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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사상 최대 홈런쳐리그, MLB도 탱탱볼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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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메이저리그(MLB)에서 야구공을 둘러싼 음모론이 퍼지고 있다. 지름 약 7㎝, 무게 141.7~148.8g의 작은 공이 홈런과 아웃, 승리와 패배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공인구 반발력 조작론 확산 #올시즌 경기당 홈런 1.26개로 급증 #‘약물시대’였던 2000년보다 많아 #MLB 사무국 “증거 없다” 해명에도 #선수들 “투수까지 쉽게 넘겨 수상” #흥행 위해 공인구 변경 지시 의심

공인구의 반발력이 높아졌다는 불만은 한 달 전부터 공개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달 초 MLB 사무국은 30개 구단에 “공인구가 변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통지했다.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혹의 그림자는 걷힐 기미가 안 보인다. 말보다 기록이 설득력을 더 발휘하기 때문이다. 16일 기준으로 올 시즌 MLB의 경기당 홈런 수는 1.26개다. 가장 많은 홈런이 나왔던 2000년(경기당 1.17개)보다도 많다. 당시는 마크 맥과이어·배리 본즈 등이 금지약물인 스테로이드의 힘을 빌려 홈런 기록을 갈아치웠던, MLB가 치욕스러워하는 ‘약물의 시대’다.

약효가 떨어지자 투수들이 리그를 지배했다. MLB 투수들의 평균자책점은 2000년 5.14에서 2014년 4.07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타율(0.270→0.251)과 삼진(경기당 6.45→7.70) 등 기록의 변화도 이를 입증했다. 그런데 지난해 급반등이 일어났다. 경기당 홈런이 2년 만에 0.3개 늘더니, 올해는 더 늘었다. 타율·득점은 큰 차이가 없는데, 홈런·삼진만 급증했다.

메이저리그 홈런 1위(30개)를 달리고 있는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 [EPA=연합뉴스]

메이저리그 홈런 1위(30개)를 달리고 있는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 [EPA=연합뉴스]

지난달 말 뉴욕 양키스 투수 다나카 마사히로(29·일본)는 “변명처럼 들릴 수 있지만, 올해 사용하는 공이 이전 것보다 더 멀리 날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31경기에서 홈런 21개를 맞은 다나카는 올해 19경기에서 홈런 24개(MLB 전체 2위)를 내줬다. 래리 로스차일드 양키스 투수코치도 “기록을 보면 의심할 여지 없이 공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라고 거들었다.

보스턴 투수 데이비드 프라이스(32·미국)도 “(공인구가 이상하다는 걸) 100% 확신한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뉴욕 메츠 제리 블레빈스(34·미국)도 “홈런을 잘 치지 못했던 타자들이 홈런을 때리고 있다. 심지어 동료 투수 제이콥 디그롬도 밀어쳐서 담장을 넘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USA투데이는 이런 목소리를 담아 최근 특집기사를 썼다.

홈런 2위(27개) 조지 스프링거(휴스턴). [AP=연합뉴스]

홈런 2위(27개) 조지 스프링거(휴스턴). [AP=연합뉴스]

특정업체(롤링스)가 수십 년간 제작해온 공이 갑자기 달라졌다면 MLB 사무국의 지시가 있었다고 의심할 수 있다. 이게 만일 사실이라면 공을 공인(公認)할 주체가 스스로 공신력을 포기한 셈이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2015년 1월 취임한 뒤, 여러 현안에 대한 얘기하다 공인구 변화에 대해서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는 투고타저(投高打低) 현상이 두드러졌다. 맨프레드는 “수비 시프트 금지를 고려하겠다”고 할 만큼 급진적이기에 공인구 조작과 관련해 의심받는 것이다. 지난달까지 맨프레드는 “홈런은 팬들이 좋아하는 장면”이라며 공인구 논란을 피해갔다.

관건은 투명성이다. 공인구의 반발계수(공이 콘트리트 벽을 맞고 튀어나오는 속도를 던진 속도로 나눈 값)가 규정을 넘는 걸 맨프레드가 허용했다면 커미셔너로서 리더십을 위협받을 수 있다.

지난해까지 한국에서 뛴 밀워키 에릭 테임즈는 홈런 23개 를 때려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까지 한국에서 뛴 밀워키 에릭 테임즈는 홈런 23개 를 때려냈다. [AFP=연합뉴스]

누군가 이번 논란을 ‘그깟 야구공’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공인구 문제로 일본야구기구(NPB) 총재(커미셔너)가 사퇴한 일도 있다. 2012년 경기당 1.02개였던 홈런이 2013년 1.52개로 치솟자, 공인구 반발력에 대한 의심이 쏟아졌다. 투고타저 현상이 심화되자 NPB가 공인구의 반발력을 높이도록 제작사(미즈노)에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구성원의 동의 없이 규정(반발계수) 위반 여지가 있는 일을 몰래 꾸몄다는 비난이 일었고, 가토 료조 총재는 사임했다.

MLB의 ‘홈런 인플레이션’ 시대를 맞아 맨프레드도 같은 의심을 받고 있다. 불만이 고조되자 맨프레드는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방망이도 홈런 증가의 한 요인”이라고 밝혔다. 공인구가 조작됐다는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자 시선을 배트로 돌리게 한 것이다.

MLB 전문가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공인구 조작은 심증이 있으나 물증은 없는 상황”이라며 “그 와중에 에런 저지(25·뉴욕 양키스·30홈런)와 코디 벨린저(22·LA 다저스·26홈런) 등 젊은 타자들이 홈런 레이스를 이끌고 있다. 이들의 활약이 MLB 흥행에 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식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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