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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쏭부부의 잼있는 여행] 미얀마 오지마을의 일일교사가 되다!

중앙일보

입력

전통복장을 입은 판캄마을 할머니.

전통복장을 입은 판캄마을 할머니.

우리 부부의 이번 여행은 미얀마 북부의 작은 마을 시포(Hsipaw)에서 시작합니다. 여행자가 이 작은 마을을 찾는 이유는 소수민족 마을 트레킹을 하기 위해서예요. 험준한 산을 오르는 힘겨운 트레킹은 아니고, 밭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미얀마 오지마을을 한 바퀴 도는 일종의 둘레길 여행이에요.

시포 트레킹 중 만난 풍경.

시포 트레킹 중 만난 풍경.

오지마을 트레킹이라고 하면 태국의 치앙마이 고산 트레킹, 그리고 미얀마 인레호수 근처의 칼로(Kalaw) 트레킹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오랫동안 대표 관광지로 자리 잡아 오다 보니 지나치게 상업화했다는 평이 많아요. 그래서 ‘이왕 먼 길 가는 거, 조금 더 리얼한 소수민족의 삶을 엿보고 싶다’라는 마음에 오지마을 트레킹의 후발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시포로 오게 되었어요.

외국인 관광객은 접근이 금지된 구역이 있다.

외국인 관광객은 접근이 금지된 구역이 있다.

시포 트레킹을 떠나기 전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은 가이드를 구하는 일이에요. 샨 주(州)는 2015년에도 내전이 있었을 정도로 여전히 소수 민족 간 갈등이 있는 지역이라 외국인 관광객이 접근할 수 있는 구역이 제한되어 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갈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안전하게, 풍부한 설명도 들으며 트레킹을 하고 싶어서 가이드를 고용하기로 했어요. 묵고 있는 숙소에 문의하면 트레킹 가이드를 직접 연결시켜주기 때문에 가이드 구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그룹으로 갈 경우 한 사람 당 10~15달러를 지불해야 해요. 이 비용에 트레킹 기간(1~2박) 동안의 모든 숙식과 가이드, 왕복교통비가 포함된다니, 정말 아름다운 가격이죠?
트레킹은 시포에서 약 한 시간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시작했어요. 원래는 2박 3일 코스인데, 날이 좋지 않아 2박 3일 코스를 1박 2일에 걷기로 하고 첫 마을까지는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이동했어요. 오지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마을까지는 차와 오토바이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있거든요. 처음에는 차도 다니지 않는 오지마을인 줄 알았는데 숙소인 해발 1400m의 고산 마을까지도 차가 다녀서 깜짝 놀랐어요.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포장된 도로는 아니고 매우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에요. 게다가 우기라서 물이 흥건한 진흙 길을 지나기 때문에, 자칫하면 바퀴가 빠질 수도 있어요.

트럭을 타고 이동 중인 고산마을 사람들.

트럭을 타고 이동 중인 고산마을 사람들.

마을 주민의 중요한 교통수단인 물소.

마을 주민의 중요한 교통수단인 물소.

트레킹 초반엔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을 걸었어요. 이 마을에서는 우기가 시작되는 5월부터는 옥수수 농사를 짓고, 우기가 끝나는 10월부터 벼농사, 3월에는 감자·고구마·땅콩·깨 농사를 짓는다고 해요. 우리 부부가 방문한 6월 말은 옥수수 농사가 한창이었어요. 강원도에서 자라서 옥수수는 많이 봤다고 자부했는데, 미얀마에서 강원도의 수 십 배나 넓은 옥수수밭을 볼 줄이야. 평생 볼 옥수수는 다 보고 가는 것 같아요. 우리가 지나가자 농사짓던 아낙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시네요. 풍경도 아름답지만 순박한 시골 여인들의 미소는 더 아름다웠어요.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

트레킹 중 자주 마주치는 고산마을 사람들.

트레킹 중 자주 마주치는 고산마을 사람들.

어쩌면 한국인 눈에는 그저 시골 할머니 집 풍경 같을 수도 있어요. 처음에는 우리도 ‘옥수수밭 보러 이 먼 곳까지 왔나’싶어 갸우뚱하기도 했지만, 진짜 트레킹은 이제부터에요. 한 시간 정도 밭길을 걷다 보니 길은 울창한 정글로 이어졌어요. 정글 속에 모기가 어찌나 많던지, 옥수수밭이 그리워지더라고요. 가만히 멈추어 있으면 모기의 맹공격을 받아서 물 마실 틈도 없이 빠르게 정글을 통과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다리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어요. 깜짝 놀라 밑을 보니 땅속에 벌집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윙윙거리는 소리에 놀라 우선 다른 곳으로 이동한 후, 다리를 보니 벌써 몇 군데가 퉁퉁 부어있더라고요. 가이드는 긁거나 만지면 독이 온몸에 퍼지기 때문에 만지지 말라고 충고해주었어요. 가이드의 말대로 다행히 몇 시간 걸으니 통증은 사라지고 무사히 첫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울창한 정글을 헤치며 걸어야 하는 히포 트레킹. 

