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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기자의 ‘라이징 스타트업’(8) 미트박스] 국내 첫 B2B 축산물 유통 플랫폼 구축

중앙일보

입력

육류 도매시세 실시간 제공 등 참신한 서비스... 축산물 담보대출 지표로도 쓰여

6월 13일 경기도 판교의 미트박스 본사에서 만난 서영직(왼쪽)· 김기봉 공동대표가 미트박스 사업의 장점을 설명했다. [사진 · 김춘식 기자]

6월 13일 경기도 판교의 미트박스 본사에서 만난 서영직(왼쪽)· 김기봉 공동대표가 미트박스 사업의 장점을 설명했다. [사진 · 김춘식 기자]

2013년 가을이었다. 경북대학교 학군사관(ROTC) 출신 동기 두 명이 만났다. 이 중 한 친구는 세차 관련 스타트 업을 이미 창업했다. 창업한 친구의 서비스도 이용하고 오랜만에 회포나 풀기 위해서 만든 자리였다. 당시 창업자는 차량 관련 플랫폼을 만들려고 8명의 직원과 함께 여러 가지 시도를 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고전하는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가져간 것은 정육점에서나 볼 수 있는 삼겹살 1피스(돼지의 가슴 갈비뼈 부위로 보통 6~7kg 정도)였다. 직원 8명과 고기를 나눠 집에 가서 먹었는데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삼겹살을 선물한 친구에게 “비싼 고기여서 그런지 너무 맛있게 먹었다”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친구는 “원가로 산 건데 2만원 밖에 안 한다”고 답했다. 보통 그런 무게의 삼겹살을 사려면 10만원 넘게 줘야만 살 수 있는데, 원가가 2만원이라는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세차 관련 창업을 했던 이는 축산물 유통을 단순화하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축산물 유통 전문가와 IT 전문가의 만남

삼겹살을 선물한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우리 축산물 중계 플랫폼 사업을 해보자”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3년 동안 준비했고, 지난해 3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식당과 정육점 등 B2B(기업 간 거래) 사업자를 위한 축산물 중개 플랫폼 미트박스를 공동 창업했다. 창업을 제안했던 이는 경북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한 후 웹젠에서 전략기획실장을 지낸 서영직(46) 공동대표였다. 서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는 축산업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김기봉(46) 공동대표다. 김 대표는 경북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한 후 LG아워홈 축산 유통팀과 구매팀에서 축산 MD(머천다이저)로 10여년을 일한 전문가였다. 김 대표는 “단체급식 사업을 하는 아워홈에서 축산 MD로 일했다”면서 “전 세계 축산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축산물의 유통 시스템을 자세히 알고 있었고, IT 기술을 이용하면 축산물 유통 시장의 불합리한 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서 대표는 “김 대표는 축산물 유통 현장의 전문가였고, 나는 IT 업계의 기획자였다”면서 “우리가 손을 잡으면 뭔가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창업을 제안한 이유를 말했다.

미트박스는 쉽게 말해 축산물 판매 업체가 제품과 가격을 올리고, 정육점이나 식당 같은 곳에서 마음에 드는 고기와 가격을 선택할 수 있는 거래 플랫폼이다. 소비자가 구매를 결정하면 미트박스가 배송해주는 시스템이다. 언뜻 보기에는 고기를 살 수 있는 e커머스 플랫폼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김 대표는 “미트박스는 정부도 못한 것을 해낸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그가 이렇게 자랑을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육류 도매시세 실시간 제공’이다. 지금까지 어떤 기관도 못한 서비스다. 예컨대 삼겹살 판매 업체가 수입한 고기는 몇 단계 유통 과정을 거친 후 정육점이나 식당에 납품된다. 처음 수입 가격과 정육점이나 식당에 납품되는 육류의 가격 차이는 크다. 심지어 가격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 대부분 모른다. 김 대표는 “축산물 수입 원가는 수입업자와 일부 도매업자 사이에서만 비밀리에 거래되는 정보였다”고 말한다. 유통 과정에서 도매업자는 20%가 넘는 마진을 붙인다고 알려졌다. 김 대표는 “한국의 육류 시장 규모는 약 40조원 정도인데, 이 중 중간 마진 시장이 7~8조원 정도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트박스는 육류 도매시세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서 대표는 “시세는 판매업자들이 올려놓은 것이고, 실시간으로 반영된다”면서 “데이터가 많이 쌓였고, 이제는 이 시세가 중간 유통상의 판매 지표와 제2금융권이 축산물을 담보로 대출해줄 때 지표로 사용될 정도로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판매업자가 올려놓은 단가 중 최저가 상품은 상위로 노출이 된다. 상위에 노출되면 판매량도 증가한다. 자발적인 가격 경쟁도 가능해지고, 도매 시세보다 판매가가 높아질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시스템으로 소비자들은 구매 비용을 아낄 수 있다. 김 대표는 “미트박스를 통해 축산물을 사면 약 15~30%의 유통비용을 아낄 수 있다”면서 “이 비용이면 30평대 식당에서 한 명의 인건비를 아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트박스의 또 다른 장점은 축산물 거래 시장에 퍼져있던 외상 거래를 없앤 것이다. 김 대표는 “흔히 ‘미수’라고 하는 문화를 우리가 없앴다”고 말했다. 중간 유통상은 식당과 처음 거래할 때 외상으로 육류를 납품한다. 특정 유통 상인과 계속 거래를 할 수밖에 없게 하는 방법이다. 김 대표는 “미수 문화는 가격을 비싸게 해도 끊을 수가 없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미트박스는 외상 거래를 없애기 위해 ‘선충전 시스템’을 도입했다. 회원 가입 후 돈을 충전시켜야만 축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세금 계산서도 투명해지는 효과가 생겼다.

낙전 효과도 어마어마하다. 매월 평균 잔액이 매월 13억원이나 된다고 한다. 여러 금융회사에서 미트박스와 손을 잡고 잔액을 운용해보자고 제안할 정도다. 김 대표는 “아직까지 정해진 바는 하나도 없다. 잔액을 어떻게 운용할지는 오랫동안 고민을 해야 할 문제”라고 털어놨다.

사업 초기 마장동 상인으로부터 위협 받기도

이 때문에 축산물 유통업자 사이에서 미트박스는 ‘눈엣가시’였다. 창업 초기에는 사무실로 협박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시세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 마장동에 나간 미트박스 직원은 온갖 욕을 들어야만 했던 때도 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김 대표는 “미트박스 로고가 찍힌 차를 타고 마장동에 가면 이제 손가락을 치켜주는 분들도 계신다”며 웃었다.

미트박스는 고속성장하고 있다. 매월 거래액이 80억원, 1년이면 1000억원을 넘는다. 서 대표는 “2019년 거래액은 7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트박스의 고객은 전국 65만개 식당과 3만여개 정육점이다. 이 중 현재 3만여개 식당·정육점이 미트박스의 회원으로 가입했다. 재구매율은 80% 이상이다. 현재 미트박스에서 1000여 종류의 고기를 구입할 수 있다. 연말까지 2000여 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입점업체는 수천억원 규모의 대형 업체부터 수십억원 규모의 작은 업체까지 100여 곳이나 된다. 김 대표는 “아직 손익분기점은 넘지 못했지만, 올해 말까지 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트박스는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이자 수익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까지 115억원의 투자를 받은 이유다. 미트박스는 현재 50여 명의 임직원이 일하는 건실한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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