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2) 자기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중앙일보

입력 2017.07.09 04:00

업데이트 2017.10.23 18:12

꼰대 소리에 꽤 당혹스런 베이비부머 세대의 한풀이 겸 삶의 지혜와 감상을 붓가는 대로 쓰는 에세이 형식의 연재물이다. 배우자, 자식, 친우와의 관계에 관한 조언과 사회를 향한 고언을 꼰대스럽지 않게 스케이트보드 타듯 풀어간다. <편집자>

재일교포 출신 前 프로야구선수 장훈 [중앙포토]

재일교포 출신 前 프로야구선수 장훈 [중앙포토]

장훈이란, 재일교포 출신의 프로야구선수가 있다. 젊은 층에겐 아마 가물가물한 이름이겠지만 7차례 타격왕에 오르는 등 일본 프로야구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대선수다. 기량도 기량이지만 민족차별이 심한 일본에서 동료 선수들이 “덴노 하리모토”라 불렀을 정도로 카리스마가 대단했단다. 여기서 하리모토는 장(張)의 일본어 발음이라 그러려니 하겠지만 눈길을 끄는 것은 ‘덴노’다. 천황(天皇)을 뜻한다니 말이다.

큰 성취를 이뤘거나 부나 명예를 쌓지 못했지만
마음 속 박힌 심지가 버팀목이 된 지난 30년

그는 1981년 은퇴를 했는데 행사가 제법 성대했던 모양이다. 그 자리에서 은퇴 소감을 묻는 일본 기자들의 질문에 “스스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고 한 장훈 선수의 대답이 지금도 떠오른다. 온갖 차별을 이기고 우뚝 서기까지의 역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스스로 자랑스럽고 대견하다고 여겨져 그런 자부심 넘치는 답을 했지 싶어서였다.

2010년 10월 정년퇴직을 할 때 내 심정이 꼭 그랬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아, 물론 내가 큰 성취를 이뤘거나 남들이 인정할 만한 부나 명예를 쌓아서는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띠 동갑 후배를 부장으로 ‘모시기도’ 했으니 더 말할 게 없겠다.

눈치 없음과 밥값 하자는 마음이 무기  


학벌? 딱히 빠질 것도 없지만 내세울 정도는 아니고…. 지연이나 혈연? 그야말로 서 발 막대를 휘둘러도 걸리는 게 하나 없는 처지. 그렇다고 윗사람 비위를 잘 맞췄는가 하면 어느 해 인사철이던가 후배에게서 “선배, 제발 ‘운동’ 좀 하세요”란 충고를 들을 정도였으니…. 오로지 눈치 없음과 ‘밥값은 하자’란 마음이 무기였다. 그랬지만 하고 싶은 일을 했고, 주변의 손가락질 받지 않을 정도는 되었고, 가정도 나름 원만했으니 사회생활 30년이 그리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나도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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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건 혼자만의 생각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에서 나오듯 어디 마땅한 대나무 숲을 찾지 못하는 이상 내놓고 할 일은 절대, 네버, 결코 없다. 혹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내나 아이들은 ‘근자감’이라 놀릴 게 뻔하다. 나를 아는 퇴직 선후배들은, 옛날식으로 “네 X 굵다”고 비웃을 게다.

하지만 어떤가. 잘 나가는 이를 부러워하거나, 안면 바꾼 이에 노여워하느니 이런 자부심을 갖는 편이 낫다. 마음 속 깊은 곳에 박아둔 ‘심지’가 삶의 버팀목이 될 수 있을 터이니.

김성희 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jaejae99@hanmail.net

제작=현예슬

제작=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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