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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국립생태원에 만들어진 '제인 구달 길' '다윈-그랜트 부부길' 직접 걸어보니

중앙일보

입력

제인 구달(Jane Goodall·83·여).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영국 출신으로 아프리카에서 머물며 침팬지 연구에 평생을 바친 여성 동물학자다. 영국 명문 캠브리지대에서 동물행동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랜트(Grant, 피터와 로즈메리)부부는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을 잇는 세계적 진화생물학자 부부다. 1973년부터 최근까지 매년 6개월 씩 에콰도르 갈라파고스군도에서 40년 넘게 핀치새를 연구했다.

세계적 동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 박사가 침팬지와 교감하고 있다. [사진 국립생태원]

세계적 동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 박사가 침팬지와 교감하고 있다. [사진 국립생태원]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에 가면 두 개의 ‘생태학자의 길’이 조성돼 있다. '제인 구달 길'과 '다윈-그랜트 부부 길'이다. 세계적 생태학자인 이들의 업적을 기념해 2015년 당시 국립생태원 원장이던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만들었다.
지난 14일 기자가 직접 두 개의 길을 모두 걸어봤다. 동행한 국립생태원 직원들은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짧은 길이지만 자신을 희생한 분들의 고귀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립생태원 제인 구달의 길 입구에 설치된 안내판. 신진호 기자

국립생태원 제인 구달의 길 입구에 설치된 안내판. 신진호 기자

생태원 본관에서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왼편으로 ‘제인 구달 길(Jane Goodall's)’이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세계적 학자로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구달 박사의 생태원 방문을 기념해 만든 길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1㎞의 길은 10개의 작은 테마로 이뤄졌다. 구달 박사의 아프리카 방문부터 동물을 찾아 나서는 과정, 동물을 초대하고 교감하는 과정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40년간 아프리카에서 침팬지 연구한 제인 구달 희생정신 담은 길 #진화론 찰스 다윈, 그의 연구 이어가는 그랜트 부부 업적 조성 길 #세계적 생태학자 학문적 정신·연구결과 통해 '가지 않은 길' 생각 #최재천 전 생태원장 "인간을 한없이 겸허하게 만들었다" 메시지

야트막한 오르막을 따라 200m가량 올라가자 탐험가용 텐트와 캠핑장비가 나왔다. 구달 박사가 아프리카에서 침팬지를 연구하며 지냈던 텐트를 재현했다. 구달 박사는 26세이던 60년 탄자니아 곰베 침팬지 보호구역으로 들어가 40년 넘도록 연구와 관찰에 몰두했다.
짙은 갈색의 삼각형 모양 텐트 안으로 들어가자 침팬지와 교감하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실천한 구달 박사의 모습이 연상됐다. 2014년 11월 23일 구달 박사는 생태원을 방문해 자신의 이름을 딴 길을 직접 걸었다. 당시 구달 박사는 텐트를 보고 “침대나 널려 있는 박스들이 (당시와) 똑같다. 타자기도 똑같다”고 반가워했다고 한다.

구달 박사는 ‘인간이 아닌 동물도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냈다. 침팬지 연구를 통해서다. 침팬지가 나뭇잎을 이용해 흰개미를 잡아먹고 자신들만의 강력한 질서와 감정이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제인 구달 박사가 침팬지에게 전달하기 위해 바나나를 올려 놓았던 나무 상자(왼쪽)와 그와 처음으로 교감한 침팬지 데이빗 그레이비어드 사진. 신진호 기자

제인 구달 박사가 침팬지에게 전달하기 위해 바나나를 올려 놓았던 나무 상자(왼쪽)와 그와 처음으로 교감한 침팬지 데이빗 그레이비어드 사진. 신진호 기자

이곳에서 200m쯤 걸어가자 나무로 만든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구달 박사가 침팬지에게 전달하기 위해 바나나를 올려 놓았던 상자와 똑같이 만들어놨다.구달은 당시 이렇게 생긴 상자를 사용해 자신의 연구대상이던 침팬지 ‘데이빗 그레이비어드’가 처음으로 마음의 문을 열게 했다고 한다.
능선을 따라 100m를 더 올라가자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쌓아 만든 둥지가 나무 중간에 설치돼 있었다. 침팬지의 둥지모양을 그대로 본따 만든 것이라고 했다.

