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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 역사를 재구성한 ‘갓놀런’의 실험

중앙일보

입력

‘실화’가 나타났다! 놀런 감독 신작 ‘덩케르크’ 미리 보기  

 '덩케르크'의 한 장면.

'덩케르크'의 한 장면.

이름만으로 신뢰감을 넘어 ‘전율’을 안기는 감독이 과연 얼마나 될까.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첫 번째 실화 영화 ‘덩케르크’(원제 Dunkirk)가 7월 20일, 드디어 국내 극장가에 상륙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프랑스 북부의 항구도시 덩케르크의 해변에 고립됐던 33만8226명의 연합군이 독일군의 포위를 뚫고 영국으로 탈출한 기적 같은 실화를 다룬 대작이다. 미지의 우주를 탁월하게 담은 전작 ‘인터스텔라’(2014)로 국내 1030만 관객을 동원했던 놀런 감독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탈출 작전을 아이맥스 카메라에 생생하게 담았다. 인간의 기억부터 수퍼 히어로의 고뇌, 꿈과 무의식의 영역을 거쳐 우주로 나아갔던 그가 반세기 전 과거로 발길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거대한 역사적 현장을 스크린에 불러온 ‘덩케르크’를 미리 짚었다.

 '덩케르크'의 한 장면.

 '덩케르크'의 한 장면.

펭귄 떼처럼 해변 위에 도열한 군대, 신경을 긁는 시계 초침 소리, 정체불명의 굉음에 일제히 하늘을 응시하는 병사들. 지난해 8월 공개된 ‘덩케르크’의 첫 번째 티저 예고편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스펙터클한 전쟁 장면도 유명 배우의 얼굴도 아닌, 지극히 정적인 풍경이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긴장감은 일찍부터 대중의 기대감을 달궜다. ‘늘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줬던’ 놀런 감독, 그에 대한 관객의 절대적 신뢰가 무조건반사처럼 드러난 순간이었다.
‘덩케르크’는 1940년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독일군과 망망대해 사이에 고립된 40만 연합군의 기적 같은 탈출극이다. 열여섯 살 때 ‘인셉션’(2010)의 기본 스토리를 구상했던 놀런 감독은 이미 오래전부터 “영국 문화의 일부이자 뼛속까지 자리 잡은”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스크린에 옮기길 꿈꿨다. 그가 ‘덩케르크’를 처음 구상했던 1990년대 초, 놀런은 아내이자 ‘덩케르크’의 제작자 엠마 토마스와 함께 직접 배를 타고 덩케르크를 방문하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오른쪽)이 덩케르트 해변에 설치한 세트에서 케네스 브래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오른쪽)이 덩케르트 해변에 설치한 세트에서 케네스 브래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덩케르크는 영국 본토로부터 불과 75km 떨어진 가까운 해변이다. 하지만 철수 작전은 당시엔 6m에 달하는 거센 파도와 도버 해협의 험준한 지형 때문에 대형 구축함의 접근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영국군의 주도로, 민간 어선과 군용 보트를 포함한 900여 척의 선박은 병사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위험천만한 바닷길을 뚫고 도버 해협을 건넜다. 일명 ‘다이나모 작전(Operation Dynamo)’으로 불리는 덩케르크 철수 작전은, 2차 대전의 판도를 바꾼 전환점이자, 독일군과 히틀러의 입장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최대 실수로 남았다.

 '덩케르크'의 한 장면.

 '덩케르크'의 한 장면.

영화는 철수 작전 당시 육지·바다·공중 세 가지 상황에 처한 여러 인물들의 시점을 넘나든다. 놀랍게도, 놀런 감독은 이들이 각자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광경을 각각 다른(하지만 서로 극적으로 얽힌) 시간 단위로 구성했다. 영국군 병사 토미(핀 화이트헤드), 해군 사령관 볼튼(케네스 브래너) 등 덩케르크 해변에 고립된 연합군들의 피 말리는 일주일,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개인 어선을 몰고 도버 해협을 건너는 영국인 어부 도슨(마크 라이런스)과 구조 선박들이 항해하는 하루, 아군을 보호하기 위해 출격한 영국 왕립공군(RAF)의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주어진 한 시간이다. 출세작 ‘메멘토’(2000)에서 뒤엉킨 시간을, ‘인셉션’(2010)에서 여러 겹의 무의식 공간을 선보였던 놀런 감독은, ‘덩케르크’에서 같은 작전에 매달린 다양한 상황의 인간 군상들을 통해 각각의 개인이 경험한 역사의 현장을 통합한다. 그것도 최소한의 대사로 말이다. 그 스스로 “이제껏 만든 영화 중 가장 실험적인 작업이 될 것”이라고 공언한 이유다.

