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팔레스타인의 삶 속에 담은 희망, '올 리브 올리브' 김태일·주로미 감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매거진M] 역사의 고통은 고스란히 이 땅을 살아가는 민초의 몫이다. 김태일(54) 감독은 민중의 삶으로 세계사를 재구성하는 다큐멘터리 ‘민중의 세계사’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온몸으로 겪어낸 광주 시민을 다룬 ‘오월愛’(2011)를 시작으로 자본의 수탈을 겪는 캄보디아 소수민족의 삶을 다룬 ‘웰랑 뜨레이’(2012)를 연출했다.

이번엔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을 찾아 나선 ‘올 리브 올리브’(영제 All live, Olive, 7월 13일 개봉)를 내놨다. 앞의 두 작품에서 조연출을 맡은 아내 주로미(54) 감독은 이번엔 공동 연출로 참여했다. 장마가 시작된 한여름, 서울 명륜동 시네마달 사무실에서 두 감독을 만났다. 결혼한 지 22년이 된 둘은 작은 카메라를 들고, 머나먼 타국의 민중을 만났던 생생하고 가슴 찡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올 리브 올리브' 김태일·주로미 감독

'올 리브 올리브' 김태일·주로미 감독

두 사람이 ‘민중의 세계사’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인도학자 자와할랄 네루가 쓴 『세계사 편력』(일빛) 덕분이었다. 세 권으로 완역된 책을 함께 읽고, 동이 틀 때까지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지배자가 아닌 피지배층의 입장을 다큐로 조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류 언론과 학계가 누락한 이들. 그들의 삶 속에 평화의 길이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핵심은 “기록되지 않고 증언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총 10부작을 기획하고 있다고 들었다.
김태일(이하 김) : ‘과연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늘 있다. 지난해 본래 기획 순서를 바꿔서라도 빨리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원래는 아시아·동유럽·유럽·아프리카 순서로 계획했다. 팔레스타인은 9부에 진행하려던 국가였지만 앞당겼다.

―팔레스타인은 다른 국가 중에서도 위험한 분쟁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데.
: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곳이라 예상했다. 그럼에도 세 번째 작품의 배경으로 택한 건, 현재 이스라엘의 폭정이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1948년 건국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고 기존에 살던 팔레스타인인을 주변부로 내쫓았다. 강력한 경제 권력을 쥐고 있는 이스라엘은 서구 주류 언론 등을 통해, 팔레스타인인은 테러리스트라는 등 불온한 이미지를 심었다. 한국에 알려진 분쟁에 관한 정보만 해도 이스라엘의 시선으로 쓰인 게 많다.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담은 작품으로 이들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움직임이 생기길 바랐다.

―촬영을 위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구역인 서안 지구와 난민촌 일대를 두 차례 방문 했다고.
: 1차 촬영은 2013년 10월 말부터 2014년 2월 초, 2차 촬영은 2014년 10월부터 12월까지 진행했다.

―가족이 모두 소속된 ‘상구네 필름’이 제작하며, 아들 김상구(21)와 딸 김송이(16)도 작업에 참여했다.
주로미(이하 주) : 상구는 세 작품의 촬영 보조를, 송이는 이번 작품의 편집 보조를 맡았다. 이번엔 이스라엘 출입국 심사가 가장 걱정이었는데, 관광객 가족으로 보였는지 큰 문제없이 통과했다. 예루살렘에서 일주일 있을 때 가족의 불만이 가장 컸다. 집회 소리와 앰뷸런스 소리, 순찰하는 무장 군인 때문에 불안했다. 게다가 촬영 장소와 인물을 다 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떠난 터였다. 가족회의 때 상구는 ‘다시는 가족과 다큐 작업을 안 하겠다’고 선언하더라(웃음).
: 아이들의 긴장과 불안을 달랬어야 했는데, 나 역시 뾰족한 수는 없어서. 다행히 팔레스타인인이 사는 서안 지구에 들어가서야 정겹고 푸근한 분위기에 안정을 찾았다.

