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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다시보기] "육개장인데 왜 고사리 없냐고? 일단 먹어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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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다시보기 ⑭동경전통육개장
매주 전문가 추천으로 식당을 추리고 독자 투표를 거쳐 1·2위 집을 소개했던 '맛대맛 라이벌'. 2014년 2월 5일 시작해 1년 동안 77곳의 식당을 소개했다. 1위집은 ‘오랜 역사’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집이 지금도 여전할까, 값은 그대로일까. 맛대맛 라이벌에 소개했던 맛집을 돌아보는 ‘맛대맛 다시보기’ 14회는 육개장(2014년 8월 20일 게재)이다.

동경전통육개장의 전통육개장. 토란과 고사리는 넣지 않는다. 8시간 이상 끓인 사골육수라 국물 맛이 깊다. 김경록 기자

동경전통육개장의 전통육개장. 토란과 고사리는 넣지 않는다. 8시간 이상 끓인 사골육수라 국물 맛이 깊다. 김경록 기자

한국인의 여름나기 방식 중 하나가 이열치열(以熱治熱)이다. 뜨겁고 매운 음식으로 더위를 다스린다는 말이다. 이때 잘 어울리는 음식 중 하나가 육개장이다. 얼큰한 국물에 푹 삶아낸 고기와 고사리·토란·숙주·대파 등 각종 채소가 듬뿍 들어있어 여름철 대표 보양식으로 꼽힌다. 하지만 서울 역삼동 '동경전통육개장'은 이런 일반적인 육개장과는 거리가 멀다. 육개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고사리나 숙주가 들어있지 않다. 대신 쇠고기의 양지·사태와 달걀지단, 대파만 넣는다. 오경희(67) 사장은 “처음 오는 사람은 왜 육개장에 이렇게 건더기가 없냐”며 “어디 식이냐고 묻는다”고 말했다. 오 사장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내 식이니까 한 번 먹어보고 맛없으면 다시 오지 말아라.”

사골 육수에 대파를 가득 넣고 다시 끓여 국물이 칼칼하면서도 걸쭉하다. 김경록 기자

사골 육수에 대파를 가득 넣고 다시 끓여 국물이 칼칼하면서도 걸쭉하다. 김경록 기자

사골 육수에 쇠고기·대파만

오 사장은 친정어머니 요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1989년 남편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먹고 살기 위해 식당을 열었다. 처음 3년은 각종 찌개를 다 파는 백반집을 했다. 하지만 메뉴가 많으니 특징도 없었다. 차라리 잘 하는 것에 집중하자고 판단했고 ‘나만의 육개장’을 팔기로 결심했다. 원래 육개장에 넣는다는 재료란 재료는 다 넣어봤는데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 친정엄마의 요리가 떠올랐다. 전라도 광주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늘 솜씨 좋은 엄마 집밥을 먹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엄마 요리엔 주재료인 한두 가지 식재료 외에 다른 건 별로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돔으로 매운탕을 끓이면 돔만 넣는 거다. 꽃게나 새우를 넣으면 생선맛도 꽃게맛도 다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게 어머니의 음식 철학이었다.
과감히 육개장에서 채소를 다 뺐다. 대신 소고기와 궁합이 잘 맞는 대파는 듬뿍 넣었다. 또 진하고 깊은 국물맛을 내기 위해 사골을 육수로 썼다. 사골을 8시간 이상 푹 끓인 육수에 대파를 가득 넣고 다시 한번 더 푹 끓이면 대파에서 진액이 나와 칼칼하면서도 걸쭉한 동경육개장식 육개장이 된다.
재료는 늘 가장 좋은 것만 고집한다. 식당을 찾아주는 손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이자 스스로의 일을 덜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는 “싼 걸 사오면 그 안 좋은 걸 온 식구가 매달려 다듬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며 "싼 식자재 쓰는 게 절대로 돈을 아끼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오경희 사장은 친정엄마 비법을 살려 단순하게 대파와 고기만 넣은 육개장을 만들었다. 김경록 기자