천군만마 부럽지 않은 ‘놀런 사단’의 위용

 '덩케르크'에 출연한 젊은 배우들. 왼쪽부터 해리 스타일스, 아뉴린 바나드, 핀 화이트헤드.

'덩케르크'에 출연한 젊은 배우들. 왼쪽부터 해리 스타일스, 아뉴린 바나드, 핀 화이트헤드.

 '덩케르크'의 메인 포스터를 장식한 영국군 일병 토미(핀 화이트헤드).

'덩케르크'의 메인 포스터를 장식한 영국군 일병 토미(핀 화이트헤드).

놀런 감독의 전작과 달리, ‘덩케르크’는 젊은 신예 남성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했다. 소년병의 시선에서 생존 드라마를 그려내려 했던 놀런 감독의 의도 때문이다. 주인공 토미 역할의 핀 화이트헤드를 포함해, 톰 글린 카니, 잭 로던, 영국 보이그룹 원 디렉션의 해리 스타일스 등이 캐스팅됐다.

 덩케르크 해변을 사수하는 냉철한 해군 사령관 볼튼(케네스 브래너). 감독 겸 배우로 유명한 케네스 브래너는 이번 영화에서 놀런 감독과 처음 만났다.

 덩케르크 해변을 사수하는 냉철한 해군 사령관 볼튼(케네스 브래너). 감독 겸 배우로 유명한 케네스 브래너는 이번 영화에서 놀런 감독과 처음 만났다.

 연합군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소형 어선 '문스톤 호'를 몰고 덩케르크로 향하는 영국 어부 도슨(마크 라이런스). '스파이 브릿지'(2015,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로 2016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마크 라이런스가 도슨을 맡았다.

연합군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소형 어선 '문스톤 호'를 몰고 덩케르크로 향하는 영국 어부 도슨(마크 라이런스). '스파이 브릿지'(2015,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로 2016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마크 라이런스가 도슨을 맡았다.

 배우 겸 감독인 케네스 브래너, 2016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자 마크 라이런스 등 노련한 중견 배우들 역시 처음 놀런 사단에 합류, 영화에 힘을 보탰다. 놀런 감독과 두 편을 작업한 배우 톰 하디가 영국 왕립공군의 베테랑 조종사 파리어 역을 맡았다. 하디는 실제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 참여했던 할아버지로부터 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고. 놀런의 전작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의 악당 베인 등 여러 편의 영화에서 가면을 쓰고 출연했던 그는 이번에도 상당 분량을 비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연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네 차례나 놀런 감독의 영화에 출연해 ‘놀런 전속 공무원’이란 애칭이 붙은 킬리언 머피 역시 조난된 군인으로 출연한다.

 영국 왕립공군(RAF)의 스핏파이어 전투기 조종사 파리어를 연기한 톰 하디. 실제 하디의 할아버지는 덩케르크 철수 작전 당시 현장에 있었다.

 영국 왕립공군(RAF)의 스핏파이어 전투기 조종사 파리어를 연기한 톰 하디. 실제 하디의 할아버지는 덩케르크 철수 작전 당시 현장에 있었다.

'덩케르크'에서 킬리언 머피(사진 오른쪽)는 '떨고 있는 병사(Shivering Soldier)' 역할을 맡았다. 특이하게도 주요 배역 가운데 유일하게 이름이 없다.

'덩케르크'에서 킬리언 머피(사진 오른쪽)는 '떨고 있는 병사(Shivering Soldier)' 역할을 맡았다. 특이하게도 주요 배역 가운데 유일하게 이름이 없다.

