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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정권, 서둘러 대화에 나설 이유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지난 4일, 북한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시험발사를 전격적으로 감행했다. 북한 당국이 이번에 쏘아 올린 ‘화성- 14형’은 예정된 비행궤도를 따라 39분간 비행하여 북측 동해 공해상의 설정된 목표수역을 정확히 타격했고 미사일의 정점고도 2802km까지 상승하여 933km 거리를 비행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14형’ 시험발사 과정을 현지에서 친히 관찰하였고 그 빛나는 성공을 세계만방에 장엄히 선언하였다 전해졌다.

북한이 지난 4일 ICBM 발사 실험을 했다. [사진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4일 ICBM 발사 실험을 했다. [사진 연합뉴스]

그러나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은 지난 11일 국회 정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북한의 ‘대륙간 탄도로켓 ‘화성-14형’에 대해, “(대기권) 재진입 기술과 종말 유도 기술을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며 “아직까지 초기 수준의 비행시험”이라는 다소 평가절하된 판단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은 ‘화성-14형’ 발사 성공을 기념하는 축제 분위기를 대대적으로 띄웠다. 이만건(당 부위원장ㆍ이병삼(당 제 1 부부장)등 평양체육관 광장에서 ‘화성-14형’ 시험발사 성공에 기여한 성원들을 맞이하는 행사를 벌였으며 수십만 시민들이 동원된 연도 환영행사도 진행되었다(7. 7 중앙통신). 7월 9일에는 ‘화성-14형’ 시험발사 성공 기념 ‘음악ㆍ무용 종합공연’이 개최되었고, 김정은이 참석하기도 하였다. 화성-14형 시험발사 성공 기념행사를 전국적으로 확산하도록 했다. 7월9일 화성-14형 시험발사 성공 경축행사가 ‘군민 연환대회’로 각 도에서 진행했던 것이다.

다음날 김정은은 부인 이설주를 대동하고 당중앙위원회ㆍ당 중앙 군사위원회가 주최한  화성-14형 시험발사 성공 축하 연회에도 참석하였다(7.11, 중앙방송). 7월 13일에는 대륙간 탄도 로켓 시험 발사 성공에 기여한 성원들에 대한 당 및 국가표창식도 진행되었다.

그런데 북한의 이 같은 대륙 간 탄도 로켓 시험발사 성공 행사들은 미사일 성공에 대한 김정은의 치적과 지도력을 높이 띄우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예를 들면, 화성-14형 시험발사 성공 축하 연회에서 북한당국은 황병서의 축하 연설을 통해 “최고 령도자(김정은)께서 당과 군대, 국가의 천사만사를 돌보시는 그 바쁜 속에서도 <화성 14형> 개발 집단의 총설계가, 총제작자, 정치위원이 되시여 개발 전 과정에 국방과학자, 기술자들과 언제나 고락을 함께”했다는 사실을 부각하면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강국의 꿈을 앞당겨 실현하기 위하여 비상한 정력으로 세월을 주름잡으시고 자신의 모든 것을 깡그리 다 바치시는 천재적인 전략가, 탁월한 령도자, 헌신적인 애국자는 찾아볼 수 없다고” 높이 추켜세웠다. 김정은은 사실 갑자기 권좌를 물려받은 ‘애송이’ 지도자에 불과했다. 이러한 김정은을 명실상부한 최고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북한 당국은 이같이 매우 바쁘게 움직여 오고 있다.

이전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들은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하면 국제적 제재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도 이를 감행하는 모험을 했다. 그들은 오히려 국제적 제재 분위기를 김정은의 유일 영도력을 강화하는 데 활용하는 듯 했다. 국제적 대북제재로 인해 심각하게 고립되는 상황을 역으로 이용한 셈이다. 주민들에게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내핍생활을 강요한다. ‘자강력 제일주의’의 기치 하에 외부로부터의 문을 꽁꽁  잠그고 인위적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새로운 ‘고난의 행군’을 강요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외세, 특히 ‘미제’에 의해 새로 초래되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극복하고 ‘반미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선군지도자’로 김정은을 우뚝 세우고자 한다. 그들은 미국을 비롯한 외부의 적을 인위적으로 창출하여 과장 선전하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포함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 결정을 정당화 하면서 이를 김정은의 뛰어난 지도력의 결과로 부각함으로써 김정은 정권의 공고화를 다그치고 있다.

문제는 김정은 정권이 국제적 제재를 축제만으로 오랫동안 감내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실제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으로 인해 북한 경제는 심각하게 희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화성-14형’ 미사일 도발에 따른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대북제재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 역시 북한 경제를 더욱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 될  것이다. 미국은 북한뿐만 아니라 북한과 직접 거래를 하거나 북한 거래를 용이하게 하는 인물 또는 도움을 주는 제 3국의 개인과 단체 등으로 더욱 확대해 나가고 있어 북한경제는 더욱 심각한 상황에 빠져들게 되었다. 최근 북한지역에서 아사자 속출이 전국적 현상으로 대두하고 있다는 첩보는 북한 당국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게 될 것이다. 자유아시아 방송(RFA)에 따르면,“요즘이 햇감자 수확시기인데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다“고 전한 것이 대표적이다. 북한에서 이같은 아사자 속출 현상은 올해의 가뭄으로 인해 더욱 심화 될 수도 있다.