영화 '올 리브 올리브'

영화 '올 리브 올리브'

‘올 리브 올리브’는 팔레스타인 여성, 위즈단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일터에 가기 전 어린 아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는 삶. 정치적 상황 때문에 남자들의 일자리가 부족한 탓에 여성들은 고단한 일상을 버티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위즈단을 비롯한, 여러 출연자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내밀한 이야기를 듣는다. 마치 가까운 이웃을 만나는 듯이. “관찰자적 시선을 최대한 거두고 이곳 사람의 속마음을 담고 싶었다”는 게 김 감독의 말이다.

―팔레스타인 여성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중동 여성의 이미지는 히잡을 쓰고 보수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이다. 이건 겉모습일 뿐이다. 이 작품에선 자잘한 일상부터 팔레스타인인으로서 겪는 아픔, 이곳 여성으로 사는 삶 등을 속속들이 담고 싶었다. 하지만 여성의 외부 노출에 엄격한 이슬람 문화 때문에 촬영은 쉽지 않더라. 남편 혹은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위즈단은 결혼 전에 사회단체 활동을 했던 터라 이 작품의 취지를 잘 이해해 주었다. 또 남편 니달이 관대한 성격이라 촬영을 쉽게 허락했고.

―위즈단 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인터뷰이 섭외는 어떻게 했나.
: 서안 지구와 난민촌을 돌아다니며 우연히 알게 된 사람들을 시작으로 알음알음 알아갔다. 거의 모든 게 우연의 결과물이다. 한번은 식당 2층에 붙인 운동권 포스터를 보다, 영화에 출연한 활동가 와일을 만났다. 그를 통해 또 다른 출연자 무함마드 할아버지도 만났다. 이슬람엔 외부인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환대의 문화가 있다. 30m를 걸어가는 데 30분이 걸릴 만큼, 이 집 저 집에서 차를 마시고 가라고 권유한다(웃음).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를 거친 한국인에 대한 역사적 공감대도 있더라.

―현지인이 마음을 열기엔 짧은 시간이었을 텐데, 출연자 각자 자신의 사연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무함마드 할아버지는 세 아들의 죽음까지 상세하게 이야기한다.
: 그저 고마울 뿐이다. 무함하드 할아버지는 1차 촬영 때 뵌 후 2차 촬영 때 다시 찾아가니 무척 좋아하셨다. 통역사가 늘 함께 하진 못해, 걱정이 많다고 말씀드리니 "말 안 해도 된다, 너희 눈을 보면 다 안다”고 답하시더라. 할아버지 덕분에 신자가 아니면 들어 갈 수 없는 모스크에 들어가 촬영할 수 있었다.

―결국 팔레스타인 분쟁은 땅에 관한 문제다. 이곳을 직접 보며 느낀 게 많을 것 같다.
: 팔레스타인 사람의 정신적 트라우마는 말도 못할 정도다. 사람은 자기 공간이 있어야 안정적으로 살 수 있지 않나. 이들은 어떤 법적 근거도 없이 삶의 공간을 빼앗겼다. 정상적인 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든 게 당연하다. 심지어 이스라엘 정착촌에 사는 이스라엘인은 총기를 소지할 수 있고, 무고한 팔레스타인인을 잡아 6개월 간 구금해도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
: 현재 서안 지구도 점점 이스라엘 정착촌에 땅을 뺏기고 있다. 더 문제는 뺏긴 땅으로부터 이어진 길, 전기, 수도관을 모두 앗아간다는 점이다. 팔레스타인 토박이들이 바라는 건 소박하다. 오랫동안 가꾸던 땅에서 계속 농사짓고, 친구 집에 가는 길을 몇 배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불합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광경에 속이 답답해졌다. 심지어 가자 지구에선, 2년에 한 번씩 일명 ‘잔디 깎기’라 불리는 신무기 실험이 자행된다고 한다.

