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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평 병상의 행복 "집보다 병원이 좋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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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경북의 한 요양병원에서 조순복(여ㆍ58)씨가 물리 치료를 받고 있다. 조씨는 5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뒤 현재까지 이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 언어 소통이 가능하고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어 간병인을 쓰지 않는다. 조씨처럼 6개월 이상 입원하고 외래 진료를 받아도 무방한 '사회적 입원' 환자는 이 병원에만 10명 정도다.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달 29일 경북의 한 요양병원에서 조순복(여ㆍ58)씨가 물리 치료를 받고 있다. 조씨는 5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뒤 현재까지 이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 언어 소통이 가능하고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어 간병인을 쓰지 않는다. 조씨처럼 6개월 이상 입원하고 외래 진료를 받아도 무방한 '사회적 입원' 환자는 이 병원에만 10명 정도다. 프리랜서 공정식

 조순복(58·여·경남 진주시)씨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고 경북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부자연스럽긴 하지만 혼자 걷는데 지장이 없고, 언어 소통에도 큰 문제가 없다. 외래 진료를 받아도 무방한 이른바 '사회적 입원' 환자다. 물리·재활 치료를 받지만 굳이 입원까지 할 필요가 없는 환자다.

병원이 집인 사람들 <상> #확산하는 '사회적 입원' 현장 르포 #요양병원 입원 5년된 58세 뇌졸중 환자 #반짇고리·때수건·참기름 등 가재도구 갖춰 #"체조·노래 등 병원에서 모든 것 다 한다" #전남대 김정선 교수 노인 환자 15명 인터뷰 #평균 17개월 거주, 모두 병원 생활 만족 #70세 환자 "죽어도 병원서 죽겠다" #퇴원 후 갈 데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준급성환자들 위한 기거시설 생겨야"

 조씨의 집은 따로 없다. 이 병원 3층의 4인 병실이 사실상 집이다. 조씨의 공간은 4.3㎡(1.3평). 여기서 5년을 살았다. 의식주를 다 해결한다.

 침대 주변에는 살림도구가 가득하다. 탁자에는 고추장·랩·참기름·두유·커피·컵·종이컵 등이, 옷장 겸 서랍장에는 유산균제제·반짇고리·때수건·외출복 등이, 침대 링거 거치대에는 모자와 우산이 걸려 있다.

 이 병원에는 조씨 같은 장기입원자가 10명이다. 조씨는 그들을 “언니, 오빠”라고 부른다. 조씨는 “체조·노래·스트레칭 강습에 빠지지 않는다. 배드민턴을 가장 좋아한다”며 “이런 건 밖에서 하기 어려운데, 병원에서는 다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는 기초수급자라서 진료비가 한 푼도 안 든다.

경북의 한 요양병원 3층에 있는 사회적 입원 환자 조순복 씨의 병실 모습. 침대 옆 탁자에 랩·참기름·고추장이 보인다. 위 서랍장에는 반짇고리·외출복··때수건 등 생활용품이 들어 있다. [박정렬 기자]

경북의 한 요양병원 3층에 있는 사회적 입원 환자 조순복 씨의 병실 모습. 침대 옆 탁자에 랩·참기름·고추장이 보인다. 위 서랍장에는 반짇고리·외출복··때수건 등 생활용품이 들어 있다. [박정렬 기자]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조씨 처럼 '병원이 집'인 사회적 입원 환자가 1만7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양병원 환자는 의료 필요도에 따라 최고도-고도-중도 등 7개로 분류하는데 사회적 입원 환자는 가장 낮은 신체기능저하군에 속한다. 지난해 이 그룹 환자 5만8505명 중 입원 기간이 6개월이 넘은 사회적 입원 환자가 1만7000여명(28.5%)이었다. 전년보다 15% 늘었다. 1년 넘은 사람도 1만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병원 생활이 불편해서 어떡하든 집으로 가려고 할 것 같지만 실상은 반대다. 오히려 "집보다 병원이 좋다"고 말한다. 전남대 간호학과 김정선 교수가 전남지역 3개 요양병원에 6개월 이상 입원한 노인 환자 15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다. 대부분 고혈압·당뇨병·뇌졸중·척추질환 등 만성병 환자들이다. 집에서는 힘들지만 병원에서는 의식주가 다 해결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식사·빨래가 다 해결돼요. 하다못해 전기세까지 복잡한 게 다 해결되니까 좋죠. 입원하니까.”(80세 남자)
친구가 생기고 아파도 걱정이 없다. 83세 남자 환자는 “말벗이 있다는 게 제일 좋다”고 말한다. 82세 여성은 “조금만 아파도 (의료진이)'어디가 아프냐'고 묻고, 감기라도 걸리면 기침약을 지어준다. 어떤 자식이 그렇게 하겠어”라고 말한다. 외출·외박도 자유롭다. 한 할아버지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여럿이서 장애인콜택시나 일반 택시를 불러 나간다”고 전했다.

노인이나 저소득층이 집에서 외래 진료를 받거나 가사를 챙겨줄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아 사회적 입원이 갈수록 늘고 있다. [중앙포토]

노인이나 저소득층이 집에서 외래 진료를 받거나 가사를 챙겨줄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아 사회적 입원이 갈수록 늘고 있다. [중앙포토]

  '새벽 3시 일어나서 샤워, 기도, 신문·책 보기, 아침 먹고 물리치료, 점심 먹고 물리치료, 저녁 먹고 휴대폰으로 일본영화 보다 10시 취침.' 79세 할아버지가 밝힌 하루 일과다. 병원 생활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병원이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됐다.

  83세 할아버지는 “집보다 병원이 더 좋다. 편리하니까.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니 좋다”라고 병원 예찬론을 편다. 이들 대부분은 퇴원해도 갈 데가 없다. 자식집도 부담스럽다. 70세 할머니는 “죽어도 병원에서 죽어야지. 집이 없어 갈 수도 없어”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회적 입원의 가장 큰 이유는 퇴원해도 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김정선 교수는 "요양병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환자가 원하는 생활서비스를 다 해주니까 환자가 만족하게 된다"며 "퇴원해도 갈 데가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또 ▶요양병원의 환자 부담금 할인 ▶가족의 수발 환경 미비 ▶장기요양등급을 받기 어려워 요양원 입소가 어려운 점 ▶사회적 입원 환자를 수용할 만한 케어 인프라 미비 등도 원인으로 꼽힌다.

 김승희 의원은 "신체기능저하군에 속하는 환자 중 질병 치료가 아닌 생활·요양 등을 해결하려고 들어온 사람이 사회적 입원 환자인데, 이들로 인해 건강보험재정의 불필요한 지출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약 800억원의 건보재정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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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영준 한국보건행정학회장은 "요양병원이 집이 된 것은 비정상적 현상"이라며 "선진국처럼 급성환자용 병원과 집 사이에서 사회적 입원 환자를 보호할 준(準)급성환자용 기거시설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선 교수는 "요양시설(요양원)에 노인전문간호사를 배치해 의료처치를 강화하면 요양병원의 사회적 입원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승희 의원은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역할이 뒤섞여 있어서 이를 재정립해야 하는데 정부가 대응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정통령 보험급여과장은 "뇌졸중 등 급성질환의 급한 치료가 끝나고 회복기에 접어드는 환자를 위한 재활병원을 도입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별취재팀 ssshin@joongang.co.kr

사회적 입원이란?

혼자 거동을 할 수 있어 외래 진료를 받아도 되는데도 6개월 이상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말한다. 전남대 김정선 교수가 인터뷰한 15명의 환자는 평균 17개월 입원했다. 2013년 감사원이 처음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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