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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 밀리터리] 빨라지는 ‘북핵 시계’ … 연말까지가 데드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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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반도를 위협하는 ‘북핵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북한은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기습적으로 시험발사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ICBM을 쏜 뒤 “앞으로 심심치 않게 크고 작은 ‘선물 보따리’들을 (미국에) 자주 보내 주자”고 말했다. 이 의지와 추세대로라면 북한이 조만간 6차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핵무장 과정과 그 위험성을 짚어본다.

북 올해안 1단계 핵무장 시도 예상 #3년 안에 최대 100발 핵무기 생산 #북 대량 핵무장 땐 전략균형 와해 #평화협정과 미군 철수가 목표

북한은 앞으로 3단계에 걸쳐 핵무장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1단계는 6차 핵실험과 무관하게 올해 안에 이뤄질 전망이다. 북한이 이미 생산해 보유 중인 플루토늄(Pu-239) 50여㎏으로 10발 이내의 소형화된 핵탄두를 만드는 것이다.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한 플루토늄 핵폭탄 팻맨(Fat Man)은 길이 3.3m에 무게가 4.6t이었다. 하지만 현대전에서는 이런 크기와 무게의 핵폭탄을 사용할 수가 없다. 따라서 북한은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도록 750㎏ 이내의 소형화된 핵탄두가 필요하다. 그래서 플루토늄탄을 지하갱도에서 세 차례나 폭발시켰다. 북한이 지난해 9월 실시한 플루토늄탄 핵실험은 폭발 규모가 10kt(1kt=TNT 1000t 폭발력)으로 성공적이었다. 북한은 이것만으로도 소형화된 플루토늄 핵탄두를 제작할 수 있지만 올해 6차 핵실험으로 좀 더 정교화를 시도할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올봄 미국과 중국의 압력으로 북한의 핵실험이 어렵게 됐고 핵무장도 지연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 북한은 더는 지체하지 않고 그동안의 핵실험을 통해 축적한 핵 데이터로 연말까지 플루토늄 핵탄두를 제작할 전망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핵무장을 차단할 수 있는 시기는 올해 말이 한계점이다.

북한의 2단계 핵무장은 수천 대의 원심분리기를 가동해 추출한 400㎏가량의 고농축 우라늄(U-235)으로 수십 발의 핵탄두를 생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우라늄 핵탄두를 만들기 위해선 6차 핵실험이 필수적이다.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으로 만든 핵탄을 한 번만 실험한 것으로 정보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이걸로는 핵탄두 소형화에 필요한 충분한 핵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다. 북한이 이번 ICBM 시험발사에 이어 6차 핵실험까지 강행하면 내년부터 본격적인 우라늄탄 생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의 조엘 위트(Joel S. Wit)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대량의 고농축 우라늄으로 불과 3년 뒤인 2020년까지 20∼100발(중간값 50발)의 핵탄두를 생산할 것으로 추정했다(‘North Korea’s Nuclear Future’). 북한은 이미 준비를 마친 6차 핵실험에선 우라늄탄 외에도 플루토늄탄과 증폭핵분열탄 등 다양한 핵탄을 터뜨릴 전망이다. 북한이 말하는 핵무기 ‘다종화’의 달성이다. 증폭핵분열탄은 우라늄탄 또는 플루토늄탄에 3중수소를 첨가해 폭발력을 높인 것으로 수소폭탄의 전 단계다. 북한은 2016년 1월 4차 핵실험에서 증폭핵분열탄을 터뜨렸지만 정상적인 폭발력(50kt 이상)의 10분의 1 수준인 6kt에 불과했다.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북한은 이번에 실시할 6차 핵실험에선 증폭핵분열탄을 반드시 끼워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에 보낸다는 ‘큰 보따리’가 증폭핵분열탄 핵실험으로 보인다.

북한의 3단계 핵무장은 뉴욕이 위치한 미국 동부에 닿는 ICBM을 개발한 뒤 증폭핵분열탄을 장착하는 것이다. 뉴욕에 증폭핵분열탄이 터지면 일시에 30만 명이 사망하고 1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북한이 지난 4일 발사한 ICBM은 사거리가 알래스카와 하와이에 닿는 초기 단계(사거리 6700∼8000㎞) ICBM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 동부까지 날아가는 사거리 1만3000㎞급의 ICBM을 만들려면 적어도 1∼2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전망이다. 한민구 국방장관도 북한이 발사한 ICBM의 속도가 정상 속도 마하 20에 못 미친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이 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의 성공 여부도 미지수라는 것이다. ICBM의 탄두가 마하 20 이상의 속도로 대기권에 재진입할 때 섭씨 7000∼8000도의 고온이 발생해 타버릴 수 있다. 또 대기권 진입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다.

북한이 1단계 핵무장을 이루면 6차 핵실험과 ICBM 개발을 중단시킬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북한이 1단계로 올해 안에 10발 이내의 플루토늄탄을 제작하면 우선 노동미사일에 장착할 전망이다. 노동미사일은 북한 탄도미사일 가운데 실전력이 검증됐고 탄두도 커서 소형화에 유리하다. 또한 이 미사일은 사거리가 1300㎞여서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위협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핵을 장착한 노동미사일을 실전배치하면 북한에 대한 군사제재가 곤란해진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ICBM 발사와 6차 핵실험 강행으로 이른바 ‘레드라인(redline)’을 넘으면 군사제재를 하겠다고 시사해 왔다. 하지만 북한은 핵미사일로 미국의 대북 군사제재에 대응할 수 있다. 가령 미국이 토마호크 미사일과 스텔스 전투기로 북한을 제재하면 북한은 핵 장착 노동미사일로 평택 미군기지나 일본 요코스카의 미 7함대를 타격하겠다고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2단계 대규모 핵무장과 3단계 ICBM 핵무장을 막을 수 없게 된다.

북한이 우라늄탄으로 50발 수준의 핵무기를 확보하면 한반도의 전략적인 균형이 완전히 와해된다. 설사 한·미가 합의해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반입하더라도 그 의미가 희석된다. 더구나 김 위원장이 다량의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자신감에 재래식 도발을 더 쉽게 할 수 있고, 핵무기 사용 유혹도 받게 될 것이다. 심지어 “북한이 한국의 일부 지역을 기습적으로 점령해도 한·미 연합군의 재래식 전력으로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에 반격하기 어렵다”는 게 국민대 박휘락 정치대학원장의 지적이다. 또한 핵무장한 북한의 재래식 도발이 반복되면 국내 정치권과 국민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나아가 핵무기를 내세워 주한 및 주일 미군 철수와 연합사 해체를 강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핵미사일로 주일 미군기지를 타격한다고 나올 경우 태평양전쟁때 원자탄을 맞은 경험이 있는 일본 국민들이 크게 놀랄 것이다. 미국도 평택 미군기지가 북한의 핵공격을 받는다면 매우 부담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3단계 핵무장인 ICBM을 완성해 핵탄두를 장착하면 곧바로 미국에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할 것이다. 한국을 배제한 상태에서 미국과 북한의 평화협정은 우리의 안보를 크게 위협할 수 있다. 정영태 동양대 군사연구소장은 “북한은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연합사와 유엔사를 해체하고 이어서 주한미군도 철수시키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결국 북한이 ICBM으로 한·미 동맹의 근간을 흔들면 한국의 안보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재앙을 맞게 된다.

김민석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군사안보연구소장 kim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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