영화 '올 리브 올리브'

영화 '올 리브 올리브'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인은 올리브 나무를 심으며 희망을 꿈꾼다. 올리브 나무가 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 삶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은 민둥산에 돌과 작은 풀만있을 정도로 황량하고 척박하다. 이런 땅에 유일하게 자라는 식물이 올리브다. 올리브 비누, 오일, 장아찌 등 일상 어디에나 올리브가 있다. 민족의 전통이 담긴 식물인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를 알고 정착촌을 지으면 모든 올리브 나무를 베고, 수출하는 올리브 열매를 이스라엘산으로 표기하도록 한다. 민족 말살 정책인 것이다. 본래도 소중했던 올리브가 더 절실하게 지켜야 하는 식물이 됐다.
: 간곡하게 말하고 싶은 건, 예루살렘을 관광차 갈 기회가 있다면 서안 지구를 꼭 들러보라는 말이다. 이들의 현실이 어떤지, 그런 상황에서 이들이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사는 모습을 보길 바란다. 또 돈과 권력을 믿고, UN 안전보장이사회의 권고도 지키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

―장면마다 등장하는 귀여운 아이들이 작품에 환한 기운을 불어 넣는 것 같더라.
: 실제로 보면 더 그림처럼 잘생겼다(웃음). 일부러 아이들 모습을 넣으려고 한 건 아니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보다 유일하게 내세울 것은 아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대가족 중심주의라 모두 함께 살며 많은 아이를 키운다. 아이들은 팔레스타인의 중요한 희망이기도 하다.

―한국의 광주 시민, 캄보디아의 소수민족, 팔레스타인 사람까지 각 나라에서 역사적 고통을 받는 이들을 다뤄왔다. 차이가 보이던가.
: 다른 건 피부색과 지역뿐이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힘으로 어려운 상황을 버티며 살아간다. 개인적으로 인간은 외부의 억압이 없다면 스스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법, 제도, 국가권력은 점점 더욱 공고화되는 데, 이것이 인간의 삶을 더 옥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벗어나 대안적이고 평화적인 사회를 만드는 방식을 함께 고심하고 싶다.

―다음 작업은 어느 나라에서 할 예정인가.
: 남미를 고려하고 있다. 남미의 원주민이 이루는 자치 공동체를 중심으로 기획 중이다. 원주민이 과거와 현재 속에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다뤄보려 한다.

민중의 세계사 3편

오월愛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현장엔 시민이 있었다. 지금은 버스 기사로, 중국집 사장님으로, 노점상 주인으로 살아가는 이들. 당시 그들은 시민군이 되어 총을 들었고, 투쟁에 지친 이들을 위해 주먹밥을 지었다. 그 시간을 돌이키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고, 투쟁 한복판에서 자신을 살려준 은인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이도 있다. 각각의 사연을 경청하는 이 작품의 태도엔 민중을 향한 애정과 존경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마음을 뜨겁게 울리고, 광주를 새로운 방식으로 기억하게 하는 다큐멘터리다.

웰랑 뜨레이
캄보디아에서도 오지에 가까운 지역 몬둘끼리. 김태일 감독 가족은 이곳을 무작정 돌아다니다 부농민 뜨레이 가족을 만난다. 자급자족하며 느리게 살아가는 뜨레이 가족의 삶을 침범하는 건 캄보디아의 국가 제도와 자본주의다. 흥미로운 건 김 감독 가족과 뜨레이 가족이 친밀해지는 과정. 오지에서 함께 일하고 놀고 밥 먹는 시간이 아들 상구에게는 탐탁지 않다. 이런 모습이 작품에 신선한 결을 만든다.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뜨레이 가족 앞에 문명화된 우리 삶을 반추하게 된다.

올 리브 올리브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와 난민촌의 현실은 고요한 듯하지만, 격정적이다. 생계를 위해 올리브 재배를 하고, 회사나 공장에 다니며 살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마음 속엔 빼앗겨 버린 땅에 대한 서러움이 가득 차 있다. 그럼에도 올리브 나무를 심으며 민족의 자긍심을 지켜내려 하고,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엔 희망이 가득하길 바란다. 강인하고 긍정적인 모습에 뭉클해 진다. 올리브를 지키며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과 우리도 함께 살자는 마음. 두 감독이 독특한 제목 속에 담은 의미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