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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BM 쏜 김정은 “미국에 선물보따리 자주 보낼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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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군 병사가 5일 신의주 압록강가에서 취재진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북한군 병사가 5일 신의주 압록강가에서 취재진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로 인해 출구를 찾기는커녕 입구 근처에 가기도 어려워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단계적·포괄적 북핵 접근법 이야기다.

“우리 선택, 미국놈들 불쾌했을 것 #핵 협상탁 안 올려” 추가도발 의지도 #문 대통령 제시한 대화 입구·출구론 #관심이 없다는 것 분명히 못 박아 #‘북에 강한 압박’ 미국 명분은 강화

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미국으로 가는 기내 간담회에서 “최소한 북한이 추가적 핵·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고 핵 동결 정도는 약속해 줘야 핵 폐기를 위한 대화를 할 수 있다”며 핵 동결 약속을 대화의 입구, 완전한 핵 폐기를 대화의 출구로 표현했다. 하지만 5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4일 화성-14 발사 직후 이를 ‘선물보따리’에 비유하며 “(미국놈들에게) 심심치 않게 크고 작은 선물보따리들을 자주 보내 주자”고 말했다. 추가 도발 의지의 표명이다. 또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케트를 협상탁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입구나 출구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주도권’은 한국이 갖는다는 점을 확인받았으나, 정작 이를 쓸 수 없는 모순된 상황에 맞닥뜨렸다. 출구도 없는 입구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가 북한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아 온 것인데, 이를 써보기도 전에 북한이 우리 카드를 다 제거해 버린 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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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대놓고 무시하려는 북한의 의도는 김정은이 쓴 표현에서도 드러난다. 김정은은 미사일 발사 직후 “오늘 우리의 ‘전략적 선택’을 눈여겨보았을 미국놈들이 매우 불쾌해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뒤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북한은 도발을 자제하고,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는 ‘전략적 선택’을 하라”고 촉구한 데 대한 응답 격이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주도하겠다는 구상을 미국으로부터 존중받은 점은 커다란 외교적 성공이었으나, 북한의 도발로 인해 이를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으면 자칫 국내에서 역풍을 맞을 수도 있게 됐다”며 “한국은 대화의 문을 열어놓으려는 노력을 어떻게 계속할지 고민스러운 반면 북한에 대한 강한 압박과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한 미국의 입장은 명분과 힘을 더 얻는 상황이 됐다”고 분석했다.

정부도 대화와 제재를 병행하는 ‘투 트랙 접근’에 변화가 없다면서도, 우선 미국과 협력해 단호한 대응 의지를 보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청와대는 5일 오전 실시된 한·미 연합 무력시위에 대해 “성명만으로 대응할 상황이 아니며 우리의 확고한 미사일 연합대응태세를 북한에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순진 합참의장과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군 사령관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사격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한·미 동맹 통수권자들의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우리는 평시와 전시의 선택을 바꿀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군사 옵션이 다시 거론되는 미국의 기류는 더욱 강경해질 전망이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29일 브리핑에서 “(북핵 문제에 있어) 중국과 함께 얼마나 더 노력할 것인지가 관건”이라며 “군사 옵션은 제외하고”라고 단서를 달았다. 군사 옵션은 중국과 상의 없이 독자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북한의 위협에 대한 한·미·중 정상의 인식은 당장 7~8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드러날 전망이다. 전성훈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장애물이 있으면 운전석에 앉아도 움직일 수 없다”며 “어떤 대화나 협상으로도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인식하고 중장기적 안목으로 치밀하게 북한을 다뤄 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지혜·박유미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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