울창한 정글을 헤치며 걸어야 하는 히포 트레킹. 

울창한 정글을 헤치며 걸어야 하는 히포 트레킹. 

울창한 정글을 헤치며 걸어야 하는 히포 트레킹. 

판캄마을 전경. 

판캄마을 전경. 

도착한 판캄(Pankham)마을은 생각보다 제법 큰 마을이었어요.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나와서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어요. 우리가 신기한지,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수줍은 아이들은 담장 옆에서 얼굴만 내밀고 구경하기도 하고요.

마주칠 때 마다 반갑게 손을 흔드는 아이들 덕분에 항상 기분이 좋았다.

마주칠 때 마다 반갑게 손을 흔드는 아이들 덕분에 항상 기분이 좋았다.

마을 전체 풍경을 담고 싶어서 하늘 위로 드론을 띄워 보았어요. 그러자 윙윙거리는 소리를 듣고 온 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들었어요. 심지어 학교 선생님도 오시더니, 학생들에게 드론을 보여주고 싶다며 학교로 초대를 해주셨어요. 얼떨결에 우리 부부는 1일 야외 수업 선생님이 되었어요. 판캄 초등학교는 마을의 언덕 위에 있는 작은 학교였는데, 학생들과 동자승들이 어울려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이 동자승들은 수도원에서는 수행을 하고 일반 학교에서는 수학이나 영어와 같은 일반 과목을 배운다고 해요. 학생들에게 빙그르르 둘러싸여 드론을 띄우자 학생들은 일제히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불러 주었어요. 우리에겐 익숙한 풍경이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순간이 된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뭉클함이 밀려왔어요.

판캄마을 초등학교에서 드론 비행 시범을 보이는 모습.

판캄마을 초등학교에서 드론 비행 시범을 보이는 모습.

뿌듯하고 뭉클한 경험이었던 일일교사 체험.

뿌듯하고 뭉클한 경험이었던 일일교사 체험.

사실 우리의 방문이 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이 될지 나쁜 영향이 될지 몰라 처음엔 드론을 날리는 것도 조심스러웠어요. 그래도 학교에 초대도 받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뿌듯하더라고요. 아이들에게 휴대폰이나 컴퓨터가 없어서 사진을 직접 전해주지는 못했지만, 대신 트레킹 가이드에게 찍었던 사진들을 보내서 아이들에게 전달할 예정이에요.

판캄초등학교 교실.

판캄초등학교 교실.

판캄마을 언덕 위에 자리한 초등학교.

판캄마을 언덕 위에 자리한 초등학교.

판캄마을 아이들과 즐거운 한때!

판캄마을 아이들과 즐거운 한때!

학교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다음 마을을 향해 다시 출발했어요. 햇빛이 너무 강해서 쉼터에서 미얀마 전통 선크림인 ‘타나카’를 얼굴에 발랐어요. 타나카는 미얀마인의 생활이다 보니, 타나카 나무와 돌판은 어느 집에 가도 볼 수 있어요. 돌판에 물을 살짝 뿌리고 그 위에 타나카 나무껍질을 갈면 연갈색 크림이 나와요. 이 크림을 얼굴에 손가락으로 예쁘게 펴 바르면 되는데, 마지막 단계가 우리에겐 난관이었어요. 옆의 일행은 손으로 예쁘게 펴바르는데, 우리만 마치 진흙탕에 빠졌다 구조된 듯한 얼굴이 되어버렸어요. 겉보기엔 더러워보여도 타나카의 선크림 효능은 끝내줬어요. 다음날 세수하고 보니 타나카 바른 부분만 하얗더라고요.

얼굴에 천연 선크림 타나카를 바른 여인들. 

얼굴에 천연 선크림 타나카를 바른 여인들. 

타나카 바르기는 어려워!

타나카 바르기는 어려워!

