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진보 경제정책에서 공감할 부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진보 정부는 재정을 물 쓰듯 한다는 인상을 준다. 성장보다는 분배에 초점을 맞추고 복지를 확대하다보니 재정을 동원할 수밖에 없어서다. 보수 정당인 제1 야당과 보수 지식인들은 퍼주기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저성장 시대에 나라 곳간만 축내고 결국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길 뿐이라고 주장한다.

소득주도성장은 투자만능의 보완책, 속도 조절은 필요 #기존 정책 급격히 방향 못 바꿔 … 반대 여론 설득 힘써야

문재인 정부의 지출 계획을 보면 이런 우려가 나올 만하다. 기초연금을 50% 올려 30만원으로 확대하고 아동수당 10만원을 신설하기로 한 데다 누리과정 예산에 대한 정부 지원도 늘린다. 이런 식으로 201개 공약 실행에 5년간 178조원의 재정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부족한 세금은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실효세율을 높여 충당할 계획이다. 이러니 이른바 보수 기득권층의 불만이 많다.

문재인 정부는 이 불만의 벽을 넘어야 한다. 그러려면 몰아붙이지 말고 잘 설득해야 한다. 설득 논리도 있지 않은가. 새가 양 날개로 날 듯이 정책도 성장과 분배가 조화로워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투자 촉진 지상주의에 따라 규제 완화에 총력을 쏟아부었다. 전봇대와 대못을 제거했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다. 낡은 규제가 몇 개 없어졌지만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 같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연 2%대 저성장에다 23%에 달하는 체감 청년실업률이 그 근거다.

그래서 진보 정부는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걸었다. 규제개혁 상황판도 걸자는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의 제안도 있었지만 아직 반응이 없다. 앞으로도 반응이 없을 것 같다. 일자리 상황판과 규제개혁 상황판은 어쩌면 진보와 보수의 정책 대결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런 구도는 최근 문 대통령의 핵심 브레인을 만나 들은 설명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보수 정부는 주로 투자촉진으로 경제를 활성화하는 정책카드를 썼다. 규제를 풀어 기업 투자를 부추기면 신산업과 일자리 창출이 촉진된다는 기대다. 이를 위해 서비스산업발전법과 규제프리존법이 필요한데 국회와 노조에 가로막혀 못한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논리였다. 이런 제도가 만능열쇠는 아니지만 통과되면 분명 효과가 있다고 본다. 가령 지난 4일 가동한 삼성전자 경기도 평택공장이 좋은 사례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볼 수 있는 생생한 현장이다. 이 공장 건설 현장에만 하루 평균 1만2000명이 투입됐다. 2021년까지 37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고용유발 효과가 44만 명에 달한다. 여기에 연관된 중소기업은 또 얼마나 많은가. 대기업 낙수효과가 없다는 얘기는 팩트 오류다.

하지만 낙수효과의 위력은 여기까지 같다. 요즘 우리 대기업들이 주로 공장을 짓는 곳은 해외다. 매출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얻으니 더욱 그렇다. 풀어야 할 규제를 풀더라도 일단 해외로 한 번 나간 기업이 돌아오긴 어렵다. 그 결과가 가계소득 정체와 소비 부진의 악순환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들고나온 소득주도성장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구석이 있다. 인구가 두터운 에코세대(1991~96년 출생)를 중심으로 당장 취업난에 직면한 청년층을 공무원으로 흡수하고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공공부문화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통해 일자리 81만 개를 만든다는 목표다. 이들이 탄탄한 일자리를 가져야 소비가 된다는 주장이다. 국책연구기관 시뮬레이션 결과 그래야 5년 후 지니계수가 다소 개선되고 중부담·중복지의 문턱이라도 밟게 된다고 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이런 정책방향을 지지했다. 재정을 통한 소득 재분배가 주요국 최하위권 수준이라면서 확장 재정정책을 권고했다. 물론 돈이 쓸데없는 데 줄줄 새는 일은 국민이 눈 부릅뜨고 감시할 일이다.

다만 탈원전처럼 무리한 정책으로 국민을 놀라게 하는 일은 자제했으면 한다. 최저임금 1만원도 과속 조짐이 문제다. 5년 정권이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