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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밤을 지배했던 그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41호 32면

“‘덩(鄧)’씨 두 명이 중국을 지배한다. 낮에는 덩샤오핑(鄧小平), 밤에는 덩리쥔(鄧麗君).”

『등려군,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 #저자: 장제 #역자: 강초아 #출판사: 글항아리 #가격: 2만5000원

중화권에는 전설의 가수가 하나 있다. 신중국(1949년) 성립 이래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 인물을 뽑는 투표에서 850만표를 얻어 1위를 차지한 대만 출신 여가수 덩리쥔(1953~1995)이다. 우리에게는 노래 ‘첨밀밀(꿀처럼 달콤하다)’로 알려졌다. 장만위(張曼玉)·리밍(黎明) 주연의 동명 영화에 주제가로 쓰여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곡이다.

덩리쥔은 싱글과 정규음반 등을 합쳐 120장이 넘는 음반을 발매했다. 공식집계된 것만 2200만장, 해적판까지 더하면 7000만장~2억장까지 팔렸다는 추산도 있다.

14일 출간된 이 책은 덩리쥔의 셋째 오빠가 회장으로 있는 덩리쥔 문교기금회에서 탄생 60주년을 기념해 2013년 출간했다. 덩이 에세이나 편지를 거의 남기지 않았던 탓에 작가 장제(姜捷)는 10여년간 8개국에 흩어진 덩의 지인 200여 명을 인터뷰해 전기를 완성했다. 생전에 가까웠던 배우 린칭샤(林靑霞)가 추천사를 썼다.

덩은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그의 음반을 냈던 일본 음반사 토러스의 후나키 미노루는 “덩리쥔이 몇 년간 토러스에 벌어다준 수익이 100억엔(1000억원)을 넘는다(p.193)”고 밝혔다. 덩에게 인세로 20%를 지급하더라도 회사에 엄청난 수익을 안겨준 셈이다. 후나키 사장은 지금도 매년 덩리쥔의 앨범 수익을 결산해 직접 대만에 와 덩리쥔의 어머니에게 전달한다.

상복도 많았다. 일본 최고 음악상인 일본유선대상, 전일본유선대상을 3연패한 가수는 그가 유일하며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덩의 노래는 중국 대륙에선 ‘금지곡’이었다. ‘퇴폐적인 음악’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의 노래를 부르거나 방송하거나 혹은 음반을 파는 행위는 금지됐다. 이를 알게 된 덩은 팬들이 혹시라도 잡혀갈까봐 라디오를 통해 호소한다. “여러분이 제 노래를 듣다가 처벌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능한 한 빨리 모든 테이프를 제출하십시오”(p.221)

덩에게 ‘미운털’이 박힌 이유는 그가 원조 ‘소셜테이너(사회 이슈에 자기 의견을 적극 밝히는 연예인)’였기 때문일 것이다. 대표적인 게 톈안먼(天安門)사태와 관련된 그의 반응이었다. 톈안먼 사태가 일어난 6월 4일 이후, 덩은 노천 빈소에 들러 사망한 학생들을 애도했다. 검은 옷을 입고 손에는 ‘비분(悲憤)을 힘으로 바꾸자’는 피켓을 들었다. 군중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노래를 불렀다.

검열당국이 아무리 ‘블랙리스트’로 그의 음악을 막으려고 해도, 덩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커졌다. 그의 음반은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결혼 예물이었다. USA투데이는 “중국인들이 월수입의 25%를 들여 암시장에서 덩리쥔 음반을 산다(p.221)”고 보도했다.

덩의 노래는 1984년에야 비로소 ‘해금’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조차 “젊을 때 덩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고 훗날 고백했다. 시 주석은 “덩리쥔의 팬이었다. 덩리쥔이 부른 노래 ‘작은 마을 이야기(小城故事)’의 카세트 테이프를 너무 많이 들어 망가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덩의 영향력은 그만큼 컸다. 덩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으며 무려 1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애도했다. 소셜테이너로서 살았던 그의 뜻은 사후에도 지속됐다. 문교기금회는 국군가족을 위한 보조기금회, 중증장애 아동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진 피해를 입은 중국 원촨(汶川), 일본 후쿠시마(福島)에는 구호금을 전했다. 기금회는 천식 예방 홍보물도 제작해 무료로 배포했다. 덩리쥔이 천식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덩과 영화배우 청룽(成龍)의 러브스토리, 말레이시아 설탕왕 2세와의 혼담 이야기도 들어있다. 찾아보니 한국과의 인연은 적게나마 있다. 덩이 생전에 부른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영상이 유튜브에 남아있다. 17일에는『가희 덩리쥔』(한길사)도 출간됐다. 덩리쥔에게 푹 빠진 독자라면 함께 봐도 좋을 책이다.

글 서유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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