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내셔널]일제 양곡창고에서 문화 아이콘으로 거듭난 삼례문화예술촌

중앙일보

입력 2017.07.10 00:01

업데이트 2017.07.10 08:07

'낯설게 하기'.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하는 예술 기법이다.

지난 7일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 자리 잡은 '삼례문화예술촌'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7일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 자리 잡은 '삼례문화예술촌'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전북 완주군에는 이런 '낯설게 하기'와 잘 어울리는 공간이 있다. 삼례읍에 있는 '삼례문화예술촌'이다. 당초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양곡창고였다.

만경평야 쌀 수탈 아픈 역사 담긴 양곡창고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창고로 사용됐지만
쌀 소비 줄면서 본래 기능 잃고 방치

완주군, 2013년 창고 매입 후 리모델링
건물 원형 살려 미술관·책공방 등 조성
"쓰레기 널린 슬럼가가 문화 아이콘 각광"

일본인 지주 시라세이(白勢春三)가 1926년 설립한 이엽사(二葉社)농장 창고로 추정된다. 일제가 만경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수탈하고 이를 보관하기 위해 지은 곳으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삼례문화예술촌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비주얼미디어(VM)아트미술관.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만들어진 양곡창고 원형을 그대로 살리고 그 안에는 최첨단 예술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삼례문화예술촌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비주얼미디어(VM)아트미술관.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만들어진 양곡창고 원형을 그대로 살리고 그 안에는 최첨단 예술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이기전 VM아트미술관장이 1920년대 만들어진 양곡창고의 내부 나무 골격 등 원형을 살려 미술관을 설계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완주=김준희 기자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양곡창고로 쓰였지만, 쌀 소비가 줄고 저장 기술이 발달하면서 2010년 사용이 중단된 후 사실상 방치됐다. 이런 양곡창고를 완주군이 매입해 복합 문화 공간으로 꾸민 것이다.

완주군은 침체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농촌 주민에게 문화·예술을 누릴 기회를 주기 위해 사업을 고안했다. 국비와 군비 40억원이 들어간 삼례문화예술촌이 2013년 6월 문을 연 배경이다.

삼례문화예술촌에 있는 비주얼미디어(VM)아트미술관에 들어가면 허름한 외관과 달리 키네틱 아트와 미디어 아트 등 최첨단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삼례문화예술촌에 있는 비주얼미디어(VM)아트미술관에 들어가면 허름한 외관과 달리 키네틱 아트와 미디어 아트 등 최첨단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예술촌 안에는 비주얼미디어(VM)아트미술관과 디자인박물관, 책박물관, 책공방 북아트센터, 김상림목공소, 문화카페 오스 등 저마다 독특한 공간이 모여 있다. 각 관장들이 조합원으로 있는 '삼삼예예미미협동조합'이 완주군으로부터 위탁받아 예술촌을 운영한다.

여우비가 내린 6일 찾은 삼례문화예술촌은 언뜻 보면 영락없는 양곡 창고였다. 건물 전체는 녹슨 함석에 둘러싸였고 겉모습은 허름했다. 대형 철제 문에는 누르스름한 농협 마크가 박혀 있고 벽에는 큼지막하게 '공동판매 창고'라고 적혀 있었다.

삼례문화예술촌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비주얼미디어(VM)아트미술관.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만들어진 양곡창고 원형을 그대로 살리고 그 안에는 최첨단 예술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삼례문화예술촌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비주얼미디어(VM)아트미술관.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만들어진 양곡창고 원형을 그대로 살리고 그 안에는 최첨단 예술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이기전 VM아트미술관장이 1920년대 만들어진 양곡창고의 내부 나무 골격 등 원형을 살려 미술관을 설계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완주=김준희 기자
1970년대 농협이 지은 양곡창고를 리모델링해 만든 디자인박물관. 외벽 철제 문에 농협 마크가 선명하게 보인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디자인박물관 안에는 역대 'PIN UP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제품들이 전시 중이다. 'PIN UP 디자인 어워드'는 한국산업디자이너협회(KAID)가 개최하는 국제 디자인 공모전이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하지만 건물 안에 들어서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움직이는 예술'이라 불리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부터 TV 모니터 등을 이용한 미디어 아트(media art)까지 최첨단 예술 작품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음 달 30일까지 열리는 기획 전시 '진화 I'이다.

이기전(62·서양화가) VM아트미술관장은 "이곳의 가장 큰 특색은 100년 동안 양곡창고로 쓰던 곳을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뮤지엄으로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관 자체는 작품과 파티션(칸막이) 말고는 벽과 나무 골격 등 양곡창고의 원형을 살리는 쪽으로 설계됐다고 한다.

김상림목공소에서는 끌과 칼·대패·정 등 연장과 이 연장들로 만든 목가구가 전시 중이다. 목가구를 살 수도 있고 목공 일을 배울 수도 있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김상림목공소에서는 끌과 칼·대패·정 등 연장과 이 연장들로 만든 목가구가 전시 중이다. 목가구를 살 수도 있고 목공 일을 배울 수도 있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삼례문화예술촌에 있는 양곡창고 7개는 외벽 및 내부 일부와 지붕 트러스(지붕을 잇기 위해 만든 뼈대), 차양(햇볕·비를 막기 위해 처마 끝에 덧붙인 좁은 지붕) 등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창고 6개는 일제 강점기 때 세워진 것으로 4개는 목조, 2개는 조적조(組積造·돌과 벽돌로 짓는 방식)다. 나머지 1개는 1970년대 농협에서 지었다.

삼례토박이인 김영광(61) 문화해설사는 "어릴 때는 삼례역사 옆에 양곡창고가 그대로 있었다"며 "기차가 안 오면 창고 공터에서 제기차기와 자치기 등을 하고 놀았다"고 했다.