판캄 마을을 지나 산허리를 둘러 올라가는 완만한 오르막길은 경치가 좋아요. 저 멀리 오늘 떠나왔던 시포 마을도 내려다보이고, 여기부터는 옥수수밭이 아닌 녹차밭을 지나요. 녹차를 한가득 담아 귀가하는 아낙들을 따라 다음 마을에 도착했어요. 오늘 우리가 묵고 갈 탄산 마을(Htan Sant village)이에요. 탄산마을은 해발 1400m에 위치해 있는 작은 마을로, 점심때 들렀던 판캄 마을보다 더 산 속 깊숙이 있는 오지마을이에요.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또 어디선가 반가운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그런데 이번엔 좀 특이한 곳, 다름 아닌 나무 위에요. 나무 위에서 소리가 들려서 처음엔 원숭이라고 생각했는데,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나무 위에서 뛰어다니며 열매를 따며 놀고 있더라고요. 나무 높이는 10m는 족히 되어 보이고, 우리나라였으면 뉴스에 나올 법한 일이에요. 아이들은 원숭이처럼 나무를 누비며 땅으로 나무열매를 떨어뜨린 뒤, 품에 가득 담고는 집으로 돌아갔어요.

나무를 타고 노는 아이들.

나무를 타고 노는 아이들.

해발 1400m 탄산마을에서 볼 수 있는 전경.

해발 1400m 탄산마을에서 볼 수 있는 전경.

탄산마을에서 머문 현지인의 집.

탄산마을에서 머문 현지인의 집.

꽤 아늑한 잠자리가 돼 줬던 고산마을 숙소.

꽤 아늑한 잠자리가 돼 줬던 고산마을 숙소.

그리고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어요. 커다란 이층집으로, 2층은 자는 공간, 1층은 부엌 겸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이 마을의 대부분 숙소는 대가족이 함께 살아서 집이 넓고 크더라고요. 아이들이 크면 주로 도시로 나가기 때문에 방이 비는데, 그 공간을 외국인 관광객을 받아서 활용하고 있었어요. 드디어 기다리던 저녁 시간! 1층에서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었어요. 저녁식사의 메뉴가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직접 생산된 채소로 만든 여러 반찬과, 오면서 봤던 찻잎으로 만든 독특한 샐러드도 있어요. 하지만 굶주린 우리도 머뭇거리게 하는 반찬이 있었으니, 바로 ‘시카다’라는 벌레 튀김이에요. 마치 우리나라 번데기 같은데, 단백질이 부족한 고산마을에서는 중요한 단백질원이라고 해요. 가장 좋았던 점은 주인 아주머니의 반찬 무한리필 서비스! 배가 부른데도 끊임없이 채워주시는 넉넉한 인심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저녁이었어요.

외국인 관광객에게 방 일부를 숙소로 빌려주는 현지인이 많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방 일부를 숙소로 빌려주는 현지인이 많다.

트레킹도 식후경! 현지인이 차려준 밥상. 

트레킹도 식후경! 현지인이 차려준 밥상. 

결국 도전하는 데 실패하고 만 벌레 튀김.

결국 도전하는 데 실패하고 만 벌레 튀김.

밥을 먹고 오늘 종일 걷느라 피곤했는지 금방 뻗어버렸어요. 고산마을이라 밤에는 꽤 쌀쌀한데, 두터운 이불 덕분에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밤새도록 비가 내렸어요.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영 날이 좋지 않아요. 아니나 다를까, 시꺼먼 구름이 다가오는 듯싶더니, 결국 올 것이 왔어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폭우가 퍼붓기 시작한 거예요. 비만 오지 말라고 그렇게 빌었거늘! 챙겨온 우비를 주섬주섬 꺼내 입고 걷는데 비가 오니 길이 훨씬 미끄러웠어요. 발은 온통 진흙 범벅이 되고요. 이래서 다들 우기보다는 10~2월의 건기를 선호한다고 해요. 다행히 비는 한 시간 정도 내리더니 서서히 그치고, 우리는 옥수수밭을 따라 시포로 내려왔어요.

끝내 쏟아지고야 만 빗줄기.

끝내 쏟아지고야 만 빗줄기.

우기에는 피할 수 없는 '빗길 트레킹'.

우기에는 피할 수 없는 '빗길 트레킹'.

트레킹을 떠나기 전에는 ‘요즘 세상에 진정한 오지마을이나 소수민족이 어딨겠어!’ 라며 기대나 환상을 전혀 가지지 않고 출발했어요. 하지만 예상 외로 너무도 순수하고 인심 넘치는 마을 사람들에게 감동과 치유를 받고 왔어요. 덕분에 우리를 돌아보는 계기도 됐고요. 물질적으로는 많이 부족하지만 마음만은 풍족한 그들이 어쩌면 진정한 부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시포 트레킹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트레킹’이에요. 경치는 우리네 산골 마을 풍경처럼 평범하지만, 그 속의 사람들이 너무도 특별했던 트레킹이었어요.

하산하는 중 또 다시 마주친 옥수수밭 풍경.

하산하는 중 또 다시 마주친 옥수수밭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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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양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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