이제 북한은 김정은 지도력 제고를 통한 체제안정을 위해 국제적 제재를 활용하는 것을 넘어 제재를 풀어 인민생활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가 되었다. 제재를 풀기 위해서는 협상국면으로 전환해야 한다.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협상력 제고 수단이 비축되어 있어야 한다. 그동안 북한 당국은 핵ㆍ미사일 수단 강화로 결정적인 협상력을 갖추고자 매우 서둘렀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이번 ICBM ‘화성 14형’ 시험발사를 기점으로 새로운 협상국면에 돌입하고자 할 가능성이 커졌다. 가능한 한 빨리 미국과의 심리적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당당한 핵ㆍ미사일 보유국으로 우뚝 서고자 했을 것이다. 이번 ICBM ‘화성 14형’ 시험발사로 북한은 미국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핵ㆍ미사일 보유국이 된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김정은은 ICBM ‘화성 14형’ 시험발사 현지지도에서 “미제와의 기나긴 대결이 드디어 마지막 최후 계선에 들어섰고,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우리의 의지를 시험하는 미국에 똑똑히 보여 줄 때가 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하면서 국제적 제재를 풀어 경제발전을 위한 대외적 조건, 즉 협상국면에 돌입하는 데 우선적인 관심을 보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북한은 6자회담을 적극 이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6자회담을 그들의 핵을 없애는 회의가 아니라 그들의 핵을 인정하고 그들의 핵보유를 전 세계에 공식화하는 계기로 만들고자 할 것이며 그들에 대한 국제적 제재를 풀게 하는 회의가 되도록 할 것이다. 그들은 6자회담 재개를 유인하기 위해 ‘핵미사일 개발 동결론’을 적극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군을 남한에서 철수시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한 협상전략을 펼칠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모색할 것이다. 이 대화를 안보회담으로 발전시켜 궁극적으로 미ㆍ북간 평화협정 체결로 주한미군 철수를 유도해내려고 할 것이다. 북한 당국은 핵ㆍ미사일 개발 고도화로 협박하면 미국이 결국 백기를 들고 협상에 응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을 통해 김정은은 ‘대미 투쟁’적 국면을 조장하여 내부적으로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맞짱’ 뜰 수 있는 ‘강대한’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된다는 망상에 빠져 있을 수도 있다.

 과정적으로 북한 당국은 핵ㆍ미사일 개발 중단과 개발 강화 압박 카드를 활용하여 미국과의 대화를 도출해내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평화협상을 포함한 확실한 보상 없이는 미사일 개발을 중단한다고 하더라도 시늉에 그칠 가능성이 더 크다는 데 주의를 요한다. 물론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핵 폐기에 대한 진정한 신뢰가 전제되지 않은 한 대화는 없다고 단언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미 행정부는 지속적으로 핵미사일을 개발해 나가는 북한의 무모한 행태를 두고만 볼 수 없지 않은가라는 여론을 의식해서 6자회담 재개나 미ㆍ북 간의 대화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도 없다.

이에 더해 북한당국은 미국과의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중국과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할 것이다. 일단 중국이나 러시아는 핵ㆍ미사일 개발과 같은 도발에 대해 심히 부정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내심으로 북한의 무모한 도발을 반기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ㆍ중국ㆍ러시아 3국이 공히 주한미군 철수로 한반도에서 미국이 축출되기를 원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그들을 대신하여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통한 미국의 한반도 군사개입을 억제해 나가도록 의도하고 있을 수 있다. 마치 냉전시대 중국과 구소련이 아프리카에서 서방세력을 몰아내고 공산주의 확장을 위해 북한을 ‘프락치 국가’로 활용한 것처럼 말이다. 현실적으로도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과 같이 군사적 수단을 포한한 강력한 압박으로 북한의 핵ㆍ미사일을 포기케 하는 것보다 북한의 주장대로 미ㆍ북 간의 평화협상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는 공동성명에서 “쌍 중단(북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ㆍ미 연합군사 훈련 중단)과 투 트랙(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 병행)이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하고 실현 가능한 방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볼 때 향후 북한의 핵ㆍ미사일 관련 협상국면이 전개될 경우 한ㆍ미 군사훈련 중단→ 미ㆍ북 평화협정 협상 도출→ 주한미군 철수 목표 달성을 위한 보다 실질적인 북한ㆍ중국ㆍ러시아의 3각 협력환경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앞선다. 치밀한 대책이 요구된다.

정영태 동양대 군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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