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퀭한 눈에 뒤틀린 관절로 흐느적 … 좀비의 창조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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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조지 로메로 감독은 11만4000달러를 투입한 저예산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로 데뷔했다. 평론가들의 외면을 받은 영화는 입소문을 타며 흥행에 성공, 전세계적으로 30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뒀다. 그의 별세 소식에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은 “당신 같은 사람은 또 없을 것”이라며 애도했다. [AFP=연합뉴스]

조지 로메로 감독은 11만4000달러를 투입한 저예산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로 데뷔했다. 평론가들의 외면을 받은 영화는 입소문을 타며 흥행에 성공, 전세계적으로 30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뒀다. 그의 별세 소식에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은 “당신 같은 사람은 또 없을 것”이라며 애도했다. [AFP=연합뉴스]

‘좀비영화의 거장’ 조지 로메로가 세상을 떠났다. 유족과 매니저는 16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로메로 감독이 폐암으로 투병 중이었으며 평소 좋아하던 영화 ‘조용한 사나이(The Quiet Man)’의 OST를 들으며 아내와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77세.

세상 뜬 좀비 영화 거장, 조지 로메로 #68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으로 #현대적 스타일의 호러 개막 알려 #좀비 통해 미국 사회 은유적 비판

영화와 대중 문화에 창궐해 있는 수많은 좀비들은 자신들의 창조주를 잃은 셈이다. 물론 엄밀하게 따지자면 그가 좀비 영화를 처음 만든 건 아니었다. 1930~40년대부터 좀비는 스크린에 등장했다. 하지만 부두교의 오컬트 캐릭터에 지나지 않았던 좀비에게 지금의 모습을 입힌 사람은 로메로였다. 그가 1968년에 내놓은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은 모던 호러의 본격적인 시작으로 일컬어지는 작품. 이 영화가 영화사에서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건, 좀비의 매뉴얼을 제시했기 때문이며, 호러 장르를 중요한 정치사회적 텍스트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며, 수많은 서브 장르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지 로메로는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어릴 적 그는 만화광이었고, 피와 살이 튀는 스플래터 코믹스에 빠져 살았다. 열네 살 때부터 영화를 찍기 시작했지만, 그건 만화 장면의 재현에 지나지 않았다. 20대가 되었을 땐 조금 진지해졌다. 친구들과 함께 프로덕션을 차릴 때 그는 고민했다. 만화에서나 가능한 그 끔찍한 이미지들을 담으면서도 영화적 서사를 갖춘 호러 무비가 가능할까? 그 결과물이 28살에 내놓은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었다.

‘조지 로메로의 새벽의 저주 3D’(2013). 좀비영화의 클래식인 1978년 ‘새벽의 저주’를 로메로 감독이 3D 버전으로 리메이크했다.

‘조지 로메로의 새벽의 저주 3D’(2013). 좀비영화의 클래식인 1978년 ‘새벽의 저주’를 로메로 감독이 3D 버전으로 리메이크했다.

드라이브인 극장을 중심으로 개봉되어 심야 상영 컬트가 되었으며 1970년엔 급기야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소개된 이 영화는 관객에게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선사했다.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나 미이라 같은 고전 호러 캐릭터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무덤에서 살아난 시체들이 인간의 살점을 뜯어먹는 장면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좀비가 된 오빠가 여동생을 공격하고, 어린 딸이 부모를 물어 뜯는 생지옥. 미국영화 특유의 가족주의 판타지가 산산이 부서지는 현장이었다.

느릿느릿 걸으며 몰려다니는, 생기 잃은 눈과 뒤틀린 관절의 존재. 좀비 비주얼의 매뉴얼은 이 영화에서 완성되었으며, 수많은 영화들이 여기에 영감을 얻었다. 평론가들도 환호했다. 그들은 이 영화에서 미국 현대사의 악몽을 읽었다. 그들은 방사능에 의해 깨어난 좀비가 냉전 시대를,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는 모습은 대량 실업 사회를, 경찰과 민병대의 잔인한 진압은 베트남 전쟁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주인공 벤은 흑인인데, 그가 좀비로 오인 받아 허무하게 사살되는 장면에서 마틴 루터 킹이나 말콤 엑스의 암살을 읽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2-시체들의 새벽’(1978).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2-시체들의 새벽’(1978).

‘마틴’(1977)이나 ‘크립쇼’(1982) 같은 작품도 있었지만, 어느새 ‘좀비 호러’는 그의 숙명이 되어 있었다. ‘시체들의 새벽’(1978) ‘죽음의 날’(1985)로 이어지는 3부작은 그의 비전을 확장시키며 이 장르의 거의 모든 것을 완성했다. 도시의 쇼핑 몰로 공간을 옮긴 ‘시체들의 새벽’은 전작과 달리 컬러로 제작되어 한층 더 잔인한 고어 신을 보여주었고 여기에 기괴한 유머를 결합시키며 미국식 소비 자본주의를 냉소적 시선에서 바라보았다. 레이건 시절에 나온 ‘죽음의 날’은 좀비 소탕에 광적인 군인들을 통해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를 비판한다.

로메로의 좀비 영화가 미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메타포 기능만 지닌 건 아니었다. 그의 3부작은 수많은 자식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좀비의 잔인성은 이후 ‘이블 데드’(1981, 샘 레이미) 같은 스플래터 호러로 이어졌고, 외딴 집에서 벌어지는 공포라는 점에서 ‘13일의 금요일’(1981. 숀 커닝햄) 같은 슬래셔 호러와 연결되었다. ‘죽음의 날’의 생체 실험 컨셉트는 ‘28일 후’(2002. 대니 보일)로 이어졌고, ‘시체들의 새벽’은 코믹 호러의 대선배가 되었으며, 수많은 후배들이 3부작을 리메이크하고 인용하고 패러디했다.

정작 로메로 자신의 영화 인생은 쉽지 않았다. 그에 대한 오마주는 넘쳐났고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 에드가 라이트)나 ‘새벽의 저주’(2004. 잭 스나이더) 같은 수작들이 등장했지만, 다시 좀비 랜드로 돌아오고 싶은 거장의 귀환은 쉽지 않았다. 이때 내놓은 ‘랜드 오브 데드’(2006)는 레전드의 묵직한 내공을 보여준 작품이었고, ‘다이어리 오브 더 데드’(2007)와 ‘서바이벌 오브 더 데드’(2009)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좀비 3부작을 만들었다.

60대에 완성한 3부작을 유작으로 남기고 77세의 나이에 영면한 조지 로메로. 우리가 지금 접하고 있는 모든 좀비 콘텐트의 팔 할은 조지 로메로에 빚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고 그가 만든 좀비 영화의 모든 디테일과 법칙과 스타일은 ‘살아 있는 시체’처럼 되살아나 언제나 우리 곁에 서성거릴 것이며, 그때마다 우린 ‘조지 로메로’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조지 로메로

● 1940년 뉴욕 브롱크스 태생
● 1960년대 카네기멜론 대학 졸업
● 1968~85년 좀비물 3부작 연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시체들의 새벽’ ‘죽음의 날’
● 2010년대까지 활동: ‘랜드 오브 데드’(2005), ‘서바이벌 오브 더 데드’(2009) 등
● 토론토 국제영화제 특별상, 뉴욕 호러필름 페스티벌 평생공로상 등

김형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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