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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 포기 않는다는 토대서 정책 세워야 협상 길 열릴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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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호 15면

한·독포럼서 머리 맞댄 정치인·전문가들

지난 5일 독일 풀다에서 열린 제16회 한·독포럼에서 기조세션 발제자들이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황식 전 국무총리, 테오 좀머 디차이트지 대기자, 이상민 의원, 베르벨 횐 의원, 이수혁 의원, 하르트무트 코시크 의원,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김영진 한·독포럼 공동대표, 하이케 베렌스 의원. 한경환 기자

지난 5일 독일 풀다에서 열린 제16회 한·독포럼에서 기조세션 발제자들이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황식 전 국무총리, 테오 좀머 디차이트지 대기자, 이상민 의원, 베르벨 횐 의원, 이수혁 의원, 하르트무트 코시크 의원,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김영진 한·독포럼 공동대표, 하이케 베렌스 의원. 한경환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베를린에서 정상회담을 한 지난 5일 독일 중부 헤센주 풀다에서는 민간 협의 채널인 한·독포럼이 열렸다. 제16회 풀다 포럼에 참가한 70명에 가까운 양국 전문가들은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독일의 역할, 양국 중소·중견기업 진흥, 인문사회과학 진흥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수혁, 한국 정부 정책 기조 소개 #“북·미, 북·미·중 회담하면” 질문에 #“코리아 패싱은 시대에 역행” 답변 #쾰너 “제재 통한 협상이 적합할 것” #코시크 “독일은 북·미 회담 좋은 장소” #김황식 “저출산 독일의 경험 새겨야”

북한이 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가운데 열린 포럼에서는 특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가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독일 대사를 지냈던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기조를 소개했다. 이 의원은 “북핵 문제 해결은 새 정부의 가장 큰 과제”라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설을 토대로 정책을 세워야 제대로 된 답을 찾고 협상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전 주한 독일대사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미하엘 가이어 전 대사는 “이런 가설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생각과는 반대되는 것 같다”며 “미국의 태도와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노르베르트 바스 전 주한 독일대사는 “북·미 양자 회담 혹은 북·미·중 3자회담을 할 경우 한국 정부는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이 의원은 “북한은 생존 보장을 핵심으로 생각한다”며 “핵 개발은 그런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고 보는 게 안전한 해석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에 대한 적절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협상에서 한국이 배제되는 코리아 패싱(passing)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어서 미국과 중국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일은 있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다만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북·미가 별도로 접촉하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독포럼 독일 측 대표인 하르트무트 코시크 독일 연방 하원의원(기사당)은 “독일은 북·미 양자회담을 하기에 좋은 장소였다”며 “앞으로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트릭 쾰너 GIGA 아시아연구소장은 북한의 움직임에 대한 이색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쾰너는 “북한은 도약을 통해 발전한다는 ‘아우디 전략’, 대외적으로 약한 점을 감추고 내부에 강함을 보여 주는 ‘고슴도치 전략’, 쇼윈도를 통해 많은 것을 보여 줌으로써 협상 카드의 가치를 높이는 전략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대응책으로는 군사적 방법과 아예 무시해 버리는 방법이 있지만 결국 제재를 통해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이끄는 전략이 현재로서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재는 최종 목적이 될 수는 없다”며 “고립시키기보다는 북한의 민간 사회를 도우며 협력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페트라 지그문트 독일 외무부 한국담당 부장은 “이런 분위기 조성을 위해 독일과 유럽연합(EU)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며 “새로운 대화 마련을 위해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독일 풀다에서 개최된 한독포럼. 양국 대표단은 냉전시절 동서독 접경지역이 미군 부대인 풀다 인근 포인트 알파를 방문했다. 한경환 기자

독일 풀다에서 개최된 한독포럼. 양국 대표단은 냉전시절 동서독 접경지역이 미군 부대인 풀다 인근 포인트 알파를 방문했다. 한경환 기자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패널들과 의견을 주고받았다. 김 전 총리는 “최근 한국에서는 권력의 독점과 집중을 막기 위한 개헌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며 “독일의 협치 정신이 한국 개헌 과정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도리스 헤르트람프 전 북한 주재 독일대사는 한국에 독일과 같은 연정 결성 움직임이 있는지 물었다. 김 전 총리는 “한국은 대통령제라서 연정을 구성하기는 사실상 적절치 않다”며 “그렇지만 정당들 간에 대화와 타협으로 가는 협치 논의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정치 문화가 약한 한국에서 협치나 연정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정치권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국민적 저항에 부닥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 전 총리는 “한국의 저출산·고령화·기후변화·사회통합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앞서간 독일의 경험을 잘 새겨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베르벨 횐(녹색당) 독일 연방 하원의원은 “탈원전을 위한 에너지혁명(에네르기 벤데)을 추진 중인 독일은 신재생에너지로 30%를 충당하고 있다”며 기후변화에 대한 한국의 대응을 물었다. 김 전 총리는 “문재인 정부도 최근 탈원전을 선언했다”며 “독일에서의 성공 여부가 우리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교육 문제에 대해 하이케 베렌스(사민당) 연방 하원의원은 “독일은 학교와 기업을 연결하는 이른바 듀얼 교육시스템으로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체계적으로 연결시켜 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테오 좀머 디 차이트지 대기자는 “우리는 통일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다. 역사의 선물을 받은 것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방어적 수단이라고 본다. 남한이 핵 위협을 그렇게 두려워할 것은 없다”고 충고했다.

독일이 세계적으로 앞서가고 있는 중소기업 진흥 문제에 대해서도 토론이 이어졌다. 중소기업청장을 지낸 한정화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한국은 대기업 주도의 경제성장 결과 누적된 불균형, 불공정한 기업 생태계 문제가 심각해졌다”며 “이에 따른 임금 격차 확대, 청년들의 중소기업 기피 현상,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 심화는 사회 양극화와 갈등 증가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독일의 사회적시장경제 모델을 벤치마킹하며 이런 문제를 풀려고 했으나 여의치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퍼지기 전부터 ‘인더스트리 4.0’ 전략을 추진해 왔다”며 “한국은 제조업 강국인 독일의 이 전략을 심도 있게 학습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노르베르트 클롭펜부르크 독일재건은행(KfW) 이사는 “독일의 핵심 심장부가 중소기업이며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크리스토프 홀렌더스 주 드레스덴 한국 명예대사는 “대기업이 선도해 하이테크 산업을 유치하는 이른바 ‘등대정책’이 옛 동독 드레스덴 같은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행해졌다”며 “우수 전문인력 배출을 위한 교육 투자를 확대하고 이들이 중소기업의 진흥에 적극 가담하는 모델이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조언했다.

베르너 파샤 뒤스부르크에센대학 동아시아경제학부 교수가 “한국에서는 창업 실패 때 결혼도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고 들었다”고 하자 한 교수는 “장인·장모 설득이 더 큰 문제다. 실패해도 재도전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스타트업 진흥을 위해서는 자금지원이 융자가 아닌 투자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실패한 투자에 대한 책임을 합리적으로 묻는 감사평가제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학 교육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염 총장은 “획일적인 암기 중심의 교육이 21세기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육’을 키우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염 총장은 “잘 훈련된 양떼보다는 개척하는 지성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라며 “21세기 대학은 사회혁신가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독포럼 공동대표인 김영진 한·독협회 회장은 “포럼에서 합의된 정책제안서가 양국 정부와 양국 정상에게 전달돼 건설적으로 반영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풀다(독일 헤센주)=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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