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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실버문화는 미래를 위한 보험 … 어르신 영화관 운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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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울 낙원상가 ‘실버영화관’ 김은주 대표

‘십계’ 포스터를 들어보이고 있는 김은주 실버영화관 대표. [김춘식 기자]

‘십계’ 포스터를 들어보이고 있는 김은주 실버영화관 대표. [김춘식 기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노틀담의 꼽추’(1956), ‘황야의 역마차’(1951), 한국 영화 ‘박서방’(1960)…. 젊은 세대에겐 제목도, 포스터 디자인도 낯설지만 중장년 세대에겐 추억이 깃든 이 영화들은 지난 5월 서울 낙원상가 4층 ‘실버영화관’에서 상영된 목록이다. 55세 이상 관람료는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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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이곳을 오픈한 김은주(44) 대표는 이곳이 ‘어르신들의, 어르신들에 의한, 어르신들을 위한’ 세계 최초 실버영화관이라는 자부심이 크다. “고개 숙이라”는 말싸움 없이 보시라고 다른 극장보다 스크린 자막 위치가 높다. 하루 800~1500명씩 몰려드는 관객도 어르신, 극장 직원 28명 중 24명도 70대 어르신들이다.

“속도는 좀 느려도 모두가 느긋한 ‘어르신 맞춤’ 공간이죠. 그만큼 정도 넘쳐요. 매표소 창으로 떡·과일 등을 밀어 넣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수익금보다 간식이 더 쌓입니다.”

영화 마케팅 일을 하던 김 대표는 1998년 회사를 그만두고, 이듬해 지금은 없어진 서대문 화양극장을 임대해 시사회 전용관으로 운영했다. 이후 ‘재개봉관’ 아이디어로 대박을 냈다. ‘더티 댄싱’ ‘영웅본색’ 등 80~90년대 영화들을 재개봉하니 아줌마·아저씨 부대가 구름같이 몰렸다. 화양극장의 재개봉관 변신 성공을 본 낙원상가 건물주가 10년간 임대료를 올리지 않겠다며 극장(구 허리우드)운영을 제안했다. 어르신이 많이 모이는 낙원상가 주변 상권을 고려한 김 대표는 ‘실버영화관’을 생각해냈다.

“필름 사고, 자막 작업 새로 하고…여전히 적자지만 ‘김 대표, 망하는 건 아니지?’ 불안스레 걱정해주시는 어르신들 때문에 매번 힘을 냅니다.”

김 대표는 이왕 벌인 판, 낙원상가 3·4층을 어르신을 위한 ‘논스톱 핫 플레이스’로 만들기 위해 다른 사회적 기업들도 끌어 들였다. 주말에 열리는 ‘낭만극장’에선 송해, 전원주 등이 출연해 그 옛날의 공연을 펼친다. 이런 ‘타고난 오지랖’ 덕분에 어르신들의 박수와 함께 지난 6월 국무총리 표창도 받았다. 김 대표는 “7월 중순부터는 ‘사이다텍’도 열 계획”이라고 한다. 기존의 콜라텍이 가진 음성적인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신나는 공연을 보고 마지막 20분간 관객이 한바탕 ‘떼춤’을 추는 프로그램이다.

“생의 가장 젊은 날이 바로 오늘이잖아요. 늙는 게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내가 기억하는 인생의 마지막 날이 우울한 건 싫거든요. 지금의 즐거운 ‘실버 문화’ 형성은 미래의 우리를 위한 일종의 보험이에요. 정작 우리가 늙었을 때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거든요.”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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