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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도심 여행? 남중국해 가면 생각이 달라질 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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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왕가위 감독 영화의 광팬이고 신발을 싸게 사는 데 꽂힌 ‘쇼퍼홀릭’이라도 한여름 홍콩 도심에서 이틀만 지내도 심신이 지친다. 거리마다 꽉꽉 들어찬 인파와 2층 버스가 만드는 소음이 진을 빼놓는다. 조울증 환자처럼 변덕을 반복적으로 부리는 날씨에도 “이제 그만!”을 외치고 싶어진다.

한국 명동과 비슷한 홍콩의 코즈웨이베이. 하루에도 열 번씩 비가 왔다 개기를 반복하는 도시 가운데에 있으면 '내가 이러려고 여행을 왔나'는 생각이 든다. 

한국 명동과 비슷한 홍콩의 코즈웨이베이. 하루에도 열 번씩 비가 왔다 개기를 반복하는 도시 가운데에 있으면 '내가 이러려고 여행을 왔나'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땐 홍콩 섬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지하철을 타고 20분만 이동해도 도시의 번잡스러움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 남중국해 주변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뭉친 마음을 스트레칭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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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의 낮, 오션파크(Ocean Park)

센트럴역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을 지나 오션파크역을 빠져나오면 파란 하늘과 초록 잎사귀가 우거진 풍광이 펼쳐진다. 올해로 개장 40주년을 맞는 오션파크 입구다. 화려한 야경을 찍느라 놓지 못했던 휴대폰을 내려놓고 이제 즐길 때다.

해발 200m 높이 '오션파크 타워'에서 내려다 본 오션파크. 남중국해부터 빅토리아 하버, 홍콩 주변 섬들까지 내려다 보인다.

해발 200m 높이 '오션파크 타워'에서 내려다 본 오션파크. 남중국해부터 빅토리아 하버, 홍콩 주변 섬들까지 내려다 보인다.

‘핫해핫해’라는 한 워터파크 광고 카피가 워낙 친숙한 탓인지 오션파크에 수영복을 챙겨가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이곳은 워터파크가 아니다. 남중국해를 끼고 있는 해양 공원이다. 한국으로 치면 차라리 에버랜드와 가깝다. 하지만 에버랜드에는 없고 오션파크에는 있는 단 하나의 강점이 있다. 바로 남중국해다.

케이블카는 1977년 오션파크가 만들어질 때부터 있었다. 동물 전시관이 있는 아래쪽에서 놀이기구가 있는 위쪽으로 사람들을 실어나른다.

케이블카는 1977년 오션파크가 만들어질 때부터 있었다. 동물 전시관이 있는 아래쪽에서 놀이기구가 있는 위쪽으로 사람들을 실어나른다.

놀이기구를 타면 남중국해와 붙어 있다는 걸 가장 스릴 있게 느낄 수 있다. 40년 된 케이블카를 타고 입구로부터 8분쯤 산을 넘으면 놀이기구가 모여 있는 ‘스릴 마운틴’ 구역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밑바닥 없이 달리는 롤러코스터 ‘헤어 레이저(Hair Raiser)’가 있다. 열차에 앉은 뒤 갑자기 사라지는 발 받침대와 뜻하지 않게 공중에 덜렁대는 자신의 다리를 보며 후회해도 때는 늦다. 열차는 탄 사람의 심경은 안중에 없이 화가 난 코브라처럼 하늘로 용솟음쳤다가 몸을 꼬며 바다 쪽으로 곤두박질친다. 내면의 두려움을 떨쳐내고 반드시 눈을 뜨기를 추천한다. 잠시 꿈꾸는 갈매기 조나단에 완벽하게 빙의할 수 있다.

시속 88㎞ 속도로 밑바닥 없이 공중을 휘어잡듯 내달리는 롤러코스터 '헤어 레이저'.

시속 88㎞ 속도로 밑바닥 없이 공중을 휘어잡듯 내달리는 롤러코스터 '헤어 레이저'.

빙글빙글 자전하며 360도로 회전하는 놀이기구 '플래쉬'.

빙글빙글 자전하며 360도로 회전하는 놀이기구 '플래쉬'.

빙의에서 깨어나 쉴 공간을 찾는다면 가까운 곳에 ‘턱시도(Tuxedos)’라는 귀여운 이름의 식당이 있다.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턱시도를 입은 듯한 작은 펭귄 수십 마리를 구경할 수 있는 식당이다. 식당 내 온도가 꽤 낮은 것이 아쉽지만, 밥 먹는 내내 펭귄들이 얼음 위에서 멍청히 미끄러지는 장면을 볼 수 있고 펭귄이 얼마나 애교가 많은지도 알게 된다. 스페셜 음식으로는 올리브와 썬 오이 두 쪽이 눈알, 꼬깔콘이 코가 된 펭귄 모양 피자가 나온다.

펭귄이 얼음 위에서 노는 모습을 구경하며 식사할 수 있는 '턱시도' 레스토랑. 펭귄들은 사람들을 향해 헤엄쳐 와 애교를 부린다.

