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이 두 방향에서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았다.” 오동진 영화평론가의 영화 ‘군함도’에 대한 평이다. 19일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는 일제시대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의 고된 삶을 그리고 있다. 일본 나가사키현 남서쪽의 섬, 군함을 닮아 ‘군함도’라 불린 곳에서 조선인들은 땅을 파고 들어가 석탄 캐는 일을 맡았다. 거기에 우연히 흘러 들어간 악단장(황정민 분), 깡패(소지섭 분), 군인(송중기 분), 위안부 여성(이정현 분)이 섬을 탈출하려는 이야기가 영화의 전체 줄거리다.
26일 개봉하는 영화 ‘군함도’ #조선인들 지옥섬 탈출이 기본 얼개 #소재의 무게 짓눌리지 않고 풀어내 #선악 구도 벗어나 인간 자체 성찰
류승완 감독의 두 마리 토끼는 역사성과 대중성이다. 영화로는 다뤄지지 않았던 소재 군함도는 그만큼 어둡고 비극적인 역사다. 군함도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고 일본이 조선인 희생자를 기리는 안내 센터 설치 등의 약속을 한 기한이 올 연말이다. 군함도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민감한 이슈다. 실제로 류승완 감독은 개봉에 앞서 “‘군함도’가 단지 영화를 보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강렬한 체험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역사적인 문제의식을 제공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다.
영화는 그 목적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화면 가득한 욱일승천기는 시원하게 찢어지고, 일본 군인은 불에 타 죽는 와중에 목이 베인다. 조선인들은 화염병을 만들어 일본에 던진다. 조선인에 대한 폭력 또한 적나라하다. 성착취와 전기고문에서 시작해 뾰족한 송곳 위에 사람을 굴려 죽이는 방법까지 상세한 묘사가 나온다.
여기까지 보면 일제시대를 겨냥한 무거운 역사 영화인 듯하다. 하지만 류승완은 다양한 인물을 입체적으로 배치하면서 지나친 무게감을 덜어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으면 안되는 소재인데 캐릭터와 관계를 잘 짠 덕분에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자신의 이득을 챙겨온 악단장, 오로지 신념만으로 살아가는 군인 등이 제각각 생생하게 표현됐다. 또 독립운동 과정에서 일어나는 배신, 조선인끼리의 서열화와 폭력, 조선인과 일본인의 짧지만 본능적인 유대감 같은 장치들은 선과 악의 구분을 모호하게 했다.
민감하고 무거운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인간 자체에 대한 성찰에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역사적 사실의 무게감에 주눅들지 않고 영화적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평했다. 그는 “영화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의 관계는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니다. 그렇다고 일본인을 용서하는 우호적인 분위기도 아니다”라며 “일제 시대에 대한 영화에서 류승완 감독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듯하다”고 했다.
‘부당거래’ ‘베를린’ ‘베테랑’ 등 전작에서 류승완 감독이 보여준 장기는 유쾌함, 재치, 속도감 같은 것들이었다. ‘군함도’가 류 감독에게 맞는 옷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만도 하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류 감독이 직접적으로 관객에 카타르시스를 주는 식으로 스타일을 바꿨다”며 욱일승천기를 찢는 장면 등을 언급했다. 규모가 큰 이야기와 복잡한 인물을 모두 담으려다 보니 강약 조절이 안 된 측면도 있다.
류승완 감독은 “실제 군함도를 촬영한 항공사진을 보고 스토리를 떠올려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며 “영화를 보고 나면 마치 온 몸을 맞은 듯 얼얼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일제시대의 역사적 사건에 처음 손을 댄 감독의 시도는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올해 나오지 않았던 1000만 영화가 될 수 있을까. 2015년 기획에 들어가 화려한 캐스팅, 대규모 제작비(220억원)로 화제가 된 ‘군함도’는 26일 개봉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