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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은퇴 후 부인한테 대접받는 법” 강의에 귀 쫑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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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한국타이어가 지난달 15일 충남 금산 사내 연수원에서 실시한 ‘미래행복교육’. [사진 트럼프미디어]

한국타이어가 지난달 15일 충남 금산 사내 연수원에서 실시한 ‘미래행복교육’. [사진 트럼프미디어]

"마누라가 이혼하자고 하면 뭐 별 수 있나. 도장 콱 찍어야지."
"아니여. 은퇴하고 이혼하면 남자만 불쌍해져. 재산도 반토막 나고 수명도 줄어든다잖여."
"요새는 졸혼이라는 것도 있다고 하더만. 백일섭처럼 '일단 졸혼부터 해봅시다' 하지 뭐."

기업들, 직원 대상 은퇴설계 교육 #재취업·창업·귀농 노하우는 기본 #부부관계 재정립, 버킷리스트까지 #평생직장 개념 사라져 반응 좋아 #예비 퇴직자 아닌 3040도 열공

지난달 15일 충남 금산에 위치한 한국타이어 사내 연수원 아카데미하우스에선 황혼이혼을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은퇴 이후 부부관계의 변화에 대한 토론식 강의에서였다.

한국타이어는 충남 금산에 위치한 사내 연수원인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지난 4월부터 '미래행복교육'이란 이름의 은퇴설계 교육을 진행했다. 짧게는 올 6월 정년퇴직을 하는 사람부터 길게는 5년 이상 정년이 남은 50대의 사무직, 생산직 직원들이 대상이다. 퇴직을 앞둔 사람들을 위한 마인드 전환, 부부 및 자녀 등 가족 관계 문제, 버킷리스트 작성 등을 비롯해 재무, 재취업, 귀농·귀촌, 여가 등의 전문 과정으로 1박 2일, 1일 차 교육으로 이뤄졌다. 장진일 한국타이어 팀장은 "원래 50대만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아 40대, 30대 순으로 은퇴 교육을 확대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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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의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관련 교육을 해주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국내에서 퇴직예정자들을 대상으로 한 은퇴 교육은 공기업과 공공기관에서 먼저 시작됐다. 이후 대기업 생산직을 중심으로 은퇴 교육에 대한 수요가 생겼고, 시민을 대상으로 한 지자체 교육으로 확산됐다.

공공기관에서 시작돼 일반기업으로 확산

대표적으로는 퇴직예정 공무원을 대상으로 공무원연금공단이 제공하는 은퇴준비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공단은 지난 1997년 은퇴설계교육을 최초로 실시한 뒤 교육 내용과 규모를 지속해서 확대하고 있다. 한곡고용정보원의 '장년나침반 생애설계 프로그램'도 은퇴준비 교육 프로그램으로 2015년 개발됐다. 노사발전재단의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일자리 찾기, 전직, 창업 등에 초점을 맞줬다.

국내 기업들의 은퇴교육은 퇴직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아웃플레이스먼트(Outplacement) 도입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아웃플레이스먼트는 기업의 구조조정이나 희망퇴직, 정년퇴직 등을 이유로 근로자가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으로 퇴직해야 할 때 실직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전직이나 창업의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제도나 행위를 의미한다. 이후 퇴직 근로자들의 은퇴 후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 퇴직교육이 취업 외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삼성전자는 2001년부터 경력컨설팅센터를 설립해 서울, 수원, 광주, 구미, 기흥 등 전국 삼성전자 사업장이 있는 지역에서 운영 중이다. 전직교육 및 컨설팅, 재직자 경력상탐, 외부 잡매칭으로 이뤄져 있다. 현재까지 6400여명이 교육을 받아 5508명이 재취업에 성공했다. 한국전력은 사내 인사처에서 퇴직예정자를 대상으로 '한전 퇴직예정자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공통과정(자기진단, 변화관리)과 전문과정(창업전략, 재무관리)으로 이뤄지며, 올 상반기에만 224명이 교육을 받았다.

지자체는 서울시가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2013년에 '인생 이모작 지원센터'를 설립해 은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서울시 50플러스 센터'로 이름을 바꿔 달고 자치구별로 확산 중에 있다. 또 서부(은평구), 중부(마포구) 등 권역별로 50+ 캠퍼스를 운영 중에 있으며 앞으로 6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사내에 은퇴교육 프로그램을 꾸려 진행하기도 하고 공공기관, 지자체, 교육기업 등에 위탁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토론 등 참여형으로 확장..퇴직교육이 심리적 안정감 높여 

퇴직 교육이 좀 더 참여적이고 구체화됐다는 점도 올해 들어 뚜렷해진 현상이다. 기존에는 특강 형식의 단편적인 강의에 그쳤다면 이제는 참여형 또는 토론형의 워크숍 형태로 이뤄지기도 한다. 일방향적으로 듣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이 스스로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당일 또는 1박 2일 교육에서 그치지 않고 최대 8박9일의 체험 학습, 1대1 컨설팅, 취향 커뮤니티 형성 등 다양한 형태로도 확산하고 있다. 예컨대 귀농·귀촌에 관심있는 직원들을 그룹으로 묶어 4박5일 농촌 체험학슴을 진행하고, 목공예에 관심이 높은 직원들끼리 커뮤니티를 구성해 한 달에 두 번씩 목공예 교육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식이다.

박영재 한국은퇴생활연구소 소장은 "과거에는 퇴직교육을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가 부정적이었지만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 회사가 퇴직교육을 진행하는 것이 오히려 직원들의 애사심과 심리적인 안정감을 높여줄 수 있다"며 "좀 더 빨리 더 많은 기업들의 근로자들이 은퇴 교육을 받아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명수 객원 기자 seo.myo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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