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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에바를 해고한 최저임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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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강욱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캘리포니아는 최저임금 인상을 주도하는 주다. 3년 전 8달러이던 최저임금은 이달부터 10.5달러로 30% 넘게 올랐다. 4년 뒤엔 15달러까지 오른다(직원 26명 이상은 3년 뒤 15달러).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달 이런 글을 올렸다. 본인의 허락을 받고 옮긴다.

‘아래 사진은 내 가게에서 근무하는 에바다. 나이는 50세, 영어는 전혀 못하고 둔해서 다른 직원보다 능률이 떨어진다. 아무리 단순직이라도 다른 직장을 구하기 힘든 조건이다. 하지만 오래 같이 근무해 익숙해진 데다 순박한 웃음이 좋아 계속 채용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해고한다. 하루 4시간 일하던 가르시아가 8시간 근무하면서 에바가 하던 일까지 모두 소화하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가르시아는 28세의 미혼모이고 시급은 에바보다 50% 많다. 가르시아 역시 (임금이 좀 더 높은) 다른 곳의 일거리를 비슷한 방식으로 빼앗긴 참이라 아이를 부양하기 위해 더 많은 근무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은 무인계산대를 찾고 있는 중이다. 급격한 임금 인상을 따라잡을 수 없으니 낮은 서비스, 낮은 가격 정책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적절한 무인계산대를 찾아낸다면 가르시아도 해고하게 될 것이다… (중략) 막상 정든 직원을 해고하게 되니 정말 만감이 교차한다.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최저임금을 올렸다면 이런 과격한 방법을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에바는 다시 취업할 수 있을까?’

그는 캘리포니아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제리 브라운 주지사의 선거 전략으로 해석했다. 라틴아메리카계 이민자가 많은 캘리포니아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표를 얻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였다. 그 결과 브라운은 28년 만에 공화당에서 주지사 자리를 빼앗아 올 수 있었지만 노약자·저성과자 위주로 일자리에서 밀려나면서 남미 이민자들의 소망인 ‘빈곤 탈출’은 더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최저임금 1만원 논란은 어떤가. 정치적인가 아닌가. 인상 속도와 폭이 공정·적정한지에 따라 갈릴 것이다. 따져보자. 우선 폭, 1만원이란 숫자부터 모호하다. 왜 1만원이어야 하는가. 지금보다 50%를 올리자면서 경제적 근거나 통계적 논리가 없다. 우리 최저임금은 결코 낮지 않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민소득 대비) 국가 중 8위다. 게다가 국민소득에서 노동이 가져가는 몫인 노동소득분배율도 64%로 OECD 평균을 훌쩍 넘는다. 인상 속도도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 정부 4년간 연평균 7% 넘게 올랐다. 3년 내 1만원이 되려면 해마다 15.7%씩 올려야 한다. 2%씩 성장하는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그런데도 노동계는 올해 당장 시행을 주장한다.

최저임금이야말로 선의의 역설이 작동한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정한 최소한의 임금이 왜 진짜 보호해야 할 대상부터 일자리에서 밀어내는가. 이런 역설 때문에 최저임금을 적극 옹호한 경제학자 앨런 크뤼거마저 최저임금은 빈곤 퇴치용으로 쓰기에는 ‘무딘 도구’라고 말했다. 차라리 돈을 직접 나눠주는 소득분배가 낫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는 2020년엔 정년 연장으로 잠시 미뤄졌던 베이비 부머들의 은퇴시장 진입이 본격화한다. 이들은 주로 자영업으로 내몰릴 것이다.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는 전년보다 13%가 늘어난 83만 명이었다. 하루 평균 2300명 꼴이다. 요식업계는 시급 1만원이 되면 27만 명이 실직할 것으로 추산했다. 주로 노인·미숙련·저생산자부터 일자리에서 떨어져나갈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에바처럼.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