펭귄이 얼음 위에서 노는 모습을 구경하며 식사할 수 있는 '턱시도' 레스토랑. 펭귄들은 사람들을 향해 헤엄쳐 와 애교를 부린다.

턱시도 레스토랑의 스페셜 음식인 펭귄 모양 피자 'Tux Seafood Pizza'. 오이와 올리브로 눈알을, 세모난 과자로 코를 만들었다. 

턱시도 레스토랑의 스페셜 음식인 펭귄 모양 피자 'Tux Seafood Pizza'. 오이와 올리브로 눈알을, 세모난 과자로 코를 만들었다. 

남중국해 위를 나는 놀이기구와 미니 남극을 품은 식당처럼, 자연스럽게 바다의 면면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이곳의 매력이다. 오션파크 마티어스 리(Matthias Li)사장은 “오션파크의 모든 시설은 ‘사람과 자연의 교감’을 추구하는 운영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1977년 홍콩마사회 기부금으로 만들어진 뒤 비영리 법인으로 운영 중인데, 지구 온난화 방지와 멸종 위기 동물 보호를 위한 여러 연구 단체도 후원하고 있다.
이러한 운영 철학으로 인해 때로는 동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동물 쇼가 예정돼 있었더라도 동물이 응하지 않으면 취소될 수 있다. 내가 방문한 날에는 원래 ‘수달과의 하이파이브’ 행사가 있었지만 주인공 수달이 사람들과 악수하러 나올 기분이 아니라 취소됐다. 이곳의 명물인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서른한 살, 사람으로 치면 구순을 맞은 자이언트 판다 ‘안안(安安)’도 관계자가 “숙면을 취하는 중이셔서 방해할 수 없다”고 해 만나지 못했다. 대신 한창 때인 젊은 수컷 자이언트 판다 ‘루루(樂樂)’에게 먹이를 주고 그의 변 냄새를 맡아보는 경험은 할 수 있었다. 채식주의자에 장이 짧아 먹는 족족 밖으로 배출하는 자이언트 판다의 변에서는 오래된 나물 된장 무침 같은 냄새가 난다.

영화 '쿵푸팬더' 주인공처럼 생긴 판다는 정확히 말해 '자이언트 판다'다. 올해 서른 한 살로 세계에서 가장 연로한 자이언트 판다 '안안(安安)'의 서른 살 생일 모습. 사람으로 치면 90살 넘은 어르신이다.

영화 '쿵푸팬더' 주인공처럼 생긴 판다는 정확히 말해 '자이언트 판다'다. 올해 서른 한 살로 세계에서 가장 연로한 자이언트 판다 '안안(安安)'의 서른 살 생일 모습. 사람으로 치면 90살 넘은 어르신이다.

대나무 가지와 과일을 먹는 자이언트 판다는 장이 짧아 먹는 족족 하루에 15~20㎏씩 배출해낸다. 음식물이 몸 속에 오래 머물지 않고 채식을 하기 때문에 냄새는 덜한 편이다. 

대나무 가지와 과일을 먹는 자이언트 판다는 장이 짧아 먹는 족족 하루에 15~20㎏씩 배출해낸다. 음식물이 몸 속에 오래 머물지 않고 채식을 하기 때문에 냄새는 덜한 편이다. 

테마파크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으레 겪는 피로함이 오션파크로부터는 덜하다. 인공적이고 닫힌 공간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열린 공간이 주는 편안함 덕이다. 이곳에서는 2019년 개장을 목표로 한국의 ‘캐리비안베이’ 같은 물놀이 공간을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사람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색깔을 간직하면서 만들어질 인공풀장은 어떤 모습일까.

모래, 비누거품, 고무인형…아이들의 여름 놀이터

낮엔 오션파크서 놀이기구 #갑자기 사라지는 발 받침대 아찔 #밤엔 스탠리베이서 근사한 저녁 #이토록 매력적인 홍콩이라니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은 비누거품 풀장.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은 비누거품 풀장.

 오션파크가 개장 40주년을 맞아 준비한 특별 여름 이벤트 ‘썸머 스플래시 2017’은 특히 아이들이 즐기기에 좋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양동이 물 폭포와 비누거품 폭포를 즐길 수 있고, 6m 크기의 거대한 모래 조각 작품도 구경할 수 있다. 홍콩 최초의 고무 장난감 회사 ‘엘티덕(LT Duck)’과 콜라보레이션을 한 오리 장난감이 가득 담긴 풀장도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7월 1일 시작된 이벤트는 8월 29일까지 진행된다.

공중에 매달린 양동이에서는 약 2분 간격으로 물이 쏟아진다.

공중에 매달린 양동이에서는 약 2분 간격으로 물이 쏟아진다.

호박에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등 유명인의 얼굴을 조각해 유명한 조각가 레이 빌라판(Ray Villafane)이 만든 6m 크기의 모래 작품. 레이 빌라판은 계속해서 이 곳에 새로운 모래 조각을 만들고 있다.

