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사고를 당했을 때 가해차량의 보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아내는 건 피해자에게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가벼운 수리에 그치는 사고가 아니라 차체나 엔진, 동력전달장치 등 주요 부위가 파손됐을 때 특히 그렇다. 사고 이력이 남아 중고차 가격이 하락할 것에 대한 보상이 당연하다고 피해자는 생각할지 모르나, 보험사가 이를 그대로 인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주요 부위 파손 사고 차량 가치 하락 #보험사 인정 안하던 관행 깬 대법 판결 #"원상회복 불가능하면 가격 하락 상식"
교차로에서 신호위반을 하고 달려온 차와 충돌사고를 겪은 덤프트럭 운전자 김모씨는 3년째 상대 차량 보험사와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2014년 9월에 발생한 사고로 김씨의 트럭은 조수석쪽 차체가 심하게 부서졌다. 새로 산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새 차였다. 수리비만 1900만원에 달했다. 수리기간 중 일을 하지 못한 손해도 500만원이 넘었다.
동력전달장치 등 주요 부품을 교환하는 대대적인 수리를 받았지만 김씨의 차량은 편마모가 발생하는 등 여전히 후유증이 남아있었다. 정비 전문가의 감정 결과 차체(프레임)을 잘라 용접해 바로잡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경우 중대한 사고 차량으로 인식돼 차량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불보듯뻔한 일이었다. 차체를 잘라 붙이는 수리는 차량의 내구성과 강성을 약화시켜 안전상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었다. 차체를 잘라서 붙인 차량은 절대 사면 안 된다는 것은 중고차 업계의 불문율이기도 하다.
김씨는 이 감정 의견을 근거로 “프레임을 절단 용접 방식으로 수리하더라도 영구적인 장애가 남을 수밖에 없고 차량 가격도 떨어진다”며 감가손해액 1500만원 배상을 요구했지만 상대 보험사가 이를 거부하자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다.
1심 법원은 김씨가 청구한 수리비와 견인비, 영업손실만 인정해 23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김씨의 감가손해액 배상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김씨가 주장한 감가손해가 통상적인 손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2011년 판례에 따르면 일반적인 차량 수리비와 아예 수리가 불가능한 부분의 감가손해가 통상손해에 해당된다. ‘사고 차량이니 가치가 떨어질 것’이란 일반적인 관행에 따른 손해 추정액은 통상손해가 아닌 ‘특별손해’로 분류된다. 특별손해는 구체적인 피해액을 입증하기가 어려워 보험사가 이를 인정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1심 법원은 프레임 절단 용접 방식으로 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통상손해에 해당하는 수리 불가능한 부분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또 수리를 하더라도 사고 이력이 남아 차량 가치가 하락할 것이란 김씨의 주장은 “단지 사고 차량을 기피하는 심리적 경향이나 일반적인 거래관행을 근거로 추측한 것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법원은 “김씨의 주장은 특별손해에 해당하지만 이에 대한 입증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항소심 법원의 판단도 1심과 같았다. 항소심은 연료통 파손으로 유출된 연료비 50여만원을 추가로 인정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원심이 수리 가능성을 들어 교환가치 감소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배척한 것은 교환가치 하락과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며 사건을 춘천지법 항소심 재판부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대법원의 판단은 자동차의 주요 골격이 파손되는 등의 중대한 손상이 있는 경우 기술적으로 가능한 수리를 마치더라도 원상회복이 안 되는 수리 불가능한 부분이 남는다는 일반적인 인식을 인정한 것이었다. 또 그로 인한 자동차 가격의 하락은 특별손해가 아닌 통상의 손해로 봐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지난 6월에도 비슷한 판결을 한 적이 있다. 지난달 1일 차량 사고 피해자가 가해자와 가해차량 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대법원 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차량수리비뿐만 아니라 감가손해에 대해서도 보험사가 물어줘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보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통상 손해의 범위를 좀더 폭넓게 인정해 소비자의 권리를 좀 더 보호하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