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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급락 5가지 이유(하)…'김치 프리미엄' 거품이 터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란의 '어쩌다 투자']
비트코인 급락 5가지 이유(하)

③ 6월 ICO 30건 육박, 올 들어 작년 7배 #ICO 참여하려면 시장서 이더리움 사야 #ICO 끝나면 발행 기업은 이더리움 팔아 #수요 늘었다 공급 늘면서 가격 급락 # #④플래시 크래시…시장의 신뢰 흔들 #이더리움, 순간 317달러서 10센트로 폭락 #”가상화폐 시장엔 안전 장치 전혀 없다” # #⑤‘김치 프리미엄’ 사라졌다 #투자 몰리며 해외보다 70% 비싸게 거래 #국내 최대 거래소 해킹에 가격 하락세 겹쳐 #국내 가격 프리미엄 5% 이내로 축소

21세기판 ‘튤립 버블’ 붕괴인가. 가상화폐값이 폭락하고 있다. 전에 없던 시장이니 명확하게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지만,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시장 급락의 이유를 5가지로 정리했다. '가상화폐 급락 5가지 이유(상)…맏형 비트코인이 쪼개진다'에 이어 나머지 3가지 이유를 알아본다.

③ ICO 열풍…공급 폭탄 터졌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말하는 가장 자신 있게 말하는 가상화폐 가격 폭락의 이유다. 특히 이더리움 가격이 반 토막 난 주요 원인은 다들 ‘가상화폐공개(ICO, Initial Coin Offering)’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ICO란 새 가상화폐를 만든 기업이 자사의 암호화 기술 등을 투자자들에게 공개함으로써 투자금을 모으는 방법이다. 정부나 증권사 등으로부터 통제를 받지 않고 민간거래소에 등록하는 식이다. 발행 기업은 배당이나 이자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 주식시장에 기업을 공개하는 것(IPO, Initial Public Offering)과 비슷하다고 해서 ICO라는 이름이 붙었다.

ICO가 올해 러시를 이뤘다. 미국의 블록체인 조사기관인 ‘스미스+크라운’에 따르면 올해 ICO로 조달된 자금은 7억6102만 달러(약 8650억원)로, 지난해 연간 조달액 1억252만 달러의 7배를 끌어모았다. 올해 들어 새로 발행된 가상화폐는 70여 종. 가상화폐당 1087만 달러씩 투자된 셈이다.

*6월 진행된 ICO자료: 토큰마켓

*6월 진행된 ICO자료: 토큰마켓

문제는 ICO의 자금 조달이 주로 이더리움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ICO에 참여하고 싶은 투자자는 시장에서 이더리움을 사서 발행 기업에 투자자금으로 내야 한다. 곧 ICO가 잇따른다는 얘기는 시장에서 이더리움 수요가 늘어난다는 의미다. ICO 정보를 제공하는 토큰마켓에 따르면 6월 한 달 동안 이뤄진 ICO만 30건에 육박한다.

그런데 ICO가 끝나면 이더리움으로 투자금을 모은 발행기업은 이를 현금화해 기술 개발에 써야 한다. 시장에서 이더리움을 내다 판다는 얘기다. 국내 3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인원의 차명훈 대표는 “단순히 말해 대규모 ICO가 예정돼 있으면 ‘사자’는 사람이 많아 이더리움 가격이 올랐다가 ICO가 끝나면 ‘팔자’는 사람이 늘어나 가격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④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시장 신뢰 흔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의 비트코인 플랫폼 업체인 코인베이스가 운영하는 가상화폐 거래소 GDAX에서 300달러를 웃돌던 이더리움이 몇 초만에 10센트까지 폭락했다. 바로 원래 가격 수준을 회복하기는 했지만 순간적으로 100만원이던 내 자산이 330원으로 증발했다는 의미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지금 와서 보면 차트에 흔적 조차 희미하다. 플래시 크래시는 자산 가격이 순식간에 급락하는 걸 말한다.

*6월 21일 가느다란 빨간 선이 아래로 쭉 내려와 있다. 플래시 크래시의 증거다.자료: GDAX

*6월 21일 가느다란 빨간 선이 아래로 쭉 내려와 있다. 플래시 크래시의 증거다.자료: GDAX

GDAX는 이더리움 거래량이 세계 5위인 거래소다. 달러 기준으로는 거래량이 가장 많다. 주식시장이었다면 상ㆍ하한가(30%)까지만 가격이 움직였을테고(국내 증시의 경우), 아예 거래를 잠시 중단시키는 사이드카ㆍ서킷브레이커 등이 발동돼 정상을 벗어난 시장이 안정됐을 거다. 그러나 가상화폐 시장에는 안전 장치가 전혀 없다. 거래도 24시간 365일 이뤄진다.

