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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흙탕물에 씻고 계곡물 마셔”…물폭탄 청주 산간마을 물 끊겨 이중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에 사는 이순자씨가 집에서 떨어진 계곡물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에 사는 이순자씨가 집에서 떨어진 계곡물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먹을 물도 없는데 어떻게 씻어.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고 있어요.”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는 지난 16일 내린 폭우로 간이상수도관이 파손돼 사흘째 생활용수가 끊겼다. 마을 산 중턱에 있는 물탱크에서 마을까지 연결되는 수도관이 끊어지면서 단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청주 옥화·금관리 등 12개 마을 361세대 사흘째 단수 #400㎖ 물병 10개로 하루 버텨…밥 못지어 빵으로 끼니 #계곡물 받아 마시고 하천에서 빨래…정제 안된 지하수 마시기도 #양수 펌프로 논 도랑에서 물 퍼올려 침수 주택 청소 안간힘

18일 옥화리에서 만난 이순자(75·여)씨는 사흘 만에 겨우 미원면 소재지로 나가 목욕을 하고 왔다고 했다. 그 사이 남편 이근원(76)씨는 집에서 50m 떨어진 계곡물을 받아 밥을 지었다. 계곡물이 조금 고인 샘에서 빨래도 했다. 이씨는 "단수가 되는 바람에 3일동안 1.5ℓ 생수 6병으로 식수를 해결했다"며 "빗물과 계곡물을 양동이로 떠서 밥을 짓고 식수가 모자라면 이 물을 그냥 마셨다"고 말했다.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에 사는 이순자씨 집은 지난 16일 폭우 피해로 사흘째 단수가 됐다. 수도꼭지를 돌려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프리랜서 김성태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에 사는 이순자씨 집은 지난 16일 폭우 피해로 사흘째 단수가 됐다. 수도꼭지를 돌려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프리랜서 김성태

옥화리 마을 입구에서는 흙탕물이 된 하천에서 이모(65·여)씨가 운동화와 수건을 씻고 있었다. 그는 "마냥 기다릴 수 없어서 쌓아뒀던 빨래를 들고 개울로 나왔다"고 말했다. 이 마을 양택연(53) 이장은 “수자원공사에서 제공한 400㎖짜리 물병 20개로 하루를 버티고 있다”며 “밥을 짓거나 샤워를 해야 하는데 청주시에서 살수차를 지원하지 않아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100여 가구가 사는 이 마을은 한국수자원공사가 지원한 400㎖들이 물병 40개를 가정마다 받아 식수로 있다. 먹을 물만 간신히 공급받고 있는 것인데 밥을 짓거나 빨래, 침수지역 청소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양 이장은 “생활 용수가 부족하다 보니 세수만 간신히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간이 상수도관을 연결하고 싶어도 물난리에 보수가 지연된다는 말만 들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 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은 마을에서 50~60m 떨어진 개울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몸을 씻는다고 한다. 농로에 지나가는 물을 양수기로 끌어다 침수된 주택을 청소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 주민은 “흙탕물로 몸을 씻다보니 피부병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 입구 하천에서 한 주민이 빨래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 입구 하천에서 한 주민이 빨래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16일 청주에 290㎜가 넘는 폭우가 내리면서 청주 외곽지역에 있는 산간 마을은 또 다른 물난리에 빠졌다. 간이 상수도관이 파손되거나 양수 모터·물탱크가 물에 잠기면서 사흘째 생활용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간이상수도는 지하수나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정수해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시설이다. 이번 폭우로 청주시 외곽에 있는 상당구 미원·낭성면 등 12개 마을을 361세대에 단수가 됐다. 5개 마을은 복구가 됐지만 임시로 연결한 간이상수도관이 또 다시 파손되면서 용수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

상당구 미원면 금관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간이상수도 배관이 터져 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이 마을 박동석(69) 이장은 “밥을 지을 수 없어서 사흘째 빵 등으로 끼니를 떼우고 있다”며 “물이 끊기다 보니 침수된 주택 내부 정리와 청소도 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박 이장은 “정제되지 않은 지하수물을 떠다 먹는 주민들이 혹시 탈이 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마을이 도심 외곽에 있다보니 배관보수 전문업체도 오기를 꺼려한다”고 말했다.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 주민들이 논 도랑에 흐르는 물을 받아 주택 내부 청소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 주민들이 논 도랑에 흐르는 물을 받아 주택 내부 청소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인근 낭성면의 추정1리·문박리·지산1리 주민들도 간이상수도가 고장 나면서 면사무소에 비상급수를 요청했다. 김동수 낭성면사무소 행정팀장은 “물탱크에서 마을을 잇는 파이프가 폭우로 일부 유실된 탓인지 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면서 “추정리와 지산리는 복구를 하고 있고 문박리는 현재 복구를 요청한 상황”고 말했다.문박리에 사는 신범식(60)씨는 "2만ℓ 크기 물탱크로 이어지는 연결관이 끊어져 40여 가구가 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며 "17일 임시로 복구 완료했지만 아침에 와보니 다시 끊겨져 있었다"고 말했다.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에 사는 박온순씨가 식수로 사용할 생수병을 정리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에 사는 박온순씨가 식수로 사용할 생수병을 정리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50여 가구가 사는 상당구 월오동 마을도 현재 단수 상황이다. 주민 김성동(52)씨는 “살수차로 하루에 200㎖의 생활용수를 받고 있지만 턱 없이 부족하다”며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려면 양동이 한개로 물을 채워야 해서 소변은 밖에서 해결하고 웬만함녀 씻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주시는 지난 16∼17일 식수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에 400㎖들이 식수 5만병을 지원했다. 비상급수 차량 14대도 가동되고 있다. 청주시상수도사업소 장연동 급수팀장은 “단수가 된 마을에 비상급수차를 보내 생활용수 공급을 지원할 계획”이라며 “식수가 부족하지 않도록 간이상수도 복구를 신속히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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