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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아내의 사랑으로 탄생한 '광주 소머리국밥'…경기도 대표 음식들 숨은 유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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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락가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전주비빔밥’이나 ‘충무(통영)김밥’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을 찾아 맛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들 음식은 이곳저곳 보고 다니면서 생긴 허기를 달래주면서 여행의 재미도 더해준다.

팔도 장사꾼들의 장터음식 '용인 백암순대' #산성서민들의 손님대접 '성남 남한산성 닭죽' #물길 따라 전해진 맛 '여주 천서리 막국수' #"미각 자극한 지역음식 여행 재미 더해줘"

경기도에는 ‘의정부 부대찌개’, ‘수원 왕갈비’, ‘이천 쌀밥’ 등이 유명하지만, 이뿐이 아니다. ‘광주 소머리국밥’, ‘성남 남한산성 닭죽’, ‘용인 백암순대’, ‘여주 천서리 막국수’ 등의 인기도 만만찮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광주·성남·용인·여주 등지의 음식에 담긴 유래를 알아봤다.

경기도 광주 소머리국밥집 원조로 알려진 한 가게.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주자창이 가득 찼다. 김민욱 기자

경기도 광주 소머리국밥집 원조로 알려진 한 가게.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주자창이 가득 찼다. 김민욱 기자

지난 20일 오후 1시 20분 경기도 광주의 한 소머리국밥(1관). ‘원조’로 알려진 곳이다. 점심때가 지난 시간이었지만 30여대 규모의 주차장은 차가 가득했다. 예상대로 번호가 적힌 진동벨을 받아들었다. 25분 정도 기다리니 뽀얀 육수를 채운 소머리국밥의 담백한 맛을 볼 수 있었다. 소 특유의 누린내는 없었다. 한술 뜬 국밥 위에 수육·깍두기를 차례로 올려 한입에 먹으니 일품이었다. 광주에는 이런 소머리국밥집이 10여곳 성업 중이다.

경기관광공사에 따르면 광주에 소머리국밥집이 하나둘씩 자리 잡은 유래는 이렇다.
1970년대 중반 광주 곤지암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어렵게 살아가던 부부가 있었다고 한다. 부인은 병치레가 잦은 남편을 위해 ‘몸에 좋다’고 하는 식재료·약재를 구해다 먹였는데 하루는 “소머리를 달여 먹이면 오장육부 기능이 활발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기도 광주 소머리국밥. 김민욱 기자

경기도 광주 소머리국밥. 김민욱 기자

두서너 시간을 푹 고아 남편에게 내놓았지만, 누린내가 심한 소머리 국물을 남편은 마시지 못했다. 이런저런 향신료·향신채를 넣은 끝에 풍미를 찾을 수 있었다. 정성스레 끊인 소머리국밥에 남편은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이후 소머리국밥은 포장마차에서도 손님들에게 선보였는데 찾는 이들이 늘었다. 소의 혀를 같이 끊이는 비법 등은 이웃들에게 전수됐고, 80년대 초반부터 광주 곤지암을 중심으로 하나둘씩 소머리국밥집이 생겨났다고 한다. 아내의 사랑으로 탄생한 게 바로 광주 소머리국밥이라는 게 경기관광공사의 설명이다. 이 아내는 현재 곤지암에서 소머리국밥집을 운영하는 최모(77)씨로 알려져 있다.

성남 남한산성 닭죽촌 입구 모습. 김민욱 기자

성남 남한산성 닭죽촌 입구 모습. 김민욱 기자

성남 닭죽은 남한산성 밑 서민들의 생활상이 담긴 음식이다. 40년전쯤 남한산성 아래에는 민가가 다닥다닥 자리했다. 터가 반듯해 집짓기가 수월한데다 숲가·냇가에서 먹을거리를 구하기가 쉬웠던 까닭이다. 상당수 주민들은 닭을 길렀는데 달걀을 장에 팔며 생활비에 보탰다.

