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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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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 FTA)은 두 나라에서 험난한 역사를 헤쳐 왔다. 양국 모두 일부 부문에서는 경제적 개방이 점점 더 불편하게 느껴진다. 한·미 FTA를 협상할 때 미국 대통령은 조지 W 부시였다. 그가 협정에 서명한 건 2007년이었다. 후임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FTA에 원래 무관심했다.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의회의 초당적 지지를 얻어 내려고 노력하게 된 건 2010년에 벌어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이후였다.

트럼프의 목표는 하향조정 중 #한·미 FTA도 큰 변화는 없을 듯 #문 대통령은 FTA 협상 활용해 #개혁 어젠다 추구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과정이 더 험난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어젠다에서 FTA는 우선과제와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가 껄끄러워진 한·미 관계를 수습하는 수단으로 부상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와 국회에서 벌어진 몸싸움을 헤쳐나간 끝에 2012년 협정을 발효시킬 수 있었다.

다시 정치가 운전대를 잡았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는 FTA가 “일자리 살인자(job killer)”라며 이를 갈기갈기 찢어 놓겠다고 약속했다. 지난번 한·미 정상회담은 전반적으로 우호적이고 성공적이었다. 옥에 티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에 투덜댄 것이다. 예의 없는 행동이었다. 이런 우여곡절이 있지만 한·미 FTA는 양국이 공유하는 전략적·경제적 이익을 반영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그의 취임 이후 지금까지의 징후들을 살펴보면 한·미 FTA 내용이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많은 사안과 마찬가지로 FTA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는 좀 더 온건한 방향으로 하향 조정되고 있다. 일부 잘못된 보도와 달리 미국은 한·미 FTA의 ‘재협상(renegotiation)’을 추진하지 않았다. 미국이 한 일은 적자 축소를 위한 공동위원회 소집인데, 이는 한·미 FTA에 포함된 기능을 작동시킨 것이다.

사실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의 무역적자는 두 배로 늘었다. 무역적자가 미국의 고용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무역적자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접근법은 혼란스럽다. 무역적자를 어떻게 줄일지도 명확하지 않다.

실제 무역적자는 FTA의 결과만이 아니다. 보다 큰 틀에서 파악해야 할 경제적 힘들이 작용한다. 미국이 수출보다 수입을 더 많이 해 생기는 적자를 메우는 것은 미 유가증권 구매나 해외직접투자 형태의 자본유입일 것이다. FTA를 손질한다고 해서 전체 무역적자나 특정 국가와의 무역적자가 줄어든다는 보장이 없다. 적자 축소는 미국이 해외에서 수입하는 자본에 달려 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들은 서로 상충되는 경우가 많다. 한편에선 적자를 줄이겠다고 하고, 다른 한편에선 무역 상대국이 미국에 더 많이 투자하게 만들려고 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 대한 한국의 직접투자 규모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직접투자보다 크다. 한국 기업들은 수많은 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직접투자를 통한 이러한 자본유입 증가는 미국 경제에 좋은 일이지만, 이론적으로 미 무역적자는 증가한다.

미국 의회의 개입도 한국에 이득을 가져올 수 있다. 의회는 미국 정치의 보호주의 세력으로 보통 간주된다. 하지만 공화·민주 양당 의원들은 트럼프 행정부에 보낸 초당파적 서한에서 보호무역 정책에 관한 몇 가지 문제점을 제기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트럼프의 행동을 제약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에 마음대로 손댈 권한이 없다. 의회와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의원들은 서한을 통해 다음과 같은 전략적 맥락을 상기시켰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지금 미국과 한국의 경제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비즈니스 이익집단들도 끼어들 가능성이 있다. 달라진 한·미 FTA가 한국의 보복조치를 부르게 되면 농업 등 불이익을 보게 되는 산업 부문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수사는 강경하다. 하지만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나 한·미 FTA를 수정해 농업이 포함된 모든 산업부문의 이익을 보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한·미 양국의 협상이 험난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게다가 한국은 무역에서 한·미 FTA 말고도 미국 내 다른 도전에 직면했다. 예컨대 미국은 철강 무역을 표적으로 삼았다. 하지만 양국 간 무역 쟁점은 많은 경우 기술적이거나 행정적 문제들이다. 신중하게 준비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한·미 협상을 활용해 개혁 어젠다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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