호박에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등 유명인의 얼굴을 조각해 유명한 조각가 레이 빌라판(Ray Villafane)이 만든 6m 크기의 모래 작품. 레이 빌라판은 계속해서 이 곳에 새로운 모래 조각을 만들고 있다.

6500개의 고무 오리 인형으로 채워진 풀장. 오션파크는 매년 다른 캐릭터와 콜라보레이션을 한다. 2015년에는 네이버에서 만든 '라인' 캐릭터와 했다.

6500개의 고무 오리 인형으로 채워진 풀장. 오션파크는 매년 다른 캐릭터와 콜라보레이션을 한다. 2015년에는 네이버에서 만든 '라인' 캐릭터와 했다.

남중국해의 밤, 스탠리(赤柱) 베이

날이 저물면 바다와의 스킨십을 좀 더 진하게 할 때다. 오션파크역에서 버스로 40~50분 가면 ‘스탠리 마켓’ 정류장에 도착한다. 내리자마자 그간 듣지 못했던 낯선 새 소리가 귀를 적신다.

'스탠리 마켓' 정류장에 내리면 가장 먼저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언덕길을 따라 오밀조밀한 상점들이 쭉 이어져 있다.

'스탠리 마켓' 정류장에 내리면 가장 먼저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언덕길을 따라 오밀조밀한 상점들이 쭉 이어져 있다.

배가 드나드는 항구가 있는 이곳은 어부들, 만 끝 쪽 언덕에 사는 부유한 홍콩 주민들, 그리고 외국인 방문객이라는 이질적인 집단이 어우러져 형성한 독특한 구역이다. 영화 '첨밀밀' OST를 부른 홍콩의 국민가수이자 성룡의 전 연인인 등려군(鄧麗君)도 죽기 전 1990년대에 스탠리 베이의 주택에 살았다.
정류장에서부터 언덕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좁은 골목에 옹기종기 작은 상점이 모여 있는 스탠리 마켓이 나온다. 치파오 같은 전통의상 뿐 아니라 제법 값나가는 원피스를 판매하는 옷가게, 악세사리 가게, 갤러리 등이 있다. 한국의 남대문 시장 같은 몽콕(旺角) 야시장과는 다른 매력을 풍긴다.

아기자기하면서도 화려하게 꾸며진 스탠리 마켓 상점들은 여행객에게 '바가지'의 두려움도 잊게 만든다.

아기자기하면서도 화려하게 꾸며진 스탠리 마켓 상점들은 여행객에게 '바가지'의 두려움도 잊게 만든다.

스탠리 베이 해안 도로에서 샛노란 건물로 유명한 해산물 요리 레스토랑 '보트 하우스'. 이곳은 해안 도로를 따라 색색의 노천 레스토랑이 이어져 일몰을 감상하며 식사하기에 좋다.

스탠리 베이 해안 도로에서 샛노란 건물로 유명한 해산물 요리 레스토랑 '보트 하우스'. 이곳은 해안 도로를 따라 색색의 노천 레스토랑이 이어져 일몰을 감상하며 식사하기에 좋다.

마켓 거리가 끝나면 잔잔한 파도 소리와 함께 블레이크 항구(Blake Pier)의 고즈넉한 풍광이 펼쳐진다. 해안가에 떠 있는 색색의 작은 고깃배들은 이곳이 어촌마을임을 떠올리게 한다. 육지 쪽으로 움푹 파인 둥근 해안선을 따라서는 원색의 노천카페가 줄지어 있고, 사람들은 둑 위를 걸으며 사진을 찍거나 카페에서 맥주를 마신다. 대형 애완견을 끌고나와 해안 도로를 산책하는 주민들도 쉽게 볼 수 있다.

노천 레스토랑에서 바라본 해질녘 블레이크 항구의 모습. 블레이크 항에서는 센트럴과 침사추이 선착장을 오가는 배가 드나든다.

노천 레스토랑에서 바라본 해질녘 블레이크 항구의 모습. 블레이크 항에서는 센트럴과 침사추이 선착장을 오가는 배가 드나든다.

한낮에도 스탠리 베이를 찾는 관광객은 많지만, 노천카페에 앉아 남중국해 너머로 해 저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해질녘부터 밤까지의 시간이 아름답다. 은갈치 비늘 같던 바다빛이 시시각각 어두워지고 하늘이 쪽빛을 더해 가면 블레이크 항구에 불이 들어온다. 홍콩 침사추이(尖沙咀)에서 볼 수 있는 빅토리아 하버의 무지개빛 야경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고 따뜻한 풍경에 지친 마음이 풀어진다. ‘당신은 내게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었죠. 생각해보세요,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你问我爱你有多深 我爱你有机分. 你去想一想 你去看一看, 月亮代表我的心)’라고 고백하던 등려군의 노랫말 구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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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저물면 블레이크 항구와 머리 하우스(Murray house·오른쪽 건물)에 주황빛 불이 켜진다.

날이 저물면 블레이크 항구와 머리 하우스(Murray house·오른쪽 건물)에 주황빛 불이 켜진다.

글·사진= 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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