어딜 감히 남진을 들이댄단 말인가’ 이게 그날 신입생환영회에 참석했던 이들의 공통 심사였으리라.

그랬던 필자가 적어도 노래 쪽에선 완전 뒷방 늙은이가 됐다. 멜로디가 신나긴 하는데 노랫말이 아예 들리지 않는다. 요즘 한창 인기라는 힙합이며 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되지도 않은 영어 단어를 멋대로 섞어서도 아니고, 청력이 떨어져서만은 아니다. 빠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 가장 크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트로트가 당긴다.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멜로디에 절절한 노랫말을 갖춘 ‘명곡’도 여럿 찾았다. 땡기는 정도가 아니다. 어떤 노래는 어찌나 가슴을 치는지 따라 부르다가 목이 멜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게 있다. 트로트 또한 신세대 애창곡이었다. 대중문화평론가인 이영미가 『세시봉, 서태지와 트로트를 부르다』(두리미디어)에서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1930년대 대도시 고학력 젊은이들이 즐기던 ‘세련된’ 노래가 트로트였다. 스무 살 식민지의 답답한 청춘들은 트로트에 열광했단다.

이런 사실(史實)을 알게 되니 트로트 애호가 남우세스럽진 않지만 한 가지 불편은 있다. 걸 그룹이 여럿 등장하는 TV 가요프로그램을 맘 놓고 볼 수가 없다. 집사람이 “알아듣지도 못하면서…”란 핀잔을 던질까 싶어서다. 그래서 답을 준비해 놓았다.

“아, 이 사람아 노랫말 자막이 나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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