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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노영범의 소울루션(1) 정신병도 한약으로 치료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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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약은 보약이란 인식이 강했다. 병을 치료하는 건 양약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앞으론 한약도 치료 약으로 쓰이는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화학적 조합으로만 만든 양약은 강한 독성을 띨 수밖에 없다. 반면 한약은 생약 성분으로 이루어져 몸에 이롭다. 한약이 치료 약으로 사용된다면 양약이 쳐놓은 울타리를 허물어 의학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전문 한의사가 진단체계를 상세하게 소개한 '상한론'을 바탕으로 치료 약으로서의 한약을 풀어낸다. <편집자>   

[사진 중앙포토]

[사진 중앙포토]

얼마 전 서울의 한 사립초등학교 수련회에서 일어난 학교폭력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가해자가 재벌 회장 손자들과 연예인 아들이어서 유독 더 크게 이슈화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조금만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적지 않게 일어나는 게 학교폭력이다. 교육부가 지난해 실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피해 학생이 2만 8천명에 달했다.

트라우마 처방 증상만 완화 #근본 치료는 안 돼 #한방의 상한론이 대안 부상

2013년 학교폭력 피해 학생이 7만 명을 기록한 이후 줄고 있고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 및 규제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피해 학생에게 새겨진 상처가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는 데 대한 뚜렷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피해 학생 비율을 보면 중학교(0.5%), 고등학교(0.4%)보다 초등학교가 1.3%로 월등히 높게 나타난다. 아직 사춘기도 겪지 않아 자기 이해가 부족한 어린 나이에 폭력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된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운 어린아이들 중 충격과 상처를 숨겨두고 있다가 사춘기를 겪으며 폭발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생긴다. 중·고등학교 때 겪는 학교폭력 트라우마도 심각성이 절대 적지 않다. 성적에 민감한 시기이기에 더 큰 열등감과 패배감을 느끼며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는 데 애로를 겪는다.

그렇게 뒤틀린 자기인식에서부터 시작된 마음의 문제는 결국 몸의 문제로 나타나며 행동으로 표현된다. 그렇게 망가져 가는 아이들을 보며 발을 동동 굴리는 어머니들이 많다. “우리 아이, 왕따 당한 후 많이 달라졌어요….”

트라우마, 양약 치료로 극복될까

[사진 pixabay]

[사진 pixabay]

우울·불안·공포증·분노조절장애·주의력결핍·과잉행동, 심하면 환청도 들리는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은 이미 정신과치료가 필요한 상태로 봐야 한다. 정신과를 방문하면 일단 아이들은 설문지를 작성하고, 체크된 문항에 점수를 매겨 총점에 따라 증상의 경중을 파악하게 된다. 처방이 내려지면 호르몬제 및 안정제 등의 약이 투여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이들 약은 상처받은 상황과 트라우마를 고려한 처방이 아니다. 단지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한 약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치료라고 볼 수 없다. 여전히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아이들은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상황과 마주치면 증상이 재발돼 또 치료를 받아야 한다.

물론 따로 상담치료를 병행하기도 하지만 이미 아이는 약물에 취해 다른 2차적 증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증상을 조절하는 약과 상담치료를 병행한다고 해도 최선의 정신과적 치료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스트레스 상황에 모든 사람이 같은 방어자세로 대응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학교폭력에 처한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대응 (불안· 분노·과잉행동 ·우울 등) 을 한다.

이러한 심리적·행동적·증상적 반응 패턴을 분류해 놓은 진단체계가 고대의학서적인 『상한론(傷寒論)』에 기록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한의학계에서는 연구와 임상치료가 한창이다.

『상한론』은 크게 7가지(大陽病· 陽明病· 少陽病·大陰病·少陰病·厥陰病·陰陽易差後勞復病)로 변병(辨病) 분류진단을 한 후 몸이 움직이는 패턴에 주의한다. 그런 다음 증상을 적시한 조문(條文)을 찾아내 거기에 맞는 처방(處方)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가령 학교폭력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분노를 뜻하는 글자인 번(煩)은 상한론에 무려 44개의 조문(條文)에 들어 있다. 하지만 이 44개의 조문에 쓰여진 처방을 분석한다 해도 분노(煩) 치료에 해당하는 약재는 찾을 수가 없다. 따라서 단순히 분노(煩)에 대응하는 약 혹은 약재(本草)를 찾아 처방하는 기존의 의학체계 방식과는 전혀 다른 진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당시 상황이 어떠했고, 그에 따라 몸이 어떻게 반응했기에 번(煩)을 유발하였는지 아이와의 진솔한 대화와 상담을 통해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몸에 대해서도 좀 더 상세한 관찰과 진단이 이루어져야 번이 들어 있는 44개의 조문 중에서 아이에게 딱 맞는 조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에게 문제가 됐던 트라우마가 발견되고, 아이는 자신의 몸에 대한 이해를 통해 스스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려 드는 것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이해하는 치료의약  

한약 [중앙포토]

한약 [중앙포토]

아직 항간에는 한약을 보약으로만 접근하는 이들이 많다. 치료는 양약으로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양약은 인위적으로 성분을 추출해 강한 독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반면 한약은 생약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몸에 이로울 것으로 여겨진다.

한의학의 최대 장점이었던 이러한 생약의 안정성에 매우 상세하고 정확한 진단체계를 갖춘 『상한론』이라는 임상이론이 더해지고 있다. 그동안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앞으로는 상한의학(傷寒醫學)을 통해 질병의 패턴을 이루는 사람의 마음과 몸을 바르게 이해하는 치료의학으로서 한약을 먼저 찾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노영범 대한상한금궤의학회 회장 neoherb@hanmail.net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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