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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3) “바람이 분다. 아플 준비를 해야 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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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은 갑자기 찾아왔다. 일이 없는 도시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이러다 죽는 날 아침에 “뭐 이렇게 빨라, 인생이?” 할 것 같았다. 경남 거창 보해산 자락, 친구가 마련해준 거처에 ‘포월침두’라는 이름을 지어 붙이고 평생 처음 겪는 혼자의 시간을 시작했다. 달을 품고(抱月) 북두칠성을 베고 자는(枕斗) 목가적 생활을 꿈꿨지만 다 떨쳐 버리지 못하고 데려온 도시의 취향과 입맛으로 인해 생활은 불편하고 먹거리는 가난했다. 몸을 쓰고, 글을 쓰자. 평생 머리만 쓰고 물건 파는 글을 썼으니 적게 먹어 맑은 정신으로 쓰고 싶은 글, 몸으로 쓰는 글을 쓰자, 했다. 올 3월의 일이다. <편집자>  

“어떤 못된 놈을 데려오셨습니까?”

8개월째 통풍, 재발 안 하고 #아토피·과민성 대장염은 사라져

“저는 폐암을 데려왔습니다.”
“저는 대장암 말기를 데리고 왔죠.”
“저는 간 경화와 함께 왔습니다.”

산에 묻혀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도시에서 일에 묻혀 살던 사람들이 병을 얻어 산에 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하나같이 큰 병이고, 하나같이 산에서 약물의 도움 없이 나았다고 한다.
맑고 깨끗한 공기와 물, 가난하고 거친 음식 덕에. 난 늘 의심스러웠다.

산 아래 마을에는 새로 난 길에게 밀려 통행이 끊어진 옛길이 있다. 늦은 오후에 이 길은 산책하기에 안성맞춤 길이 된다. 걷다 보면 꽃을 만나기도 하고, 꽃을 위하는 마음을 만나기도 한다. [사진 조민호]

산 아래 마을에는 새로 난 길에게 밀려 통행이 끊어진 옛길이 있다. 늦은 오후에 이 길은 산책하기에 안성맞춤 길이 된다. 걷다 보면 꽃을 만나기도 하고, 꽃을 위하는 마음을 만나기도 한다. [사진 조민호]

아랫집 목사님은 췌장암을 거느리고 죽어도 여기서 죽자고 목회활동 때려치우고
십수 년 전에 거창에 내려왔다고 했다.
며칠 전, 비 오기 전에 비료 작업 끝내야 한다고 온종일 밭일 해치우고
저녁상에 곁들인 소주 두 병 해치우고 5시간에 걸친 일방적인 대화점유율로
앞에 앉은 나를 해 드셨다. “야, 췌장암~ 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고구마밭에 내린 단비 [강릉=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고구마밭에 내린 단비 [강릉=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곁에서 보니 이렇다. 어떤 날은 종일 움직이신다. 피곤하면 일 안 하고 내내 주무신다.
밭에서 난 작물에 직접 담근 효소, 된장 넣어 쓱쓱 비비면 한끼가 된다.
어쩌다 외식을 하자고 모시면, “에이 더럽게 맛 없네. 이런 걸 왜 돈 주고 사 먹어.” ㅠㅠ
매사에 눈치 볼 일 없으니 끼니에게도 가차없다. 날 것의 거친 음식으로 배를 채우니
췌장암도 살다가 살다가 “에이, 더럽게 맛 없는 것만 처먹네” 하고 도망갔을 거다.

내가 데려 온 놈들은 아주 조무라기들이다.
나는 이 놈들 때문에 내려 온 게 아니니 지들이 따라 온 건데,
목 뒤에 올라 앉아있던 아토피라는 놈은 일주일만에 슬그머니 도시로 돌아갔고
이틀이 멀다 하고 찾아 오던 과민성대장염은 시골에서 지내기에 너무 과민하셨나보다.
바람만 스쳐도 죽을듯 아프다는 통풍이 발등에 처음 찾아 온 게 8개월 전이다.
첫 발병 이후,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두번째 쇼크가 찾아 온다고 한다.
췌장암도 버티다 버티다 도망갔다는데, 통풍 네깐 놈이 어딜 감히!!

중년 남성 괴롭히는 통풍. [일러스트=강일구]

중년 남성 괴롭히는 통풍. [일러스트=강일구]

마을 대나무 숲에 바람이 불어 댓잎을 흔들고 있길래 찍었다.
그 바람에 살짝 발등이 뜨끔뜨끔 하는 것 같아 크게 한마디 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사진 조민호]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사진 조민호]

“야, 통풍~~~~~~~~~~~!!!  살려줘.”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minozo@naver.com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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