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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 영화 '동주' 찍은 600년 된 북방식 한옥-초가 옹기종기...고성 왕곡마을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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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고성군 죽왕면 왕곡마을 풍경. [사진 고성군]

하늘에서 본 고성군 죽왕면 왕곡마을 풍경. [사진 고성군]

“축복받은 땅이지….1950년 발발한 6·25전쟁 땐 폭격을 피했고, 1996년 고성산불이 크게 났을 땐 마을 코앞에서 불이 꺼져 전통가옥은 모두 무사했으니….”

고려 말 두문동(杜門洞) 72현 중 한 명인 함부열 후손 정착한 왕곡마을 #현재 37가구 60여 명의 주민 조상의 대를 이어 전통가옥 지켜며 거주 #1950년 6·25전쟁, 96년 고성산불에도 전통가옥 훼손 없이 원형 보존 #해안에서 1.5㎞ 떨어진 데다 전통가옥 7채 숙박시설로 운영 인기 #영화 ‘동주’ 촬영지로 동서고속도로 개통으로 피서객 관심 높아져

지난 3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왕곡마을.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대형 안내도와 함께 왕곡마을을 지키는 대장군과 여장군 등 7개의 장승이 우뚝 서 있었다.

고성군 죽왕면 왕곡마을을 지키는 장승. 박진호 기자

고성군 죽왕면 왕곡마을을 지키는 장승. 박진호 기자

마을 중앙에 흐르는 개울을 따라 산 쪽으로 올라가자 수십 개의 기와 집과 초가집이 한눈에 들어왔다. 왕곡마을의 모습은 마치 사극 드라마 속 한 장면 같았다. 잠깐 근세이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했다.

어느 기와집에 들어가자 지붕 아래 장작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이 집은 아직도 장작불로 난방과 음식 조리를 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장작불로 난방을 해결하는 어순복(84·여)씨의 전통가옥. 박진호 기자

아직까지도 장작불로 난방을 해결하는 어순복(84·여)씨의 전통가옥. 박진호 기자

부엌으로 들어가자 아궁이 위로 대형 가마솥이 3개나 걸려있었다. 이 집은 4대의 걸쳐 5명의 효자가 난 곳으로 가옥 옆쪽엔 ‘양근함씨(楊根咸氏) 4세 효자각’이 세워져 있었다.

어순복(84·여)씨는 “우리 집이 이 마을에서 과거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한 곳 중 하나”라며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대를 이어 수백 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전통가옥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왕곡마을 가옥은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 형태로 대부분 조선 후기(18∼19세기)에 건축됐다.

대부분 조선 후기에 건축된 왕곡마을 전통가옥. [사진 고성군]

대부분 조선 후기에 건축된 왕곡마을 전통가옥. [사진 고성군]

이처럼 오랜 세월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 2000년 1월 7일 중요민속문화재 제235호로 지정됐다.

이 마을엔 지금까지도 37가구 6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이 조상의 대를 이어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왕곡마을의 유래는 고려 말로 올라간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벼슬을 거부하고 충절을 지킨 고려 유신들인 '두문동72현(杜門洞七十二賢)'의 한 명인 양근 함씨 함부열이 고성 간성 지역에 낙향했다. 그의 손자 함영근이 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마을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양근 함씨 후손들과 강릉 최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600년 세월을 지켜왔다.

주민들은 왕곡마을을 '축복의 땅'이라고 부를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했다. 6·25전쟁과 고성산불 등을 겪었지만 작은 피해도 없이 보전됐기 때문이다.

함병식(79)씨는 “오봉리란 마을이름처럼 다섯개의 봉우리가 마을을 감싸고 있어 6·25전쟁 당시 전투기가 접근을 못 해 폭격을 피했다”면서 “고성산불 당시에도 마을 인근 산까지 불이 덮쳤지만, 주택 피해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화재 예방을 위해 항아리를 올려놓은 왕곡마을 굴뚝. 박진호 기자

화재 예방을 위해 항아리를 올려놓은 왕곡마을 굴뚝. 박진호 기자

전통 가옥인 만큼 집마다 특이한 점이 많았다. 특히 진흙과 기와를 쌓아 만든 굴뚝 모양은 대부분 달랐다. 굴뚝 위에 항아리를 엎어 놓은 곳도 있었다.

마을 주민은 “항아리를 올려놓은 것은 굴뚝을 통해 나온 불길이 초가에 옮겨붙지 않도록 조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통가옥이 잘 보존되다 보니 영화촬영지로도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2월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의 촬영지가 이곳 왕곡마을이다.

고성왕곡마을 민속체험축제 참가자들이 미꾸라지를 잡고 있다. [사진 고성군] 

고성왕곡마을 민속체험축제 참가자들이 미꾸라지를 잡고 있다. [사진 고성군]

여기에 왕곡마을은 해안에서 1.5㎞가량 떨어진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여름철 동해안을 찾는 피서객의 방문이 잦은 곳이다.

마을엔 고성군이 매입해 숙박시설로 운영하는 전통가옥도 7채나 된다. '한고개집'은 안채는 기와집이고, 행랑채는 초가집으로 총 5개의 객실이 있다.

큰백촌집은 초가집으로 객실수가 3개다. 이처럼 한 채 당 객실 수는 2~5개로 주로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한 채를 모두 빌린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 촬영지. 박진호 기자

이준익 감독의영화‘동주’촬영지. 박진호 기자

왕곡마을 안내도. 박진호 기자

왕곡마을 안내도. 박진호 기자

화재 위험 등으로 조리가 불가능하고 TV 등 전자제품이 없지만 여름철엔 항상 피서객들로 가득찬다. 가격은 시기에 따라 4~10만원이다. 예약은 왕곡마을 인터넷 홈페이지 (www.wanggok.kr)에서 하면 된다. (전화 문의:033-631-2120)

왕곡마을은 매년 10월에 전통음식만들기·미꾸라지잡기·말타기 등 다양한 전통문화를 체험을 할 수 있는 ‘고성왕곡마을 민속체험축제’도 연다. 벌써 15회째로 올해는 10월 21~22일 열린다.

하늘에서 본 왕곡마을 풍경. [사진 고성군]

하늘에서 본 왕곡마을 풍경. [사진 고성군]

조효선 고성왕곡마을보존회 문화해설사는 “동서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상당히 좋아졌다”면서 “마을 주민들과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마을 발전과 전통 문화 보존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교통편=대중교통을 이용해 왕곡마을에 갈 경우 고성 간성 또는 속초버스터미널에서 1, 1-1번 시내버스를 탄 뒤 오봉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택시를 이용할 경우 간성에서는 10분, 속초에서는 30분가량 걸린다.

고성=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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