김상림목공소에 진열된 끌과 칼·대패·정 등 각종 연장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김상림목공소에 진열된 끌과 칼·대패·정 등 각종 연장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외벽에  '삼례농협창고'라고 적힌 건물은 디자인박물관이다. 역대 'PIN UP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제품들이 전시 중이다. 'PIN UP 디자인 어워드'는 한국산업디자이너협회(KAID)가 매년 주최하는 국제 디자인 공모전이다.

박물관 안에는 스푼부터 타이어·줄넘기·프린터까지 다양한 품목이 전시되고 있다. 대부분 일반 매장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이다. 베이비 러버(Baby Lover)라 부르는 아기보행기는 식탁과 그네, 보행기 등 3가지로 변신(?)했다.

책박물관 입구에 있는 '정직한 서점'. 국내 최초의 무인(無人)서점으로 소설·시집·잡지·그림책 등을 판매하는 헌책방이다. 책값은 요금함에 각자 양심껏 내면 된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책박물관 입구에 있는 '정직한 서점'. 국내 최초의 무인(無人)서점으로 소설·시집·잡지·그림책 등을 판매하는 헌책방이다. 책값은 요금함에 각자 양심껏 내면 된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김상림목공소는 한눈에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기 쉬웠다. 갖가지 크기와 모양의 나무 더미들이 처마 밑까지 가득 쌓여 있어서다.

목공소 안에 들어가니 이헌희(32)씨가 선반 위에서 나무 접시를 사포로 문지르고 있었다. "목공소 직원이자 김상림 대표의 제자"라고 밝힌 이씨는 "1년 전에 들어와 선생님한테서 짜맞춤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짜맞춤은 못질을 하지 않고 나무를 조립하는 기술이다.

책박물관 살성전시장. '한국 북디자인 100년'과 '철수와 영이 김태형 교과서 그림', '송광용 만화일기 40년'이 전시되고 있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책박물관 살성전시장. '한국 북디자인 100년'과 '철수와 영이 김태형 교과서 그림', '송광용 만화일기 40년'이 전시되고 있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목공소 한쪽에는 끌과 칼·대패·정 등 각종 연장과 목가구가 전시 중이다. 김상림목공소에서는 목가구를 살 수도 있고 목수 일을 배울 수도 있다. 직업 목수 과정(2년)부터 전문가반과 취미반 등 다양하다.

책 박물관 입구에는 '정직한 서점'이 있다. 무인(無人)서점으로 소설·시집·잡지·그림책 등을 판다.  책 가격은 책 뒷표지에 있고, 책값은 요금함에 각자 양심껏 낸다.

책박물관에서 상설 전시 중인 송광용(1934~2002)의 만화일기. 무명 만화가였던 작가가 만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중학교 1학년 때인 1952년 5월부터 1992년 2월까지 40년 동안 쓴 일기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책박물관에서 상설 전시 중인 송광용(1934~2002)의 만화일기. 무명 만화가였던 작가가 만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중학교 1학년 때인 1952년 5월부터 1992년 2월까지 40년 동안 쓴 일기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현재 책박물관에서는 '꼬마그림책거장'이라는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책박물관에서 그림책 창작교육을 받은 완주 지역 초등학생들이 각자 개성과 감성을 담아 완성한 그림책들을 선보이는 자리다.

상설전시장에는 '한국 북디자인 100년'과 '철수와 영이 김태형 교과서 그림', '송광용 만화일기 40년'이 전시되고 있다. 무명 만화가였던 송광용(1934~2002)의 만화일기는 작가가 만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중학교 1학년 때인 1952년 5월부터 1992년 2월까지 40년 동안 쓴 일기다.

책박물관 상설전시장에 가면 '한국 북디자인 100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책박물관 상설전시장에 가면 '한국 북디자인 100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책공방 북아트센터는 나만의 책을 만들고 책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팝업북·스크랩북·앨범북·가죽다이어리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문화카페 오스는 고즈넉한 처마 아래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커피 로스팅(볶기)과 추출 등 커피 만드는 법도 배울 수 있다.

관람객들이 책공방 북아트센터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이곳은 나만의 책을 만들고 책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관람객들이 책공방 북아트센터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이곳은 나만의 책을 만들고 책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다목적체험관은 삼례문화예술촌에 있는 유일한 '신식 건물'이다. 지역 주민들에게 무료로 공연·전시·세미나 등의 장소로 내어주는 곳이다.

책공방 북아트센터에 전시 중인 책 만드는 기계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책공방 북아트센터에 전시 중인 책 만드는 기계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완주군에 따르면 삼례문화예술촌의 누적 관람객은 지난달 기준 14만9000여 명이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 이곳을 벤치마킹하려는 지자체와 대학, 문화·예술 단체 등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문화카페 오스 내부 모습. 안쪽 벽과 천장 등이 양곡창고 나무 골격 그대로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문화카페 오스 내부 모습. 안쪽 벽과 천장 등이 양곡창고 나무 골격 그대로다. 완주=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2017~2018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는 등 전국적인 관광 명소로도 인정받고 있다. 김미경 완주군 문화예술과 주무관은 "삼례문화예술촌이 조성되기 전에는 창고가 관리가 안 돼 쓰레기가 쌓이고 악취도 심했다"며 "지금은 예술촌이 씨앗이 돼 주변 거리가 새로 정비되고 전국에서 사람이 몰리는 '문화의 아이콘'이 됐다"고 말했다.

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삼례문화예술촌 관람료 안내판. 완주=김준희 기자

삼례문화예술촌 관람료 안내판. 완주=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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