언덕을 따라 내려가자 커다란 은행나무로 만든 의자가 나타났다. 뿌리와 줄기를 모두 잘라낸, 죽은 나무인데 껍질 쪽에서 새 순이 돋아나는 신기한 모습이 목격됐다. 얼마 전 생태원 직원들이 발견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을 올렸다고 한다. SNS에선 ‘죽은 나무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건 구달 박사의 생명정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가 회자됐다.

제인 구달 길 중간에 놓인 은행나무로 만든 의자. 줄기와 뿌리가 모두 잘려진 죽은 나무에서 새순(검정색 원)이 돋아나고 있다. 국립생태원 직원들은 구달 박사의 생명정신과 연관돼 있다고 반겼다. 신진호 기자

제인 구달 길 중간에 놓인 은행나무로 만든 의자. 줄기와 뿌리가 모두 잘려진 죽은 나무에서 새순(검정색 원)이 돋아나고 있다. 국립생태원 직원들은 구달 박사의 생명정신과 연관돼 있다고 반겼다. 신진호 기자

'제인 구달 길'은 길이가 1㎞로 짧다. 산길이지만 성인 걸음으로 20분이면 입구부터 출구까지 걸을 수 있다. 하지만 구달 박사의 생명정신을 하나 하나 새겨가며 길을 걸으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린다.

국립생태원 야외식물부 이희천 부장은 “평범한 여성이 침팬지와의 교감을 통해 위대한 인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 이 길에 담겨 있다”며 “이 곳에서 그의 생명사랑 정신을 배우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립생태원 생태학자의 길

국립생태원 생태학자의 길

2015년 11월 24일 '다윈-그랜트 부부 길' 명명식에 참석한 피터 그랜트(오른쪽), 로즈메리 그랜트 부부. [사진 국립생태원]

2015년 11월 24일 '다윈-그랜트 부부 길' 명명식에 참석한 피터 그랜트(오른쪽), 로즈메리 그랜트 부부. [사진 국립생태원]

본관 아래쪽 찔레동산에는 진화론으로 잘 알려진 찰스 다윈(1809~1882)과 그의 연구를 이어가는 그랜트 부부의 학문적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다윈-그랜트 부부 길'이 조성돼 있다. 2015년 11월 24일 이 길이 열렸다. 2.2㎞ 구간으로 천천히 걸으면 1시간 가량 걸린다. 출발점에서 1㎞쯤 걸어가면 다윈, 그랜트 갈림길이 나온다. 가파른 경사의 다윈, 완만한 경사의 그랜트 부부 길을 선택해야 한다.

다윈 길에는 ‘종의 기원’ 등 다양한 과학적 이론을 설명하는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그랜트 길에는 이 부부가 갈라파고스에서 생활하며 핀치새의 진화과정을 연구하는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그랜트 부부의 현장 연구는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며, 진화에는 정해진 방향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다윈-그랜트 부부 길 명명식에 참석한 그랜트 부부가 자신들이 갈라파고스에서 생활할 당시 사용했던 모양의 집을 둘러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국립생태원]

다윈-그랜트 부부 길 명명식에 참석한 그랜트 부부가 자신들이 갈라파고스에서 생활할 당시 사용했던 모양의 집을 둘러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국립생태원]

'다윈-그랜트 부부 길' 출구에 설치된 조형물에는 최재천 이대 석좌교수가 국립생태원장 시절에 남긴 메시지가 새겨져 있다. 최 교수는 ‘다윈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다윈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우리 인간을 한없이 겸허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썼다.

국립생태원은 제인 구달, 다윈 그랜트 길에 이어 세 번째 생태학자의 길로 ‘소로(Thoreau)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대학생들의 필독서인 수상집『월든(Walden)』의 저자이자 자연주의 철학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서다. 『월든』은 소로가 메사추세츠 주 콩코드 남쪽의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2개월2일간 홀로 산 체험을 기록한 책이다. 소로는 당시 자급자족의 삶을 실천해 『월든』은 이후 생태주의적 삶의 지침서로 평가받는다.

서천=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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