오경희 사장은 친정엄마 비법을 살려 단순하게 대파와 고기만 넣은 육개장을 만들었다. 김경록 기자

건더기 다른 육개장으로 유명세

처음엔 손님들에게 타박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16년 전 한 방송에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2001년 식당 근처 공원에서 차인표와 김남주가 나오는 드라마 '그 여자네 집' 촬영을 했다. 밤샘 촬영을 한 스태프들이 아침 일찍 문을 연 식당을 찾다 우연히 동경육개장에 들어온 것이다. 스태프 중 한 명이 소개해 맛집 프로그램에도 나가게 됐다. 일요일 오전에 방송됐는데 그때부터 전화가 빗발치더니 하루종일 사람이 몰려들었다. 그날은 오후 2시에 육개장 재표가 다 떨어져 문을 닫아야 했다. 사골로 육수를 내기 때문에 한두 시간 만에 더 만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방송 후엔 육개장 건더기에 대해 뭐라고 손님들이 타박하기는커녕 오히려 동경육개장만의 특색이라며 찾는 사람이 늘었다.

동경육개장은 일주일에 파를 80단이나 쓴다. 김경록 기자

동경육개장은 일주일에 파를 80단이나 쓴다. 김경록 기자

특별한 비법 말고 손맛

장사가 잘돼 2007년 역삼역 인근에 2호점을 냈다. 1호점은 딸에게 맡기고 2호점을 오사장이 맡았다. 매장 규모를 늘리고 인테리어 자재도 최고급으로 하는 등 정성을 다했다. 그런 덕분인지 2호점 역시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무리해서 일 하다보니 예전에 부러져 수술받았던 다리에 염증이 생겨 3개월간 입원했다. 오 사장의 빈 자리를 손님들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육개장 끓이는 방법을 주방장에게 그대로 알려줬는데도 손님이 딱 끊겼다.

고사리 같은 다른 재료를 넣지 않는 대신 대파와 양지, 사태, 달걀지단을 듬뿍 얹어낸다. 김경록 기자

고사리 같은 다른 재료를 넣지 않는 대신 대파와 양지, 사태, 달걀지단을 듬뿍 얹어낸다. 김경록 기자

“그게 참 이상해. 우리집은 별다른 비법이 없어. 난 그냥 사골 끓인 물에 고춧가루·마늘·대파·고기·달걀지단 딱 이거만 넣거든. 몇 년 전에도 한 청년이 비용을 낼 테니 비법을 알려달라고 왔었어. 그래서 내가 그랬지. 무슨 비법이 있냐고, 난 돈 안받고 그냥 다 가르쳐줬어. 그런데도 그 맛이 안난다고 한 달 동안 계속 비법 타령을 하더라고. ”
결국 2호점은 11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200m 떨어진 곳으로 이전

맛대맛에 소개된 후 3년 동안 오 사장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15년 12월 가게를 200m 떨어진 곳으로 이전했다. 원래 있던 건물이 재건축에 들어가 어쩔 수 없었단다. 대신 가게는 더 넓어졌다. 슬픈 일도 겪었다. 남편이 2015년 봄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함께 가게를 일궈온 남편은 8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단골들은 남편의 부재를 안스러워 하며 종종 안부를 물었다. 비록 식당에 함께 있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늘 함께했던 남편이 이제 정말 그의 곁을 떠난 것이다. 그는 “손님들이 그냥 밥 먹으러 오는 식당 취급하는 게 아니라 사람대 사람으로 마음을 써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주방일이 고되지 않냐고 묻자 오 사장은 “괜찮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난 주방을 떠날 수가 없어. 사장이라고 계산대만 지키면 안돼. 2호점 실패 때 봤잖아. 내가 안 끓이면 그맛이 안난다니까. 손님들이 계속 그 맛보러 오는데 내가 만들어서 대접하는 게 도리야.”

·대표메뉴: 전통육개장 8000원, 육개장칼국수 8000원, 황태북어국 6000원 ·개점: 1989년(2015년 12월 현재 자리로 이전) ·주소: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13길 12(역삼동 647) ·전화번호: 02-566-9779 ·좌석수: 64석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9시(설·추석 명절 당일만 휴무)  ·주차: 가게 앞(4대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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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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