여전히 중심을 떠받치는 건 노련한 제작진이다. ‘인터스텔라’에서 우주의 황홀경을 혁신적으로 담아낸 촬영감독 호이트 반 호이테마가 이번에도 카메라를 들었다. 편집감독 리 스미스, 미술감독 나단 크로울리, 의상감독 제프리 커랜드 모두 놀런의 초기작부터 함께 해온 명장들이다. 가장 든든한 우군은 놀런 감독의 영원한 창작 파트너인 음악감독 한스 짐머. 이미 놀런 감독의 전작에서 캐릭터와 주제를 대중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음악으로 표현했던 그는, 처음 공개된 테마곡 ‘수퍼마린(Supermarine)’(하단 유튜브 영상)을 비롯해 배의 엔진 소리와 놀런 감독의 시계 초침 소리를 결합한 새로운 사운드를 선보일 예정이다. ‘인셉션’에서 프랑스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d Rien)’을 오묘하게 변주했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 에드워드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Nimrod)’를 뭉클하게 변주할 예정이다. 명실상부, 구멍 하나 없이 탄탄한 놀런 사단이다.

덩케르크' OST 'Supermarine'. 한스 짐머 작곡.

‘관람’을 넘어선 ‘체험’의 영역으로

 '덩케르크'의 한 장면.

 '덩케르크'의 한 장면.

놀런 감독의 최대 장기는 실제 상황에 버금가는, 생생하고 압도적인 현장감이다. ‘다크 나이트’(2008)에서 실제 화물 트럭을 전복시키고, 도시 상공에 9m 비행선 모형을 띄워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촬영했던 놀런 감독. 이번 ‘덩케르크’에서 그는 “현장의 배우뿐 아니라, 관객 역시 영화 속 상황에 감정적으로 젖어들게 하기 위해”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 77년 전 연합군이 고립됐던 덩케르크 해변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강행했다. 약 1500명의 보조 출연자를 동원했고, CG를 최소화하기 위해 판지로 제작한 병사와 차량 소품을 골고루 배치해 대규모 군대처럼 보이게 연출했다. 덩케르크의 항만과 잔교(배가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안에 만들어진 시설) 등 당시의 시설물을 실물 크기로 제작했을 뿐 아니라, 100m에 달하는 프랑스 옛 구축함 마이에브헤레(Maillé-Brézé)를 포함해 60척의 낡은 선박들을 수리한 뒤 영화에 등장시켰다. 실제 철수 작전에 자원한 영국의 민간 선박 12척이 찬조 출연하기도 했다. 당시 운용됐던 세 대의 스핏파이어(Spitfire) 전투기, 그리고 독일 공군의 메서슈미트(Messerschmitt) ME109 전투기로 둔갑시킨 스페인 HA-1112 부천(Buchón) 전투기도 실제 공중을 비행하며 촬영했다. 좁은 조종석에 크고 무거운 아이맥스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반 호이테마 촬영감독은, 아이맥스 카메라를 작고 가볍게 특수 제작해 비행기 내부에 설치했다. 그 결과, 조종사의 시점에서 보이는 믿을 수 없는 광경들을 실제 비행하며 촬영했다.

덩케르크 해안에서 연출 중인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왼쪽)과 배우 케네스 브래너.

덩케르크 해안에서 연출 중인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왼쪽)과 배우 케네스 브래너.

여기에 놀런 감독의 주특기가 또 하나 추가됐다. 바로 아이맥스(IMAX) 카메라. ‘덩케르크’의 65mm 아이맥스 필름 촬영분은 전체의 75% 정도로, 지금까지 놀런 감독의 전작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이미 여러 편의 전작에서 장대한 액션과 장엄한 전경을 아이맥스 카메라에 담아낸 놀런 감독은, ‘덩케르크’에서 아이맥스 촬영을 통해 인물들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흥미로운 건 ‘덩케르크’의 상영 시간이 106분이라는 점이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164분, ‘인터스텔라’의 169분 등 놀런 감독의 최근작에 비해 한 시간 가까이 줄었다. 그 이유는 간단해 보인다. 아마도 놀런 감독은 77년 전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 개입된 여러 인물들이 느꼈을 불안과 간절함 등의 치열한 감정을, 관객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절절히 경험하길 바라지 않았을까. 그가 ‘덩케르크’를 홍보하며 유독 ‘체험’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덩케르크’에는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과 군 수뇌부 같은 정치인들은 물론, 당연히 등장할 것 같은 독일군의 모습도 비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덩케르크’는, 전쟁의 참상을 의도적으로 드러낸 반전 영화도, 스펙터클한 전투에 집중한 블록버스터도 아니다. “생존을 위한 인간들의 사투”를 그린 서스펜스 영화다. 이전에 존재한 적 없었던 전쟁 사극의 새로운 지평. 확신하건대, 놀런 감독은 그 누구도 감히 생각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해답을 들고 나타날 것이다. 그가 언제나 그랬듯이.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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