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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귀찮아 짝짓기 피하던 나무늘보, 넷째까지 낳고 '다산왕' 된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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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주토피아'에서 주인공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캐릭터가 '나무늘보'다. 행동은 굼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건네도 한참 뒤에 '하. 하. 하'하고 웃는다. '형광등 반응'이다.

용인 에버랜드의 나무늘보 '얼음'과 '땡' 부부, 9년간 새끼 4 마리 낳아 #나무늘보는 털 속에서 이끼가 자랄 정도로 느리고 움직이지 않는 동물 #귀찮아서 짝짓기 기피해 늙어 죽을때까지 독신으로 사는 경우도 있어 #먹이 자주 주고 사육실도 고향처럼 열대기후로 꾸며 많이 움직이도록 배려 #암컷 몸에 상처내는 등 애정 표현 이후 임신 징후‥막내 이름은 공모중

실제로도 나무늘보의 동작은 굼뜰까. 지난 14일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에서 만난 2004년생 동갑내기 나무늘보 '얼음(13·수컷)'과 '땡(13·암컷)' 부부도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넋 놓듯' 가만히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기를 10여분. 사육사가 살짝 건드리자 그때야 느릿느릿, 바로 옆 나뭇가지로 몸을 옮겼다.
이들을 돌보는 김진목(39) 사육사는 "우리 동물원의 나무늘보는 많이 움직이는 편"이라고 했다.

나무늘보는 포유류 중 동작이 가장 느린 동물이다. 평균 시속은 900m 정도다. 1분에 약 15m를 이동하는 셈이다. 나무에 매달려 18시간 넘게 잠을 자고 먹고, 짝짓기와 출산까지 한다. 다른 포유류 동물보다 근육량이 적다. 체온도 평균 3~4도 정도 낮다. 환경에 따라 24~35도로 체온이 변한다. 너무 움직이지 않아서 야생의 나무늘보는 털속에서 이끼가 자랄 정도라고 한다.

나무 위에서 놀고 있는 나무늘보들. [사진 에버랜드]

나무 위에서 놀고 있는 나무늘보들. [사진 에버랜드]

이런 나무늘보가 유일하게 나무에서 내려오는 순간은 정말 볼일이 급할 때다. 야생에선 한 달에 한 번 정도 대소변을 보기 위해 땅을 밟는다고 한다. 장이 작고 여러 개로 나뉘어 있어서 음식물을 소화하는 속도가 다른 포유류보다 느리다.

이렇다 보니 2007년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얼음과 땡 부부가 이사를 들어오자 에버랜드 사육사들은 상당한 고민에 빠졌다. 나무늘보는 한 번에 딱 한 마리의 새끼만 낳는다. 하지만 교미하는 것조차 귀찮아 해서 늙어 죽도록 독신으로 사는 나무늘보도 많다고 한다. 나무늘보가 멸종위기에 놓인 이유가 '게을러서'라는 농담이 빈말이 아닌 셈이다.

잠을 자는 나무늘보. 용인=최모란 기자

잠을 자는 나무늘보. 용인=최모란 기자

실제로 얼음과 땡 부부는 처음부터 서로에게 데면데면했다. 그래도 사육사들은 나름 기대를 했다고 한다. "나무늘보는 야행성 동물이니 밤에는 부부 간에 '역사(?)'가 이루어지겠지"라고 기대했는데 이 부부는 밤에도 자신의 영역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얼음'과 '땡'이라는 이름도 '움직여서 붙어있으라'는 의미에서 붙였다.

결국 사육사들은 나무늘보가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냈다. 먼저 환경을 이들이 살던 고향과 비슷하게 만들어줬다.
나무늘보는 베네수엘라·브라질 등 25도 이상의 습한 열대 기후에서 사는 동물이다. 때문에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선 자연 번식이 어렵다. 이에 따라 에버랜드는 나무늘보가 머무는 방의 온도를 연중 26-30도로 유지해줬다. 또 나뭇가지를 잔뜩 넣고 인근에 인공폭포 등을 설치해 열대우림과 비슷하게 꾸몄다.