GDAX의 애덤 화이트 부사장은 다음날 블로그를 통해 “이번 일이 이례적으로 많은 수백만 달러의 매도 주문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수백만 달러의 이더리움 매도 주문이 나오면서 이더리움 가격이 317.81달러에서 224.48달러로 30% 가까이 하락했다. 이어 특정 가격 밑으로 떨어지면 더 이상의 손실을 막기 위해 자동으로 팔도록 설정해 둔, 손절매(stop loss) 주문이 800건 쏟아지면서 10센트까지 99.97% 급락했다는 것이다.

GDAX는 즉각 이더리움 폭락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고 동시에 거래를 중단했다. 그러나 부정행위 등의 증거는 포착되지 않았고 시스템에도 이상이 없어 거래를 한 시간 만에 재개했다. GDAX 측은 플래시 크래시로 인한 손실이 입증된 고객에 대해 전액 보상할 방침을 밝혔다.

‘버블’ 우려가 팽배하던 시기 발생한 ‘사고’는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켰다. 미국의 주식 트레이딩 업체인 테미스 트레이딩의 조 살루치 공동 설립자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가상화폐 시장은 주식시장에서 플래시 크래시 발생을 막기 위해 만든 시스템 비슷한 것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며 “시장 규모는 크지만 신뢰는 형성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신뢰가 부족하다 보니 손을 떼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가상화폐 가격이 하락하는 이유다.

⑤‘김치 프리미엄’ 사라졌다

지난달 28일 오전 9시 37분,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비트코인 거래량이 총 22만7643.89개를 기록, 전세계 거래소 중 가장 높은 거래실적을 기록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랭킹 정보 업체인 코인힐스에 따르면, 빗썸의 거래량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7100억원에 달한다.

비트코인 기준으로 세계 최대 거래소가 된 건 그때가 처음이지만 이더리움으로 따지면 일찌감치 1등 자리를 꿰찮다. 13일 오후 2시 현재 이더리움 1위 거래소가 빗썸이다. 전세계 이더리움 거래의 14.11%를 차지한다. 2위 역시 국내 거래소인 코인원이다.

거래랑 상위 10개 가상화폐 거래소자료: 코인힐스

거래랑 상위 10개 가상화폐 거래소자료: 코인힐스

이더리움 거래량이 워낙 많은 덕에 13일 오후 3시 현재 모든 가상화폐 거래량을 기준으로 따진 거래량 1위 거래소 역시 빗썸이다. 전 세계 가상화폐 거래의 15.29%를 담당한다. 코인원은 3위로 점유율이 8.93%다.

국내에 대형 채굴업체가 없는데도 투자자가 몰리는 탓에 국내 시장에는 가상화폐 물량이 부족하다. 미국 등에 현지 은행 계좌가 있거나 현지에 있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또는 해외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신용카드로 결제해 사는 방법 등으로 국내 거래소를 통하지 않고 해외 거래소에서 가상화폐를 살 수도 있다.

그러나 방법이 복잡하고 번거로워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국내 거래소를 이용한다.  그래서 보통 국제 가상화폐 시세보다 국내에서 10% 안팎 비싸게 거래된다. 이런 현상을 투자자들 사이에선 ‘김치 프리미엄’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시장에 가상화폐 대박 신화가 유통되면서 가상화폐 시장으로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폭증한 거래량에 거래소 서버는 먹통이 되기 일쑤였다. 한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매일 서버를 증설하는데도 서버가 버티질 못한다”고 말했다.

서버가 버티지 못할 정도로 투자가 몰리니 국내 가격이 폭등했다. 비트코인의 경우 국내 시세가 고점(484만원)을 찍었던 5월 25일 코인데스크 기준 시세는 2476달러였다. 원화로 환산하면 281만원. 국내 가격에 70%가 넘는 프리미엄이 붙은 셈이다. 이더리움은 6월 12일 48만4000원을 기록했는데 같은 날 해외에서는 342달러, 38만8000원에 거래됐다. 국내에서 약 25% 비싸게 거래됐다.

그러나 이달 초 빗썸 직원의 개인용컴퓨터가 해킹을 당하면서 고객 정보가 유출돼 일부 회원의 경우엔 금전적인 피해를 보는 일까지 벌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게다가 정점을 찍었던 가상화폐 가격에 거품에 빠지면서 무조건 열광하던 투자자들은 가상화폐 투자의 위험성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했다. ‘일단 사고보자’는 사람보다 국제 시세 및 향후 이벤트 등을 공부해 보고 투자하는 ‘스마트 투자자’가 늘어났다.

13일 오후 3시 현재 빗썸에서 비트코인은 284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같은 시각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1비트코인은 2404달러(273만원)에 거래 중이다. 프리미엄이 4%로 줄었다. 이더리움은 국내에서 25만8000원에 거래 중인데 국제 시세는 216달러(24만5000원)다. 프리미엄이 5%에 불과하다. ‘김치 프리미엄’ 거품이 빠지면서 국내 투자자들이 느끼는 가상화폐 가격 하락폭은 더 컸던 셈이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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