남한상성 행궁 입구. 김민욱 기자

남한상성 행궁 입구. 김민욱 기자

관광지로 남한산성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산성 아래 민가들은 자연스레 하나둘씩 식당영업을 했다고 한다. 기르던 닭을 잡아 끊인 닭죽은 여럿이 무리지어 오는 등산객들에게 내놓기가 안성맞춤이었다. 산성을 오르기 전 등산객들이 “닭죽 먹을 심산이다”라고 하면 내려올 때까지 서너 시간을 찹쌀과 함께 푹 고아 대접했다.

성남 남한산성 닭죽의 현재 모습. 닭죽을 따로 판매하지 않고 삼계탕과 같은 닭요리때 찹쌀을 함께 끊인다. 김민욱 기자

성남 남한산성 닭죽의 현재 모습. 닭죽을 따로 판매하지 않고 삼계탕과 같은 닭요리때 찹쌀을 함께 끊인다. 김민욱 기자

남한산성 주변이 정비되면서 닭죽집들은 현재 성남시 단대동으로 이전했다. ‘닭죽촌’에는 20곳이 영업 중이다. 지난 20일 찾아간 한 닭죽집은 36년 됐다고 자부심이 대단했다. 익힌 닭 살을 이리저리 찢어 찹쌀과 함께 끊인 죽은 이제 닭죽촌에서도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닭을 미리 잡지 않아서다. 닭요리에 찹쌀이 들어가는 식인데 일반 삼계탕과 달리 이곳에서는 생닭 안에 찹쌀을 넣지 않은 게 특징이다.

성남 남한산성 닭죽촌 위치도. [네이버지도 캡처]

성남 남한산성 닭죽촌 위치도. [네이버지도 캡처]

용인 백암지역의 한 순대 가게 모습. [사진 용인시]

용인 백암지역의 한 순대 가게 모습. [사진 용인시]

용인 백암순대는 팔도 장사꾼들의 헛헛한 속을 달래주던 장터음식이다. 100여년전부터 용인 백암면에는 5일장이 섰다. 특히 우시장과 도축장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자연히 도축장에서 나온 돼지 내장 등으로 국밥을 끊여 상인들에게 팔았다.

야채가 듬뿍 들어간 용인 백암순대. [사진 용인시]

야채가 듬뿍 들어간 용인 백암순대. [사진 용인시]

백암지역 아낙들은 돼지 내장의 양을 푸짐하게 하고 소화도 도우려 우거지 등 아채를 다져 넣었다. 이게 지금의 백암순대가 됐다. 서민들에게 고기 씹는 만족감을 주려 선지도 넣었다. 백암순대는 팔도 장사꾼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용인시민 이강우(40)씨는 “백암순대는 특히 소화가 잘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주 천서리 막국수. 매콤 달달한 맛이 일품이다. 김민욱 기자

여주 천서리 막국수. 매콤 달달한 맛이 일품이다. 김민욱 기자

여주 천서리 막국수는 물길따라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전해진 맛이다. 강원도에서 출발해 남한강을 따라 배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장사꾼들의 중간 휴식처가 여주였다. 황포돛배가 머무는 여주 신륵사 앞의 조포나루와 지금의 이포보 앞의 이포나루 주변이 대표적이다.

여주 천서리 막국수촌 위치도. [네이버지도 캡처]

여주 천서리 막국수촌 위치도. [네이버지도 캡처]

물물거래가 활발하던 시절 강원도산 메밀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부담 없는 품목이었다. 강원도 메밀이 여주에서 국밥·탁주·숙박비 등과 교환되면서 여주에서도 막국수가 흔해졌다. 천서리는 이포나루가 지척이다. 현재 이포보 앞에는 천서리 막국수촌이 형성돼 있다. 9곳이 영업 중이다. 서울에서 천서리를 찾은 이용희(42·여)씨는 “맵지 않으면서 입을 화하게 하는 비빔 막국수가 별미”라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성남·용인·여주=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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