또 먹이도 자주 먹게했다. 야생에선 1주일에 한번 할까말까한 식사를 매일 챙겨줬다. 건강상태를 따져 영양소를 조절하고 먹이를 제대로 먹지않을 땐 나무늘보 입에 고구마·오이·당근 등을 직접 넣어줬다. 먹는 양이 늘어난 나무늘보의 배변 기간은 한 달에서 일주일, 3일 간격으로 줄었다.

지성이면 감천. 사육사들의 지극정성은 마침내 통했다. 얼음과 땡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졌다.
그러던 중 이상한 일이 생겼다. 땡의 손등과 팔에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손톱과 이빨 등으로 물어뜯은 흔적이었다.
상처는 계속 늘어갔다. 사육사들은 얼음이 땡을 괴롭힌다고 생각해 따로 분리해야 하는 것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때 땡의 배가 '임산부'처럼 볼록 나오기 시작했다. 음식을 먹는 양도 부쩍 줄었다. 노심초사한 사육사들이 초음파 검사를 한 결과 임신이었다.

나무늘보 엄마 '땡'과 올해 1월에 태어난 넷째 [사진 에버랜드]

나무늘보 엄마 '땡'과 올해 1월에 태어난 넷째 [사진 에버랜드]

김 사육사는 "나무늘보의 번식기는 1년에 한번 정도로 드문데다 특별한 징후가 없어 파악하기가 어렵다"며 "번식기에 접어들면서 날카로워진 얼음이 관심과 애정표현으로 땡을 괴롭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행히도 나무늘보는 회복력이 빨라 땡의 상처는 다음날이면 쉽게 아물었다고 한다.

이렇게 땡은 120~180일 후인 2008년 첫 아기인 늘씬이를 낳았다. 2014년과 2015년에는 늘순이와 늘현이를, 올해 1월에는 한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나무늘보의 평균 수명이 10-32년인 만큼 막내는 사람 나이로 40대에 본 늦둥이인 셈이다.
이렇게 에버랜드엔 6마리의 나무늘보 일가족이 무리를 이뤄 살게 됐다. 나무늘보 부부가 자연 번식으로 다산을 하고 일가를 꾸리는 것은 해외 동물원에서도 드문 일이라고 한다.

김진목 사육사는 "전에는 땡이에게서 상처가 발견되면 둘이 사이가 안좋아서 그런가 싶어서 걱정을 했다. 이제는 애정표현이라고 여겨 얼음과 땡이에게 삶은 달걀 등 영양분이 많은 먹이를 주로 준다"고 했다.

잠을 자고 있는 수컷 나무늘보 얼음. 새끼 나무늘보들의 아빠이자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다. [사진 에버랜드]

잠을 자고 있는 수컷 나무늘보 얼음. 새끼 나무늘보들의 아빠이자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다. [사진 에버랜드]

남편인 얼음은 몸집이 가장 크고 무리를 통솔한다. 아내 땡에 대한 독점욕도 강하다. 자식들이 엄마에게 접근하는 것도 막을 정도로 가부장적이라고 한다.
반면 암컷은 태어난 새끼를 1년 정도 배 위에 올려서 키울 정도로 모성애가 강하다. 새끼들은 성장한 지금도 새로 태어난 막내의 젖을 뺏어먹을 정도로 장난꾸러기들이라고 한다.

에버랜드 측은 얼음과 땡 사이에서 태어난 '네 자녀'의 정확한 성별을 아직까지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첫째인 늘씬이는 암컷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무늘보는 생식기가 드러나 있지 않아 외관 상으로 암수 구분이 어렵다. 때문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만 정확한 성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다른 동물원에서는 수컷 나무늘보를 수컷과 짝지어 주는 헤프닝도 종종 있다고 한다.

김진목 사육사와 나무늘보 가족 [사진 에버랜드]

김진목 사육사와 나무늘보 가족 [사진 에버랜드]

김 사육사는 "수컷에게 까칠하게 대하는 얼음이가 땡과 늘씬이의 접근만 허용하는 것을 보면 늘씬이는 암컷으로 추정되지만 앞으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새끼들의 정확한 성별을 확인할 생각"이라면서 "얼음이와 땡이가 금실도 좋고 건강 상태도 좋아 앞으로도 새끼를 더 낳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에버랜드는 지난 1월 태어난 막내인 넷째 나무늘보의 이름을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공모하거나 관람객 투표 